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e Valland
국립 박물관 관장 자크 조자르(Jacques Jaujard)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루브르 박물관의 모든 작품을 피난 보냈다. (감동 이야기 : 루브르 박물관 참고) 독일 나치의 약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는 고딕 양식 대성당의 거대한 창문을 모두 떼어내라고 명했다. 성당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 창은 폭격이 시작되면 제일 먼저 깨질 수 있었다. 그리고 독일군이 떼어내 가져가기 전에 미리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을 명한 것이다. 샤르트르 대성당을 시작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성당의 거대한 창문들은 피난을 떠났다. 그리고 4년 후 종전이 된 후에야 비로소 다시 돌아와 오늘날까지 대성당을 아름답게 빛내고 있다.
독일 나치의 약탈은 박물관에서 그치지 않았다. 독일군은 개인이 소장한 예술품, 귀중품 등 값어치 있는 것이면 모두 빼앗았다. 특히 미술상과 유태인 가족이 소장한 예술품을 노렸다. 그렇게 약탈된 미술품들은 주 드 폼(Jeu de Paume)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그곳은 독일군이 지정해 놓은 보관 창고였다.
독일군은 주 드 폼에서 일하던 프랑스인들 중 한 명만 남겨두고 모두 독일인으로 교체했다. 약탈한 예술품을 비밀리에 독일로 전송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그 한 명이 바로 로즈 발랑드(Rose Valland)였다. 그녀는 독일어에 능통한 레지스탕스였다.
국립 박물관 관장 자크 조자르는 비밀리에 로즈 발랑드를 불러 미션을 내렸다. 그것은 주 드 폼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모든 예술품의 움직임을 메모하는 것이었다. 작품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작성하는 미션이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 같은 그 미션을 로즈 발랑드는 망설임 없이 착수했다. 그녀는 자신의 메모장에 약탈당한 사람들의 이름, 작품의 이름과 크기, 작품의 수, 작품의 수송을 담당한 독일군의 이름, 독일에서 작품의 운송을 책임진 이의 이름, 상자의 모양 그리고 이전될 목적지는 물론 호송하는 기차의 번호, 날짜와 시간 등 모든 것을 상세히 적었다.
로즈 발랑드는 나치 관리인들의 대화 내용을 문 뒤에서 몰래 엿들었고 밤에는 그들이 버린 서류를 번역하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등 죽음을 무릅쓰고 4년이란 긴 세월 동안 홀로 외로운 싸움을 했다.
그리고 1944년 연합군의 승리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예술품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 전에 빨리 예술품을 찾아내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당시 로즈 발랑드는 유럽 예술 유산 구조를 담당한 미군 장교들 중 한 명인 제임스 로리머(James Rorimer)에게 자신의 메모지를 넘겼다. 그들은 독일 남부에 위치한 노이슈반슈타인 성(Neuschwanstein Castle)과 독일 중부에 위치한 Merkers 소금 광산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거대한 양의 예술품을 구해냈다. 뿐만 아니었다. 로즈 발랑드는 마지막으로 떠난 호송 열차의 번호와 시간을 재빠르게 알려 폭격을 막는 등 예술품의 마지막 한 점까지 모두 지켜냈다.
점령기간 동안 프랑스에서 약탈당한 예술품의 총숫자는 100 000 점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주 드 폼을 거쳐 지나간 예술품은 60 000 점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60 000 점의 예술품은 거의 모두 다 되돌아왔다. 로즈 발랑드의 메모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2143 점의 예술품은 프랑스의 국립 복구 박물관(Musées nationaux récupération, MNR)에서 보관 중이다. 그 2143점은 합법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소유자가 나타나면 반환될 작품인 것이다.
로즈 발랑드는 1980년에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2005년 4월 25일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에 위치한 주 드 폼(Jeu de Paume) 박물관 정면의 벽에 그녀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패를 달았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