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엄마다움

by 김영연

엄마와 함께, 엄마다움

Motherish like a mother!


울산 엄마 집에 가면,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들을 종류별로 사 놓으셨다. 그리고는 다 먹기 어려울 정도로 산처럼 깎아 두고는 먹으라고 하셨다.

“엄마, 이렇게 많은 것을 한꺼번에 어떻게 다 먹어요?”라고 해도, 안 깎아 두면 깎는 것이 귀찮아서 안 먹을 것을 알고 미리 다 깎아 두셨다. 투덜투덜 잔소리를 하면서도, 엄마가 깎아 둔 과일이 변색되기 전에 다 먹어 치워야 했다. 그러면 엄마는 맛있어서 다 먹은 줄 알고 또 과일을 주시려 했고, 나는 “엄마, 이제 그만요”라며 소리까지 쳐야 했다.


며칠 전, 엄마는 감을 한 번에 끊지 않고 곱게 깎으셨다. 단감이 참 맛있다며, 먹기 좋게 작게 잘라 내 앞에 내밀어 주셨다. 어떤 날은 사과 껍질을 너무 두껍게 깎아 버리시기도 했다.

“엄마, 과일 값이 얼마나 비싼데 이렇게 껍질을 다 깎아내면 어떡해요?” 하고 말했지만, 문득 외가에 과일과 채소가 늘 풍성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로 자꾸 마음이 돌아가니 아까운 줄 모르시는 걸까, 아니면 손이 예전 같지 않은 걸까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되도록 엄마가 손끝을 자주 움직이도록 했다. 아이들 어릴 때 소근육을 쓰면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했던 그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시 치매가 진행 중인 엄마에게도 작은 자극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엄마의 손을 자꾸 움직일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찾아 드렸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복잡한 일은 엄마께 부탁드리기 어려웠고, 내가 정성껏 만들어 드린 음식을 끝까지 드시는 것조차 때로는 힘겨운 일이 되곤 했다. 그러면 나는 기껏 준비한 음식을 드시지 않는 것이 속상했고, 남은 음식을 결국 내가 모두 먹어치워야 했다. 엄마 덕분에 꼬박꼬박 음식을 챙겨 먹고, 엄마가 남긴 음식까지 먹게 되니까 내 몸을 잘 돌보고 있는 셈이었다.


가끔 야채를 다듬어 달라 하면 엄마는 즐겁게 손을 움직이셨다. 고구마줄기 껍질을 벗기고, 고춧잎을 골라내는 일은 아직도 능숙하셨다. 나물 다듬기, 김치 담그기, 호박 썰기…그리고 엄마의 칼질 솜씨는 손등이 다쳐 반깁스를 했는데도 살아 있었다. 무엇이든 나를 도울 수 있다면 엄마는 기꺼이 하려 했다. 엄마의 손은 세상이 흐려져도 마지막까지 남는 기억이었다. 여전히 살아 있는 손의 기억들이 오래오래 가기를 바랬다.


엄마는 우리 집에 오시면 늘 나의 살림을 다시 정리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들이 서울 시내 나들이를 한 번 할 동안, 엄마는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살아온 것을 늘 아쉬워하시던 엄마를 위해, 이제는 내가 시간을 내기로 했다. 엄마가 누리지 못한 것을 함께 누리기로 했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음식들도 먹으러 다녔고, 가보지 못한 곳들도 힘을 내어 다녔다.


엄마의 손재주를 나보다는 딸인 유진이가 더 닮았을지도 모른다. 손으로 하는 일은 엄마가 잘 했기 때문에 나는 엄마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딸 유진이는 내가 손재주가 없으니까 혼자 알아서 해야 했다. 엄마의 솜씨는 딸인 나를 건너 띄어서 손녀인 유진이에게 갔나 싶을정도이다. 유진이도 할머니를 닮아서 그런지 손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 잘했다.


나와 딸의 MBTI는 ENFP로 똑 같다. 아마 우리 엄마도 똑 같지 않을까?싶기도 하다. 비록 엄마가 이제 늙었어도 치매환자가 되었더라도 엄마답게 살아가도록 돕고 싶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 드리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이 왔을 때는 한 번 듣는 일이라 재미있는 시간이었지만, 같은 이야기를 늘 들어드리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도록 했다. 심지어는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과도 자주 만났다. 게스트하우스에 온 손님들은 자기 부모처럼 우리엄마를 잘 돌봐 주었다. 엄마하는 노는 시간이 즐겁다고까지 했다. 그만큼 엄마는 몸과 표정으로도 그들과 대화가 가능했다.


엄마는 감정이 풍부한 분이라 언제나 모든 상황들에 예민했다. 치매는 기억은 잃어가도 감정은 끝까지 남는다는 말을 늘 기억하려고 했다. 어떤 때는 했던 말을 늘 반복하기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엄마의 표정과 몸동작까지도 세심히 관찰을 해야 하기도 했지만, 무시할 때도 있었다. 엄마의 많은 경험들은 아직도 우리가 배워야할 것들이 많았다.


엄마의 치매가 우리에게도 미리 준비해야할 미래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치매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삶이 망가지고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지만, 누군가가 옆에서 세밀히 도와 주면 끝까지 잘 살아갈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든다.


엄마는 어디를 가나 빈손으로 가면 안된다. 아침마다 센터를 갈 때도 매번 빈 손으로 가니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 센터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면 안되요. 그리고 그곳에는 먹을 것이 다 준비되어 있어요. 엄마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그래도 엄마는 집에서 뭐라도 주머니에 넣어가서 선생님들께 드리고 싶어 했다.


엄마의 엄마다움을 찾아드리기로 했다. 엄마에게 좋은 것을 찾기 시작했다. 엄마와의 삶이 힘들지 않으려면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가야 했다. 비판을 하는 대신에 수용하고, 평가가 아니라 감탄해야 한다는 것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엄마와 함께, 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고 감사하기로 했다. 엄마의 모든 시간을 다 기록할 수는 없었지만, 엄마와 함게 살 수 있었음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긴다. 엄마가 치매 환자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이렇게 엄마와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막연하게나마 엄마의 사랑을 갚고 싶었고, 엄마와 함께할 시간이 주어지기를 바랐는데, 이렇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혹시 내 바람이 닿은 결과일까.


역지사지. 내가 엄마의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나는 엄마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엄마의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엄마가 이렇게 긍정적이고, 밝고, 유머러스하며 재치까지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저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는 그런 엄마를 그냥 내버려 두고 살았다는 것을. 이렇게 재미있고 지혜로운 엄마를, 그동안은 다른 사람들이 누리고 있었구나 싶어 마음이 조금 억울해지기도 한다. 이런 엄마의 모습을 더 함께 누리지 못한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엄마의 ‘엄마다움’을 더 찾아 드려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 질문과 함께, 그 마음마저도 이제는 솔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지금 우리 엄마는 가장 엄마다운 엄마로 돌아가는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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