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곳

by YYMassart
Y. Y. Massart, <남편이 있는 곳>, 2021년 1월



2019년 여름 시어머니는 며느리로부터 막내아들이 죽는다는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울부짖는 며느리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기차에 올랐다. 불행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여권 만기일이 지났다는 것을 공항에서 알게 된 시어머니는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통곡하며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시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바로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의 모습이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는 트로이아의 왕자 헥토르의 장례를 치르는 대목에서 끝난다. 이 책의 마지막 내용을 들여다보면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는 제일 믿고 의지했던 큰 아들 헥토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적군 아킬레우스가 아들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고 끌고 다니며 유린하는 것을 보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심한 고통을 느꼈다. 아들의 시신을 돌려받기 위해 아버지는 적군의 진영으로 들어갔다. 원수 아킬레우스에게 무릎을 꿇고 그의 손에 입맞춤을 하며 간절히 애원했다. 죽은 아들의 명예를 지키려는 백발의 노인을 불쌍히 여긴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넘겨줬다.


트로이아 인들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장작들을 날랐다. 높다란 장작더미 위에 헥토르의 시신을 올려놓고 불을 붙였다. 비탄에 잠긴 유족은 눈물을 흘리며 잿더미 속에서 고인의 흰 뼈를 주워 모아 황금 항아리에 담았다. 그리고 부드러운 자줏빛 천으로 싼 황금빛 항아리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는 돌을 조심스럽게 쌓아 올렸다.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의 장례식을 성대히 치르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기원전 8세기에도 기원후 21세기에도 인간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가족은 감당하기 힘든 슬픔에 절규한다. 그리고 고인이 떠나는 마지막 길을 위해 가족은 예의를 다해 장례를 치르고 간절히 명복을 빌어준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로 인해 마지막 인사마저 허용되지 않은 가족들. 통곡하며 울부짖는 그들의 고통이 TV 뉴스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질 때, 나는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알기에 마음이 쓰렸다. 그럴 때면 슬픔에 젖어들어 남편의 장례식이 떠오르곤 했다.


남편의 장례는 친정 식구들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치러졌다. 한국의 장례문화가 낯선 남편의 형은 묵묵히 뒤에서 함께 했다. 장례 장면은 비디오로 찍어 시어머니에게 보내졌고 시어머니는 멀리서 홀로 통곡하며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런데 남편의 유골을 어디에?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질문에 대한 선택은 어려웠다. 가족회의가 열리고 그 누구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전화를 통해 들려온 시어머니의 한마디. “한국에!” 남편의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의 소원은 한국에서 사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빠르면 2년 늦어도 5년 뒤에는 사표를 제출하고 춘천에 정착하기로 계획했었다. 게다가 우리가 살 집도 정해지자 남편은 자신이 꿈꾸던 춘천에서의 삶이 실현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늘 자랑하고 다녔다. 아들의 소망이 무엇이었는지 잘 알고 있었던 시어머니는 차마 아들의 유골을 프랑스로 데려오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훗날 내가 남편과 함께 묻힐 수 있게 배려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렇게 남편은 친정가족 납골당에 안치되어 친정아버지 그리고 고양이 찔레와 함께 있게 되었다.


남편은 늘 꿈꾸던 장소 춘천에 있다. 하지만 남편이 꿈꾼 장소는 그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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