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이 바뀐 우리, 엄마와 나

by 김영연

치매엄마를 최대한 늦게 요양원에 가시게 하는 것이 목표 중 하나였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삶을 선택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들은 늘 처음 겪는 일의 연속이었고, 그때마다 감정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다. 매번 무방비 상태로 맞닥뜨리다 보니, 엄마와 나, 우리 가족의 일상을 지켜내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다.


목욕을 하고 나서 옷을 입히는 일은 매번 전쟁이었다. 옷을 챙겨드리면, 엄마는 그대로 입지 않았다. 겉옷 위에 속옷을 입고, 한여름인데도 옷을 몇 겹이나 껴입었다. 긴 팔 정장만 입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겨울에는 상황이 더 복잡했다. 팬티와 런닝을 먼저 드리고, 다 입으신 것을 확인한 뒤 내복을 드려야 했다. 한꺼번에 옷을 드리면, 내복을 먼저 입고 팬티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겉옷도 순서대로 시간차를 두고 하나씩 입히지 않으면, 외투 위에 조끼를 입는 등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옷만 해도 몇 겹을 다 껴입은 셈이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작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정리했다. 그러나 고개를 들면, 엄마는 어느새 다른 옷을 꺼내 입고 계셨다. 방금 정리한 것이 늘 허사가 되었고, 옷들은 금세 가방 속에 뒤섞여 들어갔다. 예쁜 옷을 골라 입는 작은 즐거움을 드리고 싶어 이것저것 챙겨서 걸어 놓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꼭 필요할 때 쓰시라고 한 박스에 가지런히 정리해 두었던 손수건과 스카프도 모두 꺼내서는 나에게 쓰라고 내밀고, 방 안 여기저기로 흩어 놓으셨다. 어디에 두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사라져 버렸다. 엄마의 주머니를 열어 보면, 이제는 온통 휴지뿐이다. 어쩌면 엄마에게 남은 ‘필요한 것’의 세계가 점점 더 단순해지고,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계도, 안경도, 어느 것 하나 엄마의 불편을 덜어주는 도구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들이 사라질 때마다 엄마는 그것들을 찾아야 한다며 진땀을 흘렸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잃어버린 물건 하나하나보다 더 마음이 아픈 건, 사라지는 ‘기억의 자리’를 매번 바라보는 일이었다. 엄마가 삶을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보내시도록, 알뜰살뜰 챙겨드리고 싶었던 마음은 점점 허공으로 흩어졌다.

나무 빗으로 엄마의 머리카락을 빗어 드리면 혈류가 조금은 좋아져서, 혹시나 뇌에도 작은 자극이 될까 싶었다. 하지만 빗살이 두피에 닿는 순간, 엄마는 아프다며 몸을 살짝 움찔하셨다. 마사지를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커도, 엄마의 몸은 이제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어느 날은 엄마가 입고 있던 팬티가 사라지고, 방 안에서는 은근한 냄새가 났다. 실수한 것이 창피했는지, 엄마는 팬티를 어딘가에 숨겨두곤 했다. 방 안을 샅샅이 뒤져도 찾지 못할 때가 있었고, 어떤 날은 웃옷 주머니가 유난히 묵직해 보여 열어보니, 거기에 팬티가 똘똘 말린 채 들어 있기도 했다. 그 순간마다 숨기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 그 마음을 마주해야 하는 나의 마음이 동시에 아렸다.


서울로 모시고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몸살이 났다. 침대에 누워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엄마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 나 좀 아파서 쉬어야 해요.”

“아프기는 어디가 아프냐. 언니 집 갈건데 좀 따라가자.”

