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두었던 치매 검사를 결국 받았다. 검사실에서는 엄마가 질문마다 또렷하게 대답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등급이 안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에도 치매 5등급이었다. 아마 등뼈 부상으로 인한 신체 기능 저하가 함께 고려된 판단이었을 것이다.
치매 등급은 숫자가 높을수록 증상이 약하고, 낮을수록 심하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등급이라는 말을 듣고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실제 치매의 정도가 일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등급이 나오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다고 하여 급히 데이케어센터 등록을 진행했다. 아침 8시에 가서 저녁 6시에 돌아오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치매가 얼마나 조용히, 그리고 얼마나 무섭게 일상을 뒤흔드는지를 그때는 몰랐다. “조금 깜빡하는 정도겠지” 하고 넘겼던 날들이, 사실은 시작에 불과했다.
익숙한 길을 함께 걷고 있었는데도, 엄마는 마치 처음 온 곳처럼 주위를 낯설게 둘러보았다. 그러다 어느 날은 집을 나갔다가 결국 길을 잃고 돌아오지 못하셨다. 병영 사거리 근처에서 “물묵 가는 길”을 묻고 계셨다고 했다.
물묵은 선산에 있던 외가 근처의 작은 동네로, 엄마가 어린 시절 자주 다니던 곳이었다. 울산에서 그곳을 찾아가려 하셨다니 믿기지 않았다. 아마 오래된 기억 속 길이 엄마의 발걸음을 그곳으로 데려간 것이리라.
엄마를 찾느라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던 막내동생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울음이 맺힌 동생의 얼굴을 본 엄마는, 오히려 잘못한 사람처럼 조용히 말했다.
“이제 밖에 안 나갈게.” 우리는 곧장 당부했다.
“엄마, 혼자 나가면 안 돼요. 넘어지면 큰일 나요.” 엄마 주변 지인들의 연락처를 모두 적어 두었고, 혹시 다시 길을 잃으실까 봐 치매 환자 지문 등록도 경찰서에서 바로 했다. 그제야 비로소 ‘준비’라는 것을 시작했다.
데이케어센터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하루는 단순한 반복이 되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센터, 일요일에는 교회를 갔다. 단순한 일정이었지만, 엄마의 하루가 규칙 속에서 안전하게 흐르길 바랐다. 하지만 불안은 늘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으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떤 날은 가방 속에서 전화벨이 들리지 않았고, 무음으로 되어 있어 못 받기도 했다. 때로는 전화기를 어디에 두셨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셨다. 결국 집전화를 새로 신청했다. 전화가 크게 울리면 엄마가 받을 수 있었고, 그저 집에 계시다는 사실만 확인되어도 마음이 놓였다. 번거롭고 귀찮은 과정이었지만, 무선 전화기를 하나 더 구입해 침대 옆에 두어두는 것만으로도 불안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렇지만 치매가 진행된 엄마를 더 이상 혼자 집에 계시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CCTV를 설치하자는 말도 있었고, 여러 방안을 두고 가족들이 머리를 맞댔지만, 결국 엄마는 이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시기’에 들어섰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아들들은 돌아가며 밤 시간을 지키겠다고 나섰다. 그 마음이 고맙고 든든했지만, 동시에 한계도 분명했다. 엄마를 아들들이 씻겨 드릴 수도 없고, 밤새 변화하는 엄마의 상태를 알뜰하게 살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랑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돌봄의 무게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제야 뼈저리게 이해하게 되었다.
서울은 여전히 추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날씨가 조금만 더 풀리면 엄마를 서울로 모셔와야겠다는 생각이 날마다 더 크게 부풀었다. 엄마와 함께 지내면 지낼수록, 하루라도 빨리 모셔와야 한다는 마음이 더 절실해졌다. 주간보호센터를 다녀오신다 해도, 저녁이 되면 혼자 계신 엄마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빨리 엄마를 서울로 모셔 오겠다고 말했더니, 오빠는 말했다.
“엄마 서울 오시면 금방 집에 가겠다고 할 거야.” 그 말이 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는 어디를 가도 금세 일어나 돌아가자고 하시는 분이었다. 원래도 부지런하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미리 해두는 성격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성격이 급하고 부지런한 엄마’로 이해했다. 그러나 점점,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울증 같은 증상일까? 아니면 치매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얼굴일까? 아니면 평생 앞서 가고 싶어 했던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멈추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것일까. 나는 문득, 엄마는 누구보다도 분주한 영혼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서울로 오시면 잘 적응하실까—그 걱정이 마음 한 켠에서 맴돌았지만, 이제는 그것보다 엄마의 안전이 더 중요했다. 빨리 결단을 해야 했다. 혹시라도 엄마를 서울에 모셔야 할지도 몰라, 집에서 가까운 데이케어센터에 찾아가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엄마의 하루, 엄마의 안전, 엄마의 남은 기억을 지키기 위한 또 다른 준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