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케어센터와 돌봄의 선택

by 김영연

치매가 엄마의 일상에 스며든 뒤, 엄마와 하루 종일 집 안에 머무는 일은 점점 버겁고도 불가능한 일이 되어갔다. 나는 엄마에게 가장 맞는 데이케어센터를 찾기 위해, 혜화동은 물론 높은 언덕길에 있는 창신동 골목까지 하나씩 들러 보았다. 걸어서 닿을 수 있는 혜화성당 데이케어센터를 시작으로, 엄마의 발걸음과 우리 삶의 리듬을 헤치지 않는 곳을 찾아 헤맸다. 엄마가 교회를 다니시기에, 우선 마음이 닿는 곳은 자연스레 기독교계 기관들이었다.


덕수교회에서 운영하는 센터는 언제 자리가 날지 기약이 없었고, 차로 오가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또 다른 여름날, 새문안교회교회에서 운영하는 종로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아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한여름의 열기 속에서 엄마와 나는 창신동 골짜기를 천천히, 숨을 맞춰 오르며 땀을 흘렸다. 그러나 그곳은 우리에게 너무 멀었다. 차량 이동 시간도 길었고, 아침 출발도 늦었으며, 귀가 시간도 어둠이 내려앉을 즈음이었다. 일하는 가족을 위한 ‘서울형 데이케어’였지만, 우리 삶의 시간표에는 맞지 않았다. 그곳의 장점이라면 소수만을 돌보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이 살펴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각 센터에서 요구하는 서류는 끝이 없었고, 단체생활을 위해 건강검진도 필수였다. 종로 보건소를 찾아다니며 결핵 검사, 간염 검사 등 여러 절차를 밟았다. 서류를 챙기느라 머리가 복잡했던 어느 날, 한 데이케어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순간 그곳이 ‘엄마를 보내고 싶었던 바로 그곳’이라고 착각했고, 기쁜 마음으로 “내일 당장 가도 되나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기다리던 곳이 아니었다. 엄마의 돌봄에 휩쓸려 살다 보니, 나의 중심도 흔들리고 있었음을 그때에서야 깨달았다.


결국 답은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집에서 걸어서 닿을 수 있고, 급히 달려갈 수도 있으며, 오래전부터 보아온 봉사활동의 손길이 있으니 믿음도 가는 곳. 혜화성당 데이케어센터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서류 제출을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문서를 다시 받아야 했고, 엄마가 울산에 계실 때 오빠가 서류들을 챙겼기에 또다시 울산으로 연락을 해야 했다. 사진 찍어 보내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원본’을 요구했다. 번거로운 일들 앞에서 나는 결국 과장님께 짜증을 내고 말았지만, 그분은 늘 웃으며 나를 진정시켜주었다. 불편한 순간 속에서도 사람이 주는 따뜻함을 잊지 않게 해준 분이었다.

“일단 가능한 센터에 다니시고, 자리 나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집을 나섰다. 나는 미행이라도 하듯 그 뒤를 조심스레 따르며, 엄마의 그림자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삼선교에 있는 삼선데이케어센터에 먼저 등록했다.

아침이면 차량이 엄마를 데리러 왔고, 나는 그전에 엄마와 짧은 산책을 했다. 센터에서는 많이 움직이기 어려울 듯해, 아침마다 혜성교회도 들렀다 돌아오고 집 주변 골목도 한 바퀴 돌며 엄마의 몸과 마음을 깨우곤 했다.


토요일에는 우리가 직접 센터에 모셔다 드리고 모셔와야 했다. 아침엔 택시를 탔고, 오후엔 딸 유진이와 함께 엄마를 데리러 갔다. 집까지의 길은 엄마에게는 조금 멀었지만, 찻집에 들러 차도 마시고 작은 가게에 들러 간식도 먹으며 천천히 걷는 그 시간은 우리에게 작은 여행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세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더 보여드리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소식이 찾아왔다. 혜화성당 데이케어센터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이상하게도 같은 시기에 덕수교회에서도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왔다. 행복한 고민 끝에 우리는 집과 가장 가까운 혜화성당을 선택했다. 가장 익숙한 길 위에 있는 곳, 필요할 때 언제든 뛰어갈 수 있는 곳. 무엇보다 오랫동안 따뜻한 손길을 보아온 곳이었다. 엄마를 담당해주실 젊은 복지사 선생님은 놀라울 만큼 세심하게 엄마를 이해하려 했다. 아침 열 시쯤 마시는 차는 녹차를 좋아하시는지, 혹은 달달한 차를 좋아하시는지를 물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지, 아니면 고요한 시간이 필요한지까지도…그 세밀한 질문들이 하나하나 쌓이자, 나는 ‘이곳이라면 괜찮다’는 확신이 들었다.


데이케어센터를 나올 때, 나는 하루 종일 센터에서 지냈을 엄마를 생각하며 자연스레 엄마 손을 잡았다. 그런데 어떤 날은 엄마의 손이 차가웠다. 그러면 엄마는 꼭 말했다. “오늘은 네 손이 차다.” 하지만 손을 잡고 오는 길이 언제나 다정한 것은 아니었다. 센터에서 집으로 오는 짧은 거리에도 엄마는 엉뚱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집은 바로 앞인데도 지나가는 차를 붙잡고, “좀 태워달라고 하자”고 서성였다. 그럴 때면 방금까지 잡고 있던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그 짧은 몇 분이 참 무겁게 느껴졌다. 저녁을 지나, 다음 날 아침 센터에 가기까지 또 엄마와 실랑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툭 떨어지곤 했다.


그래도 우리는 때로는 손을 잡고, 때로는 손을 놓은 채 엄마와 혜화동을 한바퀴 돌았다. 엄마가 걷는 동안 뇌의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활발해지리라 믿으면서… 감정이 아니라, 팩트로 보는 훈련을 해야 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엄마를 보기 시작했다. 그제야 진짜 엄마가 보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말했다.

“그래, 이제 내일 아침 9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하루가, 드디어 다시 시작되는구나.”

작가의 이전글함께 걷는 일, 다시 걷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