그 말이 너무 낯설었다. 예전 같으면 엄마는 나 대신 아파주겠다는 사람, 나의 아픔을 자기 몸으로 가져가려 하던 그런 엄마였다. 그런데 이제는 엄마의 목적이 더 중요해졌다. ‘언니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 하나가 모든 판단을 대신했고, 나는 그저 방해물이 되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엄마는 더 이상 나를 걱정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지켜야 할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누구나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어렵다고 말했다. 나 역시 치매 엄마라는 상황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고, 치매가 어떤 행동을 불러오는지에 대한 사전 지식도 전혀 없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평소의 엄마를 너무 잘 알았기에—아무리 치매가 왔더라도 우리 엄마이니, 나를 이해해 주고 조금은 봐주겠지—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나를 향해 죽음까지도 불사할 것 같던 엄마는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고, 그 자리에 낯설고 예측할 수 없는 또 다른 엄마가 서 있었다.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치매 엄마를, 예전의 우리 엄마가 본다면 어땠을까? 그 상상을 하다가 문득 목이 메어와 혼자 조용히 울음을 삼킨 적이 많았다. 분명한 것은, 예전의 엄마라면 지금의 엄마를 가만두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시간의 잔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어느 날부터 엄마는 가방에 옷을 차곡차곡 싸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보이면 넣었다. 속옷, 옷가지, 모아두었던 수세미, 가위, 비누, 심지어 내 옷들까지. 그 가방을 들고 큰 이모 집에 갔다가 고향인 외가로 가겠다고 했다. 따라가자는 엄마를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말리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 혼자 갈 수 있어. 언니 집은 저 길가에 있어. 바로 갈 수 있어.”

가방을 숨겨도 금세 찾아냈다. 엄마의 눈치는 치매보다 빨랐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미행하는 딸이 되었다. 혜화동 골목을 뛰어다니며, 무거운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선 엄마를 뒤쫓았다. 엄마는 이 골목 저 골목을 쏜살같이 걸어 다녔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고향에 가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말하며, 누군가에게 천 원만 빌려 달라고도 했다. 버스는 어디서 타는지 묻다가, 어떤 사람은 엄마를 이상하게 여겨 파출소까지 데려가 주기도 했다.


비 오는 날 밤, 엄마는 혜화동 일대를 몇 시간이고 헤매었다. 나 역시 비를 맞으며 엄마를 따라다녔다. 버려진 우산을 몇 개씩 주워 들고 돌아오기도 했다. 비가 오든 안 오든, 엄마는 집을 나설 때 꼭 우산을 챙겼다. 그 우산은 엄마의 지팡이이자, 세상으로 나아가는 작은 깃발이었다. 처음에는 엄마가 집을 나가려는 것이, 내가 화를 나게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치매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더 이상 엄마를 탓할 수 없었다. 한여름 땀범벅이 된 채로 엄마의 발걸음을 쫓아다니며, 나는 돌봄이란 감정이 아니라 이해와 인내라는 사실을 배웠다.


어느 날, 나를 따라 딸 유진이도 함께 미행에 나섰다. 할머니가 어떤 모습으로 다니는지 직접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멀찍이 몸을 숨기며 엄마를 따라다녔다. 엄마의 걸음은 너무 빨라서 잠시만 눈을 돌리면 금세 사라졌다. 종횡무진 골목을 누비는 엄마를 보며, 우리는 걱정과 놀라움 사이에서 계속 숨을 삼켰다. 우리가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던 그 시간이 얼마나 긴장되고 고단했던지 모른다. 정말로 세 모녀가 함께 한 편의 영화를 찍는 것 같았다. 몇 번의 가출을 함께 뒤쫓은 뒤, 유진이는 말했다.

“엄마, 할머니 이제 그만 요양원에 모셔야 해요. 이건 아니에요. 외삼촌들이랑 빨리 상의하세요.” 그 말이 내 가슴을 깊게 찔렀다. 하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그래, 이런 때를 위해 주사와 약이 있는 거구나.’ 엄마는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나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 엄마를 떠나보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름의 끝자락, 엄마는 여전히 가방을 싸며 말했다.

“언니 집에 갔다가 감천가에 가야지.”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엄마의 가방을 살짝 들어보았다. 그 안에는 엄마가 짠 수세미 몇 개, 팬티, 그리고 얼마 전 찍었던 우리 세 모녀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엄마의 가방이 무겁지 않다는 것을. 그건 짐이 아니라, 엄마 안에 남아 있는 마지막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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