엄마를 만나고 온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마음은 늘 그 방향으로 기울어 있었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잠깐 숨을 고르며 커피를 마시다가도 문득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조만간 또 가야지.’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되뇌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엄마가 먼저 말했다.
“네가 좀 와 줘야겠다.”
엄마가 먼저 이렇게 부르는 날은 거의 없었다.
“엄마, 어디가 많이 아파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지만, 이미 대답을 듣기 전부터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모든 일을 다 내려두고 새벽 일찍 울산으로 출발했다.
엄마가 이런 말씀을 하신 건 처음이었다. 아파도 늘 “괜찮다” 하시던 분이었다. 전화 목소리도 늘 또렷하고 씩씩했기에, 나는 엄마가 여전히 건강한 줄만 알고 있었다. 그런 엄마가 나를 불렀다는 사실이 마음을 잔잔하게 흔들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크게 다친 것도, 급히 병원에 가야 할 일도 아니었다. 큰이모께도 “언니가 좀 와 줘야겠다”고 했다는 말을 들으며, 어딘가 낯선 기운이 스쳤다.
늘 남을 먼저 챙기던 엄마가, 처음으로 자신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작은 변화는 아주 조용했지만, 분명한 신호였다.
“엄마, 동생인 엄마가 언니인 이모한테 가야지. 89세이신 큰이모를 오시라 하면 어떡해요? 이모는 다리가 아파서 어디에도 안가시는데 엄마한테 어떻게 오시겠어요. ?”
“뭐라고? 큰언니가 89살이나 먹었나?”
“그럼 엄마는 몇 살이에요?”
“언니보다 두 살 적지.”
“그럼 엄마는 87살이네요.”
“내가 87살이가?”
“그럼, 옥주 이모는요?”
“85살이가.”
셈을 겨우 하시며 나이를 헤아리는 엄마를 보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내 나이가 벌써 80이 넘었나?”
“80이 아니라, 90이 가까와요.”
엄마는 여전히 자신의 나이를 실감하지 못했다. 머리카락이 하얀 분만 보면 저 어르신이라고 했다. 심지어 내 친구가 머리카락이 하얘도 엄마보다 훨씬 어른으로 여겼다.
울산에 가서 2-3일만 지내다 오려고 했다가도 하루 이틀만 더 있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일주일이 금세 지나갔다. 엄마의 집은 이제 꼭 필요한 것들만 남아 있다. 위험할 만한 물건은 며느리들이 하나씩 정리했고, 부엌의 가스와 전기제품도 더는 엄마의 손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모두 치워졌다. 냉장고 속 음식도 최소한만 남겼다. 컵 하나 떨어뜨려 다치실까 싶어 도자기 컵도 모두 없앴다.
엄마의 옷장을 열어, 더 이상 입지 못할 옷들은 엄마가 보지 않는 틈을 타 조용히 재활용 상자에 넣었다. 이불도 최소한만 남겼다. 속옷과 양말, 손수건은 엄마가 쓰기 편하도록 가지런히 정리해 드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장품도 얼굴에 뿌려야 하는 것을 머리카락 위로 뿌리고 계셨다. 정리한다는 것은 물건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엄마의 세계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가는 일이 가장 큰일이었다. 혼자 씻는 것도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데이케어센터에서 목욕서비스가 있다지만, 엄마는 “싫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목욕탕에 모시고 갔다. 엄마의 등을 밀며 나는 마음을 닦았다. 저런 노인이 왜 공중 목욕탕에를 와?라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보다 엄마의 어깨가 더 작아 보여 눈물이 났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 또다시 목욕탕을 찾았다. 일주일에 2번을 가기도 했다. 목욕탕에 자주 못 가실 것을 아니까 한 번이라도 더 모시고 가야했다.
딸 유진이도 할머니와 함께 목욕탕에 가려고 울산에 갔다. 동네 목욕탕에 갔더니 때를 밀어주는 분이 아주 친절했다면서 유진이가 할머니와 목욕탕 다녀온 일을 들려주었다. 딸이 자발적으로 나의 수고를 들어주고 할머니에게 꼭 필요한 목욕을 해 주어서 정말 고마왔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의 목욕을 위해서라도 엄마를 방문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