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박물관장 자크 조자르(Jacques Jaujard)
오늘도 거장들이 남긴 예술품을 감상하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런데 아는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 사모트라케의 니케, 밀로의 비너스 등 그 수많은 예술품을 모두 빼앗길 뻔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바로 아돌프 히틀러에게... 하지만 다행히 프랑스에는 국립 박물관장 자크 조자르(Jacques Jaujard)가 있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된다. 그런데 전쟁이 시작되기 10일 전쯤, 루브르 박물관은 문을 닫는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크 조자르의 지시 아래 작품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침략을 예감한 조자르는 루브르에 소장된 작품들을 안전한 장소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1862개의 나무상자를 실은 203대의 차량이 대장정에 들어갔다.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180Km 떨어진 샹보르 성(Château de Chambord)이었다. 그렇게 1939년 9월 3일 모나리자와 함께 작품 4000여 점이 루브르에서 사라졌다.
9개월 후,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했다. 1940년 6월 23일 히틀러는 파리 에펠탑 앞에서 자신의 승리를 자축했다.
그리고 8월 16일 박물관장 조자르는 독일 장교 프란츠 폰 볼프-메테르니히(Franz von Wolff-Metternich) 백작을 루브르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히틀러에 의해 임명된 많은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예술품을 감독하고 약탈하는 임무를 맡았다. 두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있었던 곳으로 향했다. 독일 장교는 걸으며 벽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작품이 없었다. 벽이 비어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조자르는 독일 장교에게 작품들은 모두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고 진실을 말했다. 그런데 약탈하러 온 독일 장교는 미소를 지었다. 천운이라고 해야 할까 독일 장교는 나치당 회원이 아니었다. 비록 적군으로 만났지만 두 사람은 예술품 보존을 위해 비밀리에 서로 도우는 동맹자가 된다.
1940년 7월 15일 히틀러는 프랑스 정부에 다음과 같이 명했다. ‘프랑스에 있는 모든 예술품의 움직임을 금지한다. 예술품이 손상되거나 도난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움직임을 금지한다.’ 사실 이 명을 내린 이유는 예술품을 숨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루브르의 작품들은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텅텅 빈 루브르를 보고 화가 난 한 나치 장교는 모든 작품을 다시 루브르로 가져오라고 명했다. 하지만 폰 볼프-메테르니히 백작은 오히려 그에게 히틀러의 명령서를 내밀며 위협했다. 그리고 전쟁 중에 작품을 옮기는 것은 위험한 행위라고 강조했다. 어차피 독일이 승리할 것이라 믿었던 나치 장교는 전쟁이 끝난 후 안전하게 옮기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란 설득에 넘어갔다.
더 많이 약탈하기 위해 작성된 히틀러의 명령서는 오히려 조자르의 미션을 도와주는 명령서가 되었다. 그렇게 루브르를 떠난 작품들은 피난살이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지만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추위, 더위, 습기, 화재, 도난 그리고 폭격으로 인한 손상과 파괴였다. 프랑스 방방곡곡 75개의 성에 숨어있는 작품들을 잘 보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은 희생도 감수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조자르를 돕고 있는 폰 볼프-메테르니히의 의도를 눈치챈 독일 나치는 그의 직위를 해제하고 소환했다. 소중한 동맹자를 잃은 조자르는 레지스탕스들과 협업하며 작품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는 작품들이 있는 장소의 비밀 장부를 이중, 삼중으로 만들어가며 독일 나치의 시선을 피했고 나치에 협력하는 프랑스 비시 정부의 시선도 피했다. 그렇게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프랑스 문화유산을 지켰다.
1944년 8월 25일 샤를 드 골(Charles de Gaulle)은 파리의 자유를 외쳤다. 그리고 4년 만에 루브르의 작품들이 다시 파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어떤 작품도 손상되지 않았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모든 작품을 되돌려 놓는데 쓰인 시간은 1년이었다.
1952년, 폰 볼프-메테르니히 백작은 다시 파리로 향한다. 조자르의 요청으로 샤를 드 골은 프랑스 훈장 중 가장 명예로운 훈장 레지옹 도뇌르(La Légion d’honneur)를 그에게 수여한다.
1966년 말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는 조자르에게 새로운 직위를 약속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정치 성향이 달랐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렇게 루브르를 지켜낸 조자르는 물러난다. 그는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한 채 1967년 6월 21일에 눈을 감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자르의 생전에 좌절감을 안긴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는 루브르의 문에 <Jacques Jaujard>를 새겨넣으며 조자르의 업적을 영원히 남겼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