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왜 그래요?

by 김영연

엄마는 울산의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었다. 거실에 있는 화장실을 갈 때조차 지팡이를 짚어야 했다.

“너도 지팡이 짚고 다녀.” 엄마가 내게 지팡이를 짚으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잠시 숨이 막혔다.

“지팡이를 짚으면 넘어지지 않아.” 그 말에 나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엄마는 지금, 나를 걱정하는 엄마와 지팡이가 필요한 노인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이 옷은 네가 입어.”

“엄마, 나는 옷 많아요. 엄마 옷은 나한테 안 맞아요.”

“형제끼리 나눠 입는 거지. 내 거 네 거가 어딨노.”

그 말은 따뜻한데, 동시에 서늘한 슬픔을 스며들게 했다. ‘형제끼리.’ 엄마의 기억 속에서 나는 어느새 딸이 아니라 바로 아래 동생, 옥주 이모가 되어 있었다. 옷 한 벌을 아껴 자매끼리 돌려 입던 시절, 그 오래된 기억의 문이 활짝 열리고,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그 방 안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엄마, 나는 딸이에요. 엄마한테 엄마라고 부르잖아요. 어떻게 나를 동생이라고 생각해요?”

“아, 맞네. 딸이지.” 엄마는 가끔 나를 이모로 착각했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잊지 않았다. 그 눈빛 때문이었을까. 엄마가 깜박일 때마다, 가슴이 저릿해지고 목이 메었다. 기억은 흐려져도 감정은 남는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딸의 얼굴도 못 알아본다는 치매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언젠가 우리 엄마도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움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머릿속에서는 의료 지식이 뒤섞여 어지럽게 스쳤다.

기억이 먼저 사라지는 알츠하이머형 치매,

감정의 파도가 오락가락하는 혈관성 치매,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고 말하는 루이소체형 치매,

성격과 사회성이 무너지는 전두측두형 치매….

이 많은 치매의 얼굴 중, 우리 엄마는 도대체 어디에 속하는 걸까. 아니, 어쩌면 모두가 뒤섞여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여든일곱이라는 나이 앞에서 천천히 닳아가는 ‘노화’의 과정일까. 노화는 누구도 피할 수 없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지금 엄마에게 일어나는 이 변화도 내가 받아들여야 할 ‘시간의 일’일까.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자꾸만 다른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래도 혹시… 혹시 조금은 나아질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어느 아침, 엄마는 잠에서 막 깬 얼굴로 방 안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물었다.

“우리 엄마가 여기 누워 잤는데, 어디 갔지?”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엄마, 외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잖아요.” 엄마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졌다.

“우리 엄마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그런데 왜 나한테 아무도 말 안 해줬노? 우리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못 갔네… 동네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욕하겠노. 창피해서 이제 고개 들고 친정을 어떻게 가겠노…” 그리고 진짜로 울었다.

아침 햇살이 방 안 깊숙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엄마는 그 한가운데서 오래된 상실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서럽게 울었다.


“엄마 왜 그래요…” 그 말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었다.

엄마를 치매 환자로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엄마를 돌보러 갔다가도 싸우게 되고, 다시 미안해서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는 엄마를 보며, 나도 점점 예민해졌다.

“형제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엄마의 그 말은, 다시 나를 옥주 이모의 자리로 끌어다 놓았다.


이상한 일들은 계속 이어졌다. 혼자 계실 때도 늘 그러셨을지 모른다. 내가 옆에서 지켜보니,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작은 이상들이 속속 드러났다. 마시던 커피를 다른 컵의 물에 섞고, 미역국에 야쿠르트를 넣어 드셨다. 화장실 물을 내리지 않고 나오고, 물이 맑다며 내릴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어린 시절 물이 귀했던 기억 때문일까. 사용한 화장지를 버리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아두기도 했다. 혹시 다시 쓸까 봐 그러신 걸까. 화장실에는 늘 냄새가 맴돌았다.

“엄마, 왜 그래요?”

“그러면 어때서, 내가 편하면 되지.” 나는 어느새 세 살배기 아이를 다루듯 엄마를 나무라고 있었다.

“엄마, 그러면 안 돼요.”

“엄마, 그건 이상한 행동이라고요.” 목소리가 높아지면 엄마는 내가 딱따구리처럼 왜 그러냐고 화를 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도 이상하고, 나도 이상해지고 있었다.


엄마는 지금 병을 앓고 계신 환자였다. 낯선 세상에서 길을 잃고 있었는데, 나는 여전히 예전의 ‘엄마’를 기대하고 있었다.

형제 중에서도 가장 총명하다고 불리던 엄마가 치매라니, 믿기 어려웠다. ‘치매’라는 단어보다, 엄마를 이렇게 만든 무언가가 더 미웠다. 아마 평생 고개 숙여 수세미를 짜고 뜨개질하며 손끝으로 살아온 시간들 때문이었을까. 엄마가 만든 수세미와 화분 받침은 울산 한의원에도, 동네 집집 마다도 남아 있었다.

그 따뜻한 손길이 이제는 기억의 실마리를 엉켜버리게 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 한가운데에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마음을 다독이려 애썼다. 나이가 드니 그럴 수도 있겠지. 괜찮겠지. 오늘만 그러겠지… 이유를 하나하나 만들어 마음의 문을 조용히 닫아걸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날의 침묵과 잠깐의 머뭇거림이 엄마가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는 첫 신호였다. 나는 그때 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보고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세상 누구보다 세심한 엄마를 두고 어느새 가장 무심한 딸로 살아가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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