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일, 다시 걷는 마음

by 김영연

엄마의 몸을, 그리고 내 인내심을 다시 걸어가게 하기 위해 우리는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뇌건강 걸으면서 지킬 수 있다고 믿고, 시작된 것이 ‘걷기 연습’이었다.

엄마는 새벽이면 늘 가장 먼저 눈을 떴다.

“엄마, 새벽예배 가요. 혜성교회요.”

“그래, 가자.”

엄마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오히려 잠들기 전에는 늘 먼저 말했다.

“일찍 자자. 내일 새벽예배 가야지.” 나는 그 말에 맞춰 엄마를 일찍 주무시게 했다. 하지만 새벽 5시 반 예배에 맞추어 가는 건 엄마의 몸에 무리였다. 그래서 우리는 몸이 허락하는 시간에 맞춰 교회로 향했다.

태양이 막 지평선 너머로 고개를 드는 시각, 우리는 느린 템포로 언덕을 걸어 올랐다. 어느 날은 예배가 끝날 무렵에야 교회 문 앞에 닿았고, 또 어느 날은 이미 텅 빈 예배당 앞에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하지 않았다. 애초에 예배 참석이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교회에 가서 잠시라도 숨을 고르고, 엄마와 나란히 앉아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엄마의 느린 걸음과 내 서툰 인내심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다시 속도를 맞춰 가던 시간이었다.

“오늘은 아무도 안 나오나?”
엄마의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 우리가 늦게 와서 그래요. 벌써 다 예배를 드리고 갔어요.”

혜성교회는 언덕 위에 있었다. 엄마는 오르막이라는 말만 들어도 겁을 냈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한 발, 또 한 발, 조금씩 그 경사를 이겨냈다. 기도를 마친 뒤 성곽길을 걸었다. 나는 은근히 기대했다. ‘조금만 더 나아지면 와룡공원까지도 갈 수 있지 않을까.’ 가능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저 새소리 듣고, 바람결에 얼굴을 맡기고, 아침 햇살을 함께 쪼이는 일만으로도 충분했다.

“엄마, 오늘은 입구까지만 가요.”

그리고 다음 날은 그 입구보다 조금 더. 또 그 다음 날은 조금 더. 그렇게 조금씩 오르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중턱까지 올라와 있었다. 우리 집에 왔던 손님들과 아침마다 해맞이를 보러 가던 곳이 멀지 않았다. 그 풍경을, 그 설렘을 엄마에게도 꼭 보여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겼다. 엄마와 함께 그 아침 햇살을 마주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엄마, 와룡공원까지 곧 가겠어요!” 나는 말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여름이 오자 더위에 결국 포기해야 했다. 엄마에게 무리가 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성곽 입구의 쉼터에서 운동 기구를 잡았다.

“아이구, 나는 못한다. 너나 해라.” 엄마는 처음에는 겁을 냈다. 그러다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조금씩 용기를 냈다. 엄마가 운동하는 모습을 찍어 가족 카톡방에 올렸다.

“우리 엄마 잘하시네요.”

아들들의 댓글을 읽어주면 엄마는 어쩐지 조금 힘을 냈다. 엄마가 움직이는 것이 싫어서 꾀를 부릴 때면 “엄마가 매일 운동하는 모습 올리면 가족들이 보고 다 좋아해요.”말하면 가끔은 그 말이 통해서 억지로라도 힘을 냈다. 엄마는 팔을 들고, 다리를 들어올리고, 손뼉을 맞부딪혔다. 그 옆에서 나는 고마웠다. 짧은 순간만큼은 엄마가 다시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치매엄마 돌보면서 늘 착각을 한다. ‘이제 적응했어’라 말하는 순간, 새로운 일이 터진다. 돌봄은 정답이 아니라 ‘유동성’이다. 엄마는 운동을 하다가도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반가워했다. “버스 안에는 사람이 별로 안 타고 텅텅 비었네. 저 버스 타면 감천가 가나?” 그리고는 그대로 버스 쪽으로 향했다.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파란 버스는 엄마에게 언제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길은 없다. 엄마만 그 사실을 모른다. 성곽 입구까지의 길은 우리 모녀의 일상이 시작되는 길이었다.

아침마다, 저녁에도, 걸었다. 주말이면 대학로까지도 걸었다. 엄마의 발걸음은 점점 단단해졌고, 허리도 조금씩 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 허리에 손 얹고 배 내밀고 걸어요.”
“그게 마음대로 되냐.”
“엄마, 된다고 생각하면 돼요.

마음이 먼저 펴져야 허리도 펴져요.” 우리는 걸으면서도 늘 부딪혔다. 그러나 그 싸움은 서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또 다른 방식의 약속이었다. 걸음이 나아진다고 마음까지 평온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치매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서는 기꺼이 무서운 보호자가 되기로 했다.

그래도 다시, 웃으며 오늘을 보낸다. 오늘도 실수하고, 웃고, 또 잊는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우리의 하루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떤 날에는 엄마의 걸음이 너무 느려, 나도 모르게 엄마의 손을 끌고 가게 되었다. 엄마는 억지로 힘을 내어 따라오셨지만, 내 걸음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치매를 돌보는 일은 인내의 훈련이 아니라 사랑을 지속하는 연습이라고들 한다.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며, 어쩌면 그보다 더 긴 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천천히 가기로 했다. 엄마의 속도에 맞춰 걷는 것, 그것이 진짜 함께 걷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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