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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랑의 쓸쓸한 메아리

by YYMassart
Y. Y. Massart, <외사랑의 쓸쓸함>, 2021년 10월



‘사랑하는 사람을 몹시 그리워하는 데서 생기는 마음의 병’을 상사병이라고 한다.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할 때 생기는 병이다. 혼자만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은 아프고 괴로운 사랑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이 아픈 사랑을 한 요정 에코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제우스가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한 아내 헤라. 여신은 즉시 남편을 잡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다. 그런데 말 많은 요정 에코가 헤라를 붙잡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 사이 제우스는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에코는 제우스 신을 도운 것이다. 그 의도를 알아챈 헤라 여신은 에코에게 평생 남의 끝말만 반복하는 벌을 내렸다.


에코는 타인이 말하면 그 말의 끝말을 따라 해야 했고 남이 말하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상실에 빠진 그녀는 산속으로 들어가 홀로 지내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눈에 띈 한 청년. 그는 바로 나르시스였다. 나르시스를 보고 사랑에 빠진 에코. 하지만 사랑고백을 할 수 없는 에코는 나르시스를 몰래 훔쳐볼 뿐이었다.


그때 나르시스가 말했다. “여기 누구 있니?” 그러자 에코는 “있니?”라고 그의 끝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자 나르시스는 “우리 여기서 만나자.”라고 말하며 떠나려 했다. 그때 에코는 “만나자.”라는 끝말을 반복하며 나르시스에게 달려가 그를 껴안았다.


그러자 나르시스는 손을 치우라고 소리쳤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몰차게 퇴짜를 맞은 에코는 더 깊은 숲 속의 동굴에서 꼭꼭 숨어 살았다. 그녀는 실연의 고통으로 비참하게 몸이 말라갔다. 점점 여위어가며 살갗이 오그라들었고 몸속의 진액이 모두 대기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녀의 목소리와 뼈만 남게 되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의 뼈는 돌로 변했고 그녀의 목소리는 지금도 산속에서 타인의 끝말만 반복하며 울린다고 한다. 맞다. 메아리는 요정 에코의 목소리였다.


여기 1630년경에 제작된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의 <나르시스와 에코>를 보자. 이 그림은 나르시스 인생의 마지막 장면을 그대로 다루고 있다. 물가에 나르시스가 죽은 채 축 늘어져 누워 있다. 그의 눈길은 여전히 물가를 향하고 있다. 나르시스의 머리맡에 수선화 꽃이 피어 있다. “그의 시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신 대신 노란 중심부가 하얀 꽃잎들에 둘러싸여 있는 꽃 한 송이를 발견했다.”는 <변신 이야기>를 푸생은 그대로 옮겼다.


화면의 중앙에 에로스가 들고 있는 횃불은 활활 타오르다 곧 재가 되어버릴 사랑이다.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상징한다. 또 삶이 타올라 재가 되어버리는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에코는 후경 오른쪽 구석에 위치한 바위에 의지한 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녀의 뼈가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화가는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에코의 사랑을 거절한 나르시스. 그로 인해 목소리만 남게 된 에코를 불쌍히 여긴 요정들이 복수의 여신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여신은 나르시스를 자신의 이미지에 반하게 만들어 사랑은 하되 영원히 사랑을 얻을 수 없는 형벌을 내린다. 그렇게 나르시스의 안타까운 생이 자연에 둘러싸여 조용히 숨을 거두고 있다. 나르시스의 죽음은 난폭한 죽음이 아니다. 그 또한 애절한 사랑으로 인한 죽음이었다. 비록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했을지언정 가슴 아픈 외사랑이었다.


남편이 떠난 후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나 또한 에코처럼 몸이 말라갔다. 16kg이 빠지며 살갗이 오그라들어갔다. 슬픔으로 인해 내 몸속의 진액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감당하기 힘들었던 아픔은 시간이 흐르며 차츰 감당할 수 있는 아픔으로 변하고 있다.


에코와 나르시스는 각각 외사랑의 아픔으로 인해 이슬처럼 사라졌다. 다행히 나에겐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은 추억의 힘이 있다. 남편이 꼭 안아주던 따뜻한 추억이 나를 매일 감싸준다. 그럼에도 내가 하고 있는 이 사랑 또한 외사랑이다.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는 나의 외사랑. 서글프게도 나의 사랑은 쓸쓸히 울리는 메아리를 닮았다.



니콜라 푸생, <나르시스와 에코>, 1630년경



Y. Y. Massart, <나르시스의 수선화>,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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