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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Massart Oct 29. 2021

슬픈 이야기 : 피카소

Y. Y. Massart, <아들 멤논의 시신을 들어 올리는 에오스>, 2020년 12월 (고대 그리스 도자기에서 영향)



1936년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던 화가 피카소는 모국인 스페인에서 내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불행하게도 프랑코를 앞세운 파시즘이 점점 확대되었고 가엾은 공화파 사람들은 매일 학살된다는 소식이었다.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소식에 피카소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1937년 프랑스에선 국제박람회의 개최를 앞두고 있었다. 프랑코를 증오했던 공화파 지지자들은 프랑스 국제박람회를 통해 스페인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이 절박한 사태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의 뜻을 이뤄줄 사람은 바로 피카소였다. 화가는 <게르니카>를 제작하며 프랑코의 잔인성을 세상에 널리 폭로했다.


프랑코는 독일 나치와 손잡고 게르니카란 작은 도시를 무참하게 폭격했다. 이 끔찍한 폭격으로 인해 게르니카는 피바다로 뒤덮였다. 화면을 보자. 왼쪽에선 한 여인이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다. 그 여인 바로 위에 황소의 머리가 나타났다. 왜 황소일까? 황소는 투우장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투우장에 갇힌 황소의 운명은 죽음뿐이다. 학살이다. 이와 같이 게르니카 인들도 갇혔다. 도망칠 구멍이 없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격을 어찌 피할 수 있을까? 야만적 행동에 죄 없는 아이들은 이슬처럼 사라져 갔다. 오른쪽에선 등불을 든 여인이 창문을 통해 얼굴만 들어오고 있다. 영혼인 듯싶다. 등불은 특히 말의 외침을 밝히고 있다. 말의 외침은 처절하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발발했다. 피카소는 나치 장교의 심문을 받게 된다. 그때 나치 장교는 손가락으로 <게르니카>를 지적했다. 그리고 “이것을 당신이 그렸는가?”라고 말하며 따지듯이 물었다. 피카소는 나치 장교를 향해 비웃는 웃음을 띠며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는 핏기가 돌았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바로 당신 나치들이야.”


제2차 세계대전은 76년 전에 끝났다. 하지만 오늘도 전 세계에서 날아드는 끔찍한 소식들. 죄 없는 사람들이 울부짖는 가족을 남겨두고 이슬처럼 사라진다. 안타깝게도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현재 진행형이다. 참 슬픈 현실이다.



피카소, <게르니카>,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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