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모신 엄마, 낯선 도시와 여름

by 김영연

엄마와 떨어져 산 지 벌써 마흔 해가 지났다. 그래도 엄마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내가 힘든 일을 겪을 때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주었고, 늘 직접 만든 음식을 한가득을 만들어 보내셨다. 몸은 멀리 있었지만 마음은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다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결국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엄마를 모시고 KTX에 올랐다. 창밖의 회색 하늘에서는 비가 올 것 같은 기운이 흘렀다. 엄마는 자기 양말 속에 바지 끝단을 야무지게 구겨 넣었다. 비 오면 젖지 않게 하려는 작은 몸짓 하나에도 그 세심함과 자존심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새삼 느꼈다.

“비 오면 다 젖는다.” 하시며 가방도 직접 끌겠다고 하셨다. 며칠간 엄마와 지내느라 지친 나는 기차에 타자마자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깨웠다.


“이것 좀 봐라, 저기 보이는 풍경이 이렇게 좋은데, 잠이 오나?”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라 그런지, 엄마의 눈빛은 오히려 반짝였다.

“엄마, 나는 저런 거 많이 봤어요. 피곤해서 좀 잘래요.”

“구경할 게 이렇게 많은데 뭐하러 자노.”

“엄마도 좀 주무세요. 아직 서울까지 두 시간이나 남았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또 나를 흔들며 말했다.

“뭐 이리 머노? 오래 가노? 도착할 때 안 됐나?”

“엄마, 여긴 대전이에요. 아직 멀었어요.”

“그럼 그냥 지금 내리면 안 되나?” 나는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그럼 엄마 먼저 내려서 서울까지 알아서 오세요.”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시린 마음이 숨어 있었다. 엄마가 이제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어려워졌다는 사실. 겨우 두 시간 반의 시간마저 엄마에게는 버텨야 하는 긴 기다림이라는 사실. 그제야 어렴풋이 깨달았다.


조카가 서울역으로 할머니를 모시러 왔다. 오랜만에 손자를 보니, 엄마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앞좌석에서 운전하는 조카를 바라보며 고개를 이리저리 내밀어 확인하듯 살피고는 몇 살이냐고 물었다. 조카가 “서른이요”라고 하자, 엄마는 벌써 그렇게 나이가 들었느냐며 놀라워했다.

잠시 후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왜 이렇게 사람이 많노?” 하고 말씀하셨다.

“할머니, 여기는 서울이니까요. 사람이 많지요.”

“그래? 여기가 서울이가?” 하고 되물었다.

“할머니, 방금 울산에서 서울로 오신 거잖아요.”

그러자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나는 여기가 울산인지 서울인지 모르겠다…” 하고 중얼거리셨다.

그리고는 잠시 전과 똑같이 다시 조카의 나이를 물으셨다.

조카가 조금 더 큰 목소리로 “할머니, 금방 30살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라고 답했다.

나는 웃으며 “유신아, 할머니가 집에 갈 때까지 네 나이를 아마 열 번도 더 물으실 거야” 하고 말해 주었다.


예전의 그 엄마가 아니었다. 몸도, 마음의 질서도 낯설게 변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옛날의 엄마를 찾고 있었다. ‘같은 엄마인데,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엄마는 아직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속도가 엄마에게 너무 벅차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히 알아버렸다. 어쩌면 지금 엄마를 지켜주는 건 열정이 아니라, 오히려 느림이 더 맞을거라 생각했다.


치매는 혼자서는 버티기 어려운 병이리고 했다.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하니, 치매 환자가 된 엄마를 혼자 계시게 할 수는 없었다. 우선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같이 먹는 것부터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돌봄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있음에서 시작되었다.


치매환자를 어떻게 도와 드려야 하는 것은 알지 못했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엄마의 몸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믿었다. 하루가 급했다. ‘일단 모시고 와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엄마를 혜화동으로 모셔왔다. 영업이 조금 불편해지고, 잠시 힘들어지더라도 괜찮을 거라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래도 엄마가 더 중요하지.’ 라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엄마의 하루는 예측 불가능했다. 손님들이 오가고, 엄마는 그 사이를 배회했다.

“저 사람은 왜 자기 집에 안 가고 여기서 자?”

“저 젊은 여자는 왜 옷을 훌떡 다 벗고 다니냐?” 여름이라 짧은 옷을 입은 외국인 손님들이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 다행이었다. 조금 전 “hello?”라며 인사를 나눈 손님들도, 엄마에게는 곧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같은 질문이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대답을 해도 잠시 후면 다시 되돌아왔다.


주변에서는 늘 걱정을 했다. 우리집이 영업을 하는 집이라 엄마도 불안하고, 손님들에게도 불편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를 안정된 곳에서 지켜야 하는데, 늘 사람들이 오가는 상황 속에서 제재를 해야 할 때가 많았다. 엄마는 가끔 손님 방에 들어가 엄마 옷과 짐을 찾으려 했다.

“엄마, 여기는 다른 손님이 사용하는 방이에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런 싸움이 반복되었다.

“엄마, 손님 없을 때 씻을까요? 지금 화장실 갈까요?”

“아침에 시끄럽게 하면 손님들이 잠을 못 자니까 조용히 해야 해요.” 평소 엄마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만, 조용히 하자는 말에는 잘 듣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를 지키는 일이 곧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치매 환자가 된 엄마는 점점 낯선 사람으로 변해갔다. ‘우리 엄마가 이런 분이었나? 일부러 이러시는 걸까?’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이제 엄마가 나에게서 정을 떼어가고 있나 보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한때는 엄마 생각만 해도 절절했는데, 이제는 안타까움보다 피로가 앞서기 시작했다.


엄마를 상식선에서 통제하면 엄마와 내가 좀 편해질 거라 여겼다. 하지만 엄마는 순수하게 따라올 사람이 아니었다. 통제는 또 다른 병을 낳는다는 말을, 그제야 실감했다. 마음대로 살던 엄마가 치매 환자가 되고 나니, 모든 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려 드는 딸의 모습이 얼마나 버거웠을까. 우리는 오랜 시간 서로 멀어져 있었고, 치매 이후 엄마의 생활 방식은 예전과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살갑게 다가가려다 어느새 엄마의 단점을 꼬집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엄마에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섭섭함으로 남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딸인 나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해, 보따리를 싸 들고 정처 없이 어디론가 떠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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