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그저 식사만 챙겨 드리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침은 늘 내 예상을 비껴갔다. 새벽빛이 방 안을 스칠 때마다, 어제와는 조금 다른 하루가 고요하게 열렸다. ‘반복’이라고 부르기엔, 매일이 너무도 새롭고 낯설었다.
엄마가 눈을 뜨는 순간, 가장 먼저 입술을 바라보게 되었다. 옛날 어른들을 모실 때, 머리맡에
자리끼 물을 떠 두던 기억이 있다. 잠결에 목이 마르거나 기침이 나면 마시라고 물 한 컵을 놓아드리곤 했다. 그러나 밤중에 물을 마시면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될까 봐 엄마는 늘 마시기를 망설이셨다.
밤새 입술이 말라붙지는 않았는지 살피며 한 번이라도 덜 힘들게 깨어나셨기를 바랐다. 소금 몇 알을 엄마의 입에 넣어 드리고 오물오물한 뒤 뱉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오십 도쯤 되는 음양탕에
함초소금을 조금 넣은 따뜻한 소금물을 건넸다.
“이거 링거랑 같아요. 좀 마셔 보세요.” 그러면 엄마는 늘 같은 말을 하셨다.
“왜 맨날 물은 마시라고 하노?
“울산에 계실 때 기운 없으면 병원 가서 링거 맞으러 가셨잖아요. 그 링거는 비쌌지만, 이건 집에서 만들었으니 돈도 안 들고, 효과는 비슷할 거예요. 그래야 혈류가 부드럽게 흐른다는데, 엄마는 그 말이 낯설기만 한 듯 되물었다.
“짠물을 뭐 하러 마시라고 하노.”
“약이라고 생각하고 다 마셔요.” 엄마의 몸은 밤사이 화장실을 오가면서 소변으로 나간 물의 양만큼 물을 우리 몸에 다시 채워 넣어야 한대요.” 그 말을 다 듣고서야 겨우 한 모금을 드신다. 벌컥벌컥 조금만 더 마셔 주면 물이 금방 줄어들고
온기가 있을 때 마시면 온 몸에 땀도 나고 좋을텐데…물 마시는 일에 유난히 인색했다. 때로는
힘겹게 한 모금, 한 모금 입에 머금고는 삼키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입 안에 담아 두기도 했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단순한 동작도, 엄마의 몸엔 이제 작은 산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조금만 따뜻해도 “뜨거워서 못 마시겠다.” 입에 닿는 온도 하나까지 엄마의 하루를 흔들어 놓았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엄마가 그 소리를 의식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찬송가를 틀어 두었다.
“저 소리는 어디서 나오는 소리고?” 계속 이어지는 소리가 신기하신지 엄마는 몇 번이고 물으셨다.
“엄마, 찬송가예요. 찬송가만 모아 놓은 거.” 그 말이 이해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소리는 공기처럼 방 안에 머물렀다. 엄마가 따라 부르며 은혜로운 아침을 맞기도 했다. 가사는 정확했고 멜로디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치매엄마가 아니라 오래전 신앙 안에 있던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날은 그 소리조차 소음처럼 느껴지는지 얼굴을 찡그리셨다. 나는 소리를 낮췄다가 다시 조금 높였다. 엄마의 의식이 닿지 않는 어딘가까지 도달하기를 바랬다.
찬송은 기억을 묻지 않았다. 이해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반복되며 머물렀다. 엄마의 깊은 곳에 말로 고백하지 못해도 귀로 붙들지 못해도 그 소리는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치매가 많은 것을 데려갔지만 찬송은 아직 데려가지 못한 것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늘 먼저 살펴야 했다. 문턱을 넘는 순간 혹여 넘어지실까 팔을 살짝 잡아 드리고, 어두운 공간이 두려우실까 불부터 켰다. 욕실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는 일도 엄마의 동선을 조용히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신발이 나오면서 그대로 벗어져 있으면 엄마가 화장실을 다녀간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닥에 물기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재빨리 닦았다. 화장실에 들어가 계시는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얼른 따라 들어가야 했다. 창문부터 먼저 닫았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지 않아야 했고, 남들이 보지 않지만 그래도 볼 수도 있다는 불안을 차단해야 했다. 그리고 샤워기의 차가운 물을 먼저 빼내면서 온도 조절을 하면서 화장실 바닥청소를 했다. 물이 조금이라도 튀면 엄마는 “추워서 안 씻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좌변기에 앉아 계신 동안 재빨리 팬티와 옷을 벗기고 씻길 준비를 하느라 늘 정신이 없었다.
