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누구보다 활기차게 생활을 해 왔다. 85세의 나이에도 노인복지회관 커피숍에서 바리스타로 일하셨다. 바리스타 교육을 열심히 받으시고 시험에도 당당히 합격하셨다. 그 후로는 커피를 직접 만들며,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게 낙이었다.
“김옥란 여사의 커피가 제일 맛있다.” 그 말을 들으면 엄마는 소녀처럼 웃으셨다. 카푸치노 거품 위에 하트 무늬를 얹으며, 엄마는 자신의 손끝으로 세상을 꾸미셨다. 오래전부터 “이제 힘드시면 그만하세요”라고 했지만, 엄마는 “사람들 만나는 재미가 있다”며 버티셨다. 그렇게 활기차던 엄마가 어느 날 말했다.
“이제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를 줘야지.” 그날 이후로 커피숍 일을 그만두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말들이 하나 둘씩 시작되었다.
처음엔 누구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늘 총명했던 엄마였으니까. 우리는 “우리 엄마는 치매가 얼씬도 못할 거야.”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왔다. “김옥란 어머니가 길에서 넘어지셔서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따님 맞으세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엄마가 시장길에서 넘어져 119에 실려갔다는 소식이었다.
“지금 어떤 상태세요?”
“의식은 있고, 말도 하십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오빠가 먼저 병원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뒤로 넘어지며 머리를 부딪혀 피가 조금 났다고 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코로나 감염이 확인되었다. 인생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 시절, 코로나가 한창이었으니까 간병인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엄마를 돌볼 사람은 딸인 나 뿐이었다. 서울의 삶을 뒤로 하고, 곧장 울산으로 내려갔다. 코로나 병실에서 엄마와 단둘이 지낸 일주일이었다. 밥을 함께 먹고, 엄마 침대 아래에서 잠을 잤다. 나도 감염될까 모두 걱정했지만, 두려움보다 엄마 곁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엄마와 이렇게 오래 붙어 있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일주일 동안, 엄마의 모든 표정과 말,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았다. 가끔 이상한 말을 하셨지만, 그땐 단지 “머리를 다쳐서 잠시 그러시겠지” 싶었다. 입원 중 외출은 금지되었다. 답답해서 병실 한쪽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 일주일 동안, 나는 다행히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를 병문안하던 오빠가 걸렸다. ‘내가 면역력이 강한 건가?’ 마라톤과 수영으로 다져온 체력이 그때 빛을 본 듯했다.
엄마는 그렇게 퇴원하셨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게 있었다. 넘어지면서 등뼈에 금이 갔던 것이다. 몇 달 동안 오빠가 병원에 모시고 다니며 치료를 도왔다. 몸은 회복됐지만, 그 후로 엄마는 눈에 띄게 기운이 없어졌다. 심신이 지쳐 있었다. 그때 우리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돌봤다면 달라졌을까. 하지만 우리는 “괜히 엄마에게 변화를 주면 더 힘드실 거야”라는 핑계를 댔다. 그 사이, 엄마의 기억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 이번에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지 평소에는 늘 병원을 멀리했다. 아파도 티 내지 않고, 조용히 나아버리는 분이었다. “괜히 애들 걱정시킬 필요 있나.” 그게 엄마의 인생 철학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엄마가 건강한 줄로만 알았다.
엄마는 얼마전까지도 어디든 마음대로 다니셨다. 시장도 혼자 다니고, 친구들도 자주 만나며 누구보다 활기찬 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잘 걷지 못하셨다. 겨울이라 바람이 차기도 했고, 넘어지신 적이 있어서 한동안 집에만 계셨다. 그게 시작이었을까? ‘걷기만 해도 뇌가 운동을 한다’는데, 엄마는 그 ‘걷기’를 잃으면서 조금씩,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몸이 굳고, 말이 느려지고, 기억이 엉킨 것일까?
엄마는 평생 자신을 희생하며, 자신을 버리고 살아오셨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란 우리 역시 ‘사랑은 희생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오래된 법을 바꿀 때다. 엄마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가끔은 엄마의 치매가 그 오랜 희생의 대가처럼 느껴져 한탄스러울 때가 있다. 왜 엄마의 삶은 끝까지 이렇게 아픈 방식으로 돌아오는 걸까. 엄마의 치매가 그 오랜 희생의 그림자처럼 느껴져 마음이 저리다. 사랑이 왜 마지막에까지 이런 모양으로 남아야 하는지, 답을 찾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