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지키자 vs 우리를 지키자 — 독수리 4형제의

by 김영연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십 년이 넘도록, 엄마는 혼자서도 밝고 씩씩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안심하고 살았다. 그런데 치매라는 소식을 듣는 순간, 우리 형제들의 일상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낮에는 주간보호센터에, 밤에는 아들들이 번갈아 엄마 집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목욕이나 옷을 갈아입히는 일은 아무도 감당할 수 없었다. 엄마가 혼자 사는 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냉장고에는 최소한의 음식만 두고, 가스는 차단하고, 위험한 물건들은 치웠다. 그럼에도 밤에 집을 나설까 두려웠다. 엄마의 환경을 최대한 바꾸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남자 형제들이 돌아가며 엄마 집에서 잠을 자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제대로된 돌봄일까? 당황과 혼란 속에서 우리는 그저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결국, 엄마를 서울로 모셔오게 되었다. 나는 엄마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좋을 때, 비록 굵고 짧은 시간일지라도 가장 좋은 모습으로 엄마를 모시고 싶었다. 형제들은 아버지를 돌보았던 지난 경험 때문에, 길게 늘려 가늘게 버티는 방식이 더 안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앞날은 그때 가서 다시 견디면 되고,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어떻게든 길을 찾아갈 거라고 믿고 싶었다.


울산에서 엄마가 살던 집이 기적처럼 팔리면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지만, 그 돈으로 서울에서 엄마의 삶을 온전히 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형제들은 10년을 내다보며 생활비만 조금씩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 말은 마치 “엄마의 돈은 우리가, 엄마의 삶은 네가”라는 선언처럼 들려 마음을 쓰리게 했다.

처음 엄마를 서울로 모실 때도 나는 아무런 대책 없이 왔다. 형제들은 우리 집이 게스트하우스이니 방이 많아서 방을 하나 비워서 그냥 살면 될 거라 여긴 듯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고,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그런데 엄마의 안정과 손님들의 보호를 위해 그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가 살 집을 따로 얻어야겠다고 하자, “싼 집을 천천히 얻어라”라고만 했다. 서울의 지역의 사정은 모른 채 돈만 적게 들이려는 태도가 화가 났다. 내 형편이 넉넉했다면 엄마 돈에 손대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외로웠다. 엄마가 편히 지낼 집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고, 하루가 급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밝고 깨끗한 빌라가 나와, 고민할 틈도 없이 바로 계약을 했다.


부모에게서 무엇을 받았고, 내가 무엇을 돌려드렸는지를 따져 묻고 있었다. 정신적인 유산은 잠시 밀어두고, 물질적인 것만 저울에 올려놓고 있었다. 나는 늘 부모에게 받기만 했다고 믿었고, 받은 것에 비해서 돌려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서도 한 번이라도 더, 조금이라도 더 보태 보려고 했던 그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가장 연약한 엄마를 바라보면서도, 앞으로 얼마나 돈이 들지에 대한 현실적인 계산만 머릿속을 오가는 것 같아서 속이 상했다. 우린 부모님께는 재산이 거의 없으니 형제끼리 다툴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큰 돈이든 적은 돈이든 상관없이 의견은 끝내 부딪혔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이해와 현실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도 엄마를 혼자 둘 순 없잖아.”

“요양원에 모셔야 하지 않을까?”

“아니야, 아직은 집에서 버텨보자.”

서로의 말이 옳기도, 동시에 틀리기도 했다. 누구도 정답을 모르는 싸움이었다.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과 우리의 삶을 지켜야 한다는 현실이 맞부딪쳤다.


형제들과 멀어졌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 멀리서 자신의 생활을 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자녀들을 돌보는 일까지 있었기에 엄마의 일은 살짝 밀어 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세상 끝날까지 남아 있을 줄 알았던 형제간의 우애도 이제는 희미해진 듯 했다. 아마도 나만 아직도 그것을 붙잡고 온 듯해서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날 이후, 우리 넷은 ‘독수리 4형제’가 되었다. 각자의 방향에서 날갯짓을 했지만, 결국 바라보는 곳은 같으리라 믿고 싶다. — 엄마가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안전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족이란, 같은 목표를 두고 서로 다른 방법으로 싸우는 사람들의 이름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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