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서울로 모시고 온 뒤, 엄마의 형제자매들과 조카들까지 차례로 찾아왔다. 그들은 하나하나 세심하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었다. 내가 엄마를 제대로 돌볼 수 있을지 걱정했는지, 외숙모들께서는 삼계탕, 도가니탕, 사골 곰탕, 여러 영양죽, 멸치, 고구마 등을 연달아 보내주셨다. 그리고 큰이모는 엄마가 맛나게 드시면 좋을까해서 온갖 반찬들을 만들어서 보내 주셨다.
큰이모는 전화를 할 때마다 꼭 같은 말을 건네셨다.
“오늘은 엄마가 좀 어떻노? 나는 너만 믿는다.” 그 말이 위로인지, 미안함인지, 스스로를 달래는 주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큰이모는 그렇게 마음을 붙들고 있는 듯했다.
엄마는 어떤 날이면 눈을 지그시 감고, 머리가 아프다면서 머리를 감싸쥐곤 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나는 엄마가 드시도록 챙겨둔 밥 위에 부추 김치를 올려 놓는다.
“엄마, 큰 이모 솜씨가 이렇게 좋으시네요. 구순이 되셔도 요리 솜씨는 여전하시네요. 아직도 이렇게 맛있는 걸 잘 만드세요.”
“엄마, 이모가 이것만 보내주신 게 아니에요. 깻잎도 드셔 보세요.” 그러면 엄마는 슬며시 숟가락을 쥐고 한 숟갈 뜨며, 반찬을 입에 넣으셨다.
“엄마, 반찬은 젓가락으로 집어야지요.”
혹시라도 젓가락질이 더 나을까, 또 잔소리를 덧붙였다.
“엄마, 이것은 한남동 외숙모가 보내 주신 거예요. 감사하니 축복 기도를 드려야지요.”
“그래, 기도하자.” 엄마는 구구절절 마음을 담아 기도를 해 주셨다.
“엄마, 이건 뭐였어요?”
“그거, 가죽이네.” 오늘 아침 먹어보지도 않고, 보기만 해도 아는 엄마였다.
“선산 큰 외숙모가 보내 주신 거예요.” 우리는 반찬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을 먹곤 햇다. 덕분에 나는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엄마가 남긴 음식까지 다 먹어치우며 하루를 든든히 시작햇다.
외가 식구들은 엄마가 서울로 오셨다는 소식에 차례로 찾아오셨다. 집안의 큰일을 도맡아 하는 외삼촌과 외숙모는 큰 이모 댁에 엄마를 모시고 오라고 해서 모두 한번에 만나게 해 주셨다. 엄마가 잘 걷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당장 보행보조기를 사주겠다고 하셨다. 엄마가 치매등급이 있어 싸게 살 수 있다며 겨우 말렸지만, 엄마의 건강 상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려는 마음이었다. 다른 외삼촌, 이모들도 잇따라 찾아와서 엄마를 위해 함께 시간을 가지고, 엄마한테 필요한 것을 사라고 돈까지 챙겨 오셨다.
어릴 적 큰 언니에게 혼났던 이야기는 엄마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언니한테 맞을 때 너무 아팠다.”
나도 어느 날 너무 화가 나서 엄마의 엉덩이를 살짝 때린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것을 ‘빗자루로 때렸다’고 기억했다. 우리집에는 빗자루도 없는데 말이다. 아마 어린 시절의 기억이 겹쳐져 있었던 듯했다. 삼촌은 혹여 남아 있을 섭섭함을 풀라며, 엄마와 큰 이모를 화해시키기도 했다.
엄마와 가장 친했던 바로 아래 이모는 큰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찾아왔다. 엄마는 옥주 이모의 아들이 조카 희권이를 보자마자 금방 알아보았다. 가끔은 이모를 부를 때 “권이 엄마” 했는데, 그 기억으로 이모를 “권아”라면서 불렀다. 조카 며느리는 오래 보지 않아 기억이 희미했는지 이렇게 예쁜 색시는 누구냐며 물었다. 이모는 언니가 치매에 걸린 것을 아주 속상해 했다. 지난번에 엄마와 만났을 때 이모가 입었던 옷을 엄마가 예쁘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며 그 옷을 들고 오셨다. 엄마는 기억도 못하고 지금 그 옷을 보고도 그렇게 좋아하는 기색이 아니었지만, 이모는 엄마가 원하는 것을 다 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엄마가 드실 것과 필요할 만한 것들을 잔뜩 들고 오셨다. 엄마가 이모의 양산을 예쁘다고 하자, 이모는 바로 그 양산도 주고 가셨다. 무엇이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모는 저녁도 맛있는 것으로 사 주셨고, 조카들은 엄마에게 용돈까지 드렸다.
다음날 엄마는 새 양산을 들고 외출하셨다.
“엄마, 이 예쁜 양산 누가 주셨어요?” 엄마는 말했다.
“어떤 할머니가 줬다.” 엄마의 기억 속 동생 ‘옥주’는 여전히 젊은 시절 모습이었다. 할머니가 된 옥주는 엄마에게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나보았다.
“엄마, 어제 옥주 이모 오셨잖아요. 옷도 주시고 양산도 주고 가셨는데 기억 안나요?” 엄마는 말했다.
“옥주가 언제 왔다 갔노? 와서 나도 안 보고 갔네.” 늘 이런 식이었다.
옥주 이모는 내가 엄마를 돌보는 일이 너무 버거울까 봐, 며칠이라도 엄마를 대신 돌봐주겠다고 몇 번이나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나는 이모를 그 무게 속으로 끌어들일 수 없었다.
“이모, 치매가 아니어도 지금은 함께 지내는 것 자체가 힘든 시간이 될 거예요. 지금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이모는 마음으로 내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셨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오히려 더 맡길 수 없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요… 이 일은 함부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모까지 지치게 할 수는 없잖아요.”
외가의 9형제자매는, 엄마가 이렇게 된 후에는 모두 함께 모이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2박 3일 동안 모두가 함께 모여 형제자매 간의 진한 정을 나누었다. 그 따뜻한 사랑이 우리를 지금까지 지켜 왔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