어떤 날은 기저기에 오줌을 가득 싸서 몸과 마음이 함께 무거워지기도 했다. 방수패드가
일부는 막아 주었지만 옷과 이불에 남는 흔적은 늘 어김없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날은 푹 주무신 날이기에 한편으로 안심이 되기도 했다. 오줌을 누기 위해 화장실을 가지 않을정도로 푹 주무셨구나 했다. 되도록이면 오줌을 이불에 안 싸려고 무척 애를 쓰곤 했다. 밤중에 오줌을 싸지 않는 것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 중 하나였다.
어떤 날은 어느새 기저기를 빼 버리셨는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고, 화장실 어딘가에 숨겨 두신 적도 있었다. 겨우 찾아낸 기저기를 비닐에 꽁꽁 싸며 집 안에 냄새가 남지 않도록 뒷정리를 했다. 어떤 때는 물의 온도조절을 잘 했다고 생각해서 엄마의 몸에 물을 뿌리면 엄마의 몸은 물 온도에도 몹시 예민했다. 조금만 차가워도
“아이고, 차가와라.” 엄살처럼 들릴 만큼 크게 반응하셨다.
용변 뒤 물을 내렸는지, 잊고 지나치진 않았는지 마지막까지 확인하는 일도 이제는 내 몫이었다. 화장지를 사용하고 난 후에도 버리지 않고 쌓아 두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화장지를 늘 조금씩 뜯어 주머니마다 넣어 두셨다. 혹시 필요할까 싶어 챙기던 오래된 습관이 치매와 섞여 더 단단해진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 화장지는 금세 새것으로 갈아야 했고,
주머니에서 다시 꺼낸 휴지는 구겨지고 손에 닿아 다시 쓰지 못한 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 작은 종잇조각 하나가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일이었는데, 이제는 버릴 때마다 괜스레 마음이 아팠다. 엄마가 조금씩 흘리고 잃어 가는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무언가와 맞닿아 있는 것만 같아 가끔은 두렵기까지 했다.
밤에는 그저 잠만 주무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떤 날은 조용히 일어나 창밖을 오래 바라보기도 했고, 집 안을 돌아다니며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 놓기도 했다. 드립커피 봉지를 찢어 바닥에 쏟아 놓고, 냉장고의 음식들을 꺼내 따로 싸 두기도 했다. 그러고는 한밤중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밖으로 나가려 했다.
잠결에 화장실을 가다 넘어지실까 봐, 나는 밤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작은 불을 하나 켜 두면 그 불빛이 신경 쓰이시는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시고, 결국 방 밖으로 나오셔서 거실을 배회하며 서랍을 뒤지고 물건들을 뒤죽박죽 만들어 놓곤 하셨다.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않으면 다음 날의 활동이 무너지기 때문에, 어떻게든 빨리 잠들게 해 드려야 한다는 또 하나의 고비가 매일 밤 찾아왔다.
이스라엘에서 온 나베가 말했다. 구순이 넘은 할머니도 요양사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따로 돌본다고. 할머니의 자녀도 9명이나 되지만, 몸은 전문가가, 마음과 정신은 가족이 지킨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깨달았다. 가족은 서로 너무 가깝고,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일상을 도와주는 일에서는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잠시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차를 마시고, 즐거운 놀이를 하는 일은 가족이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루의 생존을 돕는 일상 돌봄은 가족에게 때로는 너무 벅차고 가혹한 일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