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상식도 없고, 치매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가까이서 본 적도 없는 내가 이 일을 시작했다. 매일 성질이 나고, 이 일을 내가 하는 것이 잘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갈등 속에서 헤매기 일쑤였다. “요양원이 나보다 더 나은 돌봄을 하지 않을까?” 그 질문이 마음속에서 하루에도 여러 번 오간다. 엄마는 이제 가장 약한 사람이 되었고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얼마나 길지 모를 시간이지만 당장은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든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엄마를 돌보는 일은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나만큼 엄마를 아는 사람이 없는데, 누구한테 엄마를 맡긴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두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 보니, 치매 엄마를 어떻게 바라보고 마주해야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 엄마가 나에게 쏟아준 사랑은 끝이 없었다. 그 사랑은 언제나 희생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자신을 늘 뒤로 밀어두고, 가족을 먼저 챙기며 평생을 살아왔다. 형제들을 챙기고, 자식들을 챙기며 “나는 괜찮다”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하던 사람이었기에 그런 엄마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 한 곳이 늘 저렸다.
“엄마, 왜 그렇게 엄마 생각은 안 하고 살았어요? 그러니까 지금 엄마에게 남은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 말은 책망이 아니라, 오래 묵혀온 슬픔이었다. 어쩌면 엄마가 조금만 다르게 살아주었더라면. 그런 마음이 문득문득 스며들었다. 엄마가 마음대로 살아보지 못한 세월을 내가 대신 살아줘야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자유를 향해 몸부림쳤다. 그게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그 다짐은 나를 어느 정도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엄마처럼 살면 인생의 끝에서 후회할 것만 같았다.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너, 엄마랑 똑 닮았네.” 라는 이야기를 늘 들어왔다.
치매환자를 돌보아온 사람들을 붙들고 어떻게 돌보아야지 되는 지를 묻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것은 다른 환자를 돌보는 것과 달랐고, 돌보다가 자신까지 치매가 올 수 있다는 부정적인 조언들이 압도적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무슨 용기로 이 일을 하겠다고 나섰나 싶기도 했다. 처음부터 시도조차 하지 말라고 잘라 말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말은 맞기도 했고, 틀리기도 했다. 다양한 조언들은 참고만 하고, 결국 내가 중심을 잡고 엄마와 살아가야 했다.
누구나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어렵다고 말했다. 나 역시 치매 엄마라는 상황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고, 치매가 어떤 행동을 불러오는지에 대한 사전 지식도 전혀 없었다. 그래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평소의 엄마를 너무 잘 알았기에—아무리 치매가 왔더라도 우리 엄마이니, 나를 이해해 주고 조금은 봐주겠지—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나를 향해 죽음까지도 불사할 것 같던 엄마는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고, 그 자리에 낯설고 예측할 수 없는 또 다른 엄마가 서 있었다.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치매 엄마를, 예전의 우리 엄마가 본다면 어땠을까? 그 상상을 하다가 문득 목이 메어와 혼자 조용히 울음을 삼킨 적이 많았다. 분명한 것은, 예전의 엄마라면 지금의 엄마를 가만두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시간의 잔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