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엄마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 그러다가 침대 아래로 내려와 자게 되었다. 그 작은 공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숨결과 몸짓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했지만, 동시에 서로의 수면을 방해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나뉘어 잠들게 되었다.
이 작은 분리 속에서 나는 ‘함께 있음’과 ‘독립’의 균형을 깨달았다. 우리가 다른 방에서 자는데도 엄마는 내가 잠들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았다. 타인의 존재가 내 삶의 리듬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잠드는 순간에 맞춰 나의 몸과 마음을 내려놓았다. 억지로라도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어, 원래의 생활 리듬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가끔 엄마는 내가 일어나 있으면 아침 시간을 방해하듯 일어나기도 했다.
잠자리에 드는 일조차 세심한 조율이 필요했다. 너무 일찍 잠들면, 엄마는 아침에 눈을 번쩍 뜨고 일찍 움직이려 했고, 너무 늦게까지 깨어 있으면, 다음 날 리듬이 깨졌다. 하루의 끝과 시작이 이렇게 작은 균형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엄마와 함께하는 일상의 섬세함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엄마가 화장실에 갈 때를 재빨리 따라간다. 그 작은 순간을 놓치면, 씻기지 않으려는 엄마와 긴 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변기에 앉아 있을 때 기저귀를 정리하고 옷을 벗겨 드린다.
“냄새나니까 씻어야 해요.”
“냄새는 무슨 냄새가 난다고 하노?” 엄마는 씻기 싫어하지만, 기저귀 속 소변이 몸에 닿아 있었을 것이고, 피부가 약한 엄마의 몸을 생각하면 씻기는 수밖에 없다. 어느 날은 팬티의 고무줄 자국이 허벅지에 깊게 남아 있었고, 그 자리를 가려운 듯 계속 긁고 있었다.
엄마의 몸을 이렇게 가까이, 이렇게 찬찬히 살펴본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다. 예전에도 가끔 함께 목욕탕을 가긴 했지만, 그때의 엄마는 늘 자기 씻는 일보다 내가 씻는 것을 먼저 챙기던 사람이었다. 늘 나를 먼저 돌보던 그 엄마를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지금은 반대다. 나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감겨 드리고, 목 뒤의 혈자리들을 꾹꾹 눌러드린다. 아프다고 그만하라고 손사레를 친다. 머리쪽으로 혈류흐름이 좋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꼼꼼히 누르고, 어깨와 날개죽지를 비누거품을 묻혀 맛사지하듯 훑어 내렸다. 또 아프다고 하시는 걸 보니 모든 부분이 뭉쳐가고 막혀가는게 틀림이없었다. 겨드랑이와 가슴아래 접힌 살 사이까지 샅샅이 살피며 씻겨 드렸다. 검은 점들이 살결이 접힌 부분에 있었다. 엄마 몸이 이렇게 생겼구나!…피부는 희지만 피부가 아주 얇았다. 발바닥의 용천혈, 삼음교등도 꾹꾹 눌렀다. 발바닥은 나보다 더 부드러웠다. 엄지 발톱에는 무좀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발톱이 너무 두꺼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부분의 딱딱함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원래의 발톱이 자라나고 있었다. 엄지발가락 발톱은 두뇌가 관계가 있다고 했나? 빨리 정상의 발톱이 자라나기를 바랬다. 그러면 엄마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야 할 어떤 사실을 지금에서야 확인하는 느낌이다.
몸을 씻겨드리는 사이에 시간도 절약하고 엄마도 엄마의 몸을 씻는 일에 참여를 하시게 하려고 양치를 하도록 치약을 묻힌 칫솔을 건넸다. 엄마가 양치를 잘 해줄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치약을 묻혀 손에 쥐어 주어도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감은 채 변기 위에 그대로 앉아 있기도 했다. 속이 터지는 순간이지만, 그 모습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배웠다. 돌봄은 설득이 아니라, 기다림을 통해 이루어고 있었다. 나의 바쁜 시간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울산에 계실 때, 시력이 흐려지니 정신까지 흐려지는 것 같아 안경을 새로 맞추어 드렸다. 보랏빛이 은은하게 도는 예쁜 안경테를 고르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끈까지 달아 드렸다. 하지만 안경은 금세 온데간데없었다. 돋보기도 사라졌다가 겨우 다시 찾곤 했다. 심지어 엄마집에는 본 적 없는 돋보기가 하나 더 놓여 있기도 했다. 아마 데이케어 센터에서 누군가와 바뀌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서울로 올라온 뒤 엄마의 안경을 다시 맞추어 드렸다. “서울에서는 정신을 더 똑바로 차려야 하니까…” 스스로에게도, 엄마에게도 건네는 말이었다.
“엄마, 이건 안경이고, 이건 돋보기예요.”
여러 번 설명해도 엄마는 두 가지를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성경책을 읽을 때나 퍼즐을 맞출 때만 돋보기를 쓰도록 했다.
얼마전에 경을 쓴 채 넘어져 눈가를 심하게 다친 적이 있었다. 그 일 이후로는 혹시 또 다칠까 봐, 일상에서는 안경을 아예 벗고 생활을 하도록 했다. 작은 안경 하나가 이제는 편의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위험을 관리해야 하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이 시기는 치매 엄마의 마지막 육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배웠던 것보다 인생의 깊이를 치매엄마에게 더 많이 배우고 있다. 엄마가 나를 키웠듯, 이제는 내가 엄마를 돌보고 있다. 하지만 그건 돌봄이 아니라, 사랑을 되돌려주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