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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r 04. 2023

걱정을 끊어내는 연습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초등학교 전문상담교사 어규아입니다. 2년 차 상담교사로서의 한 해를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을 잔뜩 안고 살아가는 병아리 교사예요. 저는 저의 모교 용암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제가 꿈꿨던 곳에서 꿈을 펼치고 있는 멋진 삶을 살고 있답니다.



Q. 모교로 발령받은 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데요. 감회가 새로웠겠어요.


저도 정말 신기했어요. 임용고시 합격 후 발령 희망 지역을 적어 냈는데, 제가 거주하는 지역으로 발령된 걸로도 모자라 제 모교인 용암초등학교로 가게 된 거 있죠. 이런 게 운명이구나 싶었다니까요.


더 놀라운 건 용암초등학교는 지금까지 위클래스가 없었는데 제가 발령 난 해 처음 생겼다는 거예요. 텅 빈 교실을 상담실로 리모델링하느라 힘은 좀 들었지만, 용암초 첫 상담교사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답니다. 





Q. 임용고시 공부는 어땠나요?


정말 힘들었어요. 더는 이 기간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 올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을 더욱 독하게 먹고 공부했죠.


합격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과거의 삶을 내려놔야겠다고 다짐했어요. 한번 놀면 계속 놀고 싶어 질 것 같아 친구들과의 만남도 미루고 거의 1년 동안 잠적하며 공부만 했어요. SNS도 하지 않아 친구들이 제 생존여부를 걱정한 적도 있었다니까요. (웃음)



Q. 불안감도 심했겠어요.


공부 시작할 때부터 최종합격자 발표까지 불안으로 가득했어요. 저에게 정말 간절한 목표였고 시험이라는 게 원래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불안해하는 저 자신을 인정해 주고 이를 추진력, 동기부여의 원천으로 활용하려고 노력했어요.


불안한 마음이 너무 심할 땐 그 마음을 노트에 적어 마주해 보기도 했어요. 고민을 글로 옮겨 적다 보면 생각보다 별거 아닌, 근거 없는 마음인 경우가 많거든요. 글쓰기의 치료적 효과라는 말도 있어요. 그러니 마음 복잡할 땐 글로 적어 보세요.





Q. 중등학교가 아닌 초등학교를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중등학교로 지원할 경우 학교가 아닌 위센터로 발령받는 경우가 있다고 해요. 저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소통하는 걸 더 중시했고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초등학교를 택했죠. 그리고 중등학교는 초등학교보다 위기사안이 많고 심각도도 높아요. 그래서 상담교사로서의 역량을 더 쌓은 뒤 중등학교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Q. 그렇다면 상담교사가 되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이 큰 영향을 미쳤어요. 성적, 취업 등의 이유로 교사라는 꿈을 포기해야 하나 싶어 고민할 때 선생님과 이야기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었거든요. 그때의 기억 덕분에 제가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아이들에게 학업보다 정서적 측면에서 성장을 도모하고 보다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더욱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 또한 하게 되었고요. 그래서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감정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상담교사가 되고자 한 거예요.



Q. 초등학교 상담교사 업무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당연히) 상담도 있고, 이를 토대로 아이들에게 적합한 상담 프로그램이나 치료 서비스 등을 시행, 연계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또한 생명존중교육, 정서행동특성검사, 학업중단숙려제, 또래상담활동 등을 통해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죠.



Q. 상담교사가 되어보니 어떤가요?


바라왔던 꿈을 이뤄 너무 기쁘지만 교육 현장에서 직접 일 해보니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걸 체감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자리이기에 책임도 막중하고요. 요즘은 심리검사 자격취득이나 대학원 진학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Q. 학생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걸 어려워할 거 같은데요. 실제로 상담해 보니 어떤가요?


감정표현이 서툰 친구들이 많아요. 실제로 상담할 때 자신이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다고 답하는 친구들이 태반이에요. 그래서 저는 '감정카드'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정리해 표현하기 어려울 때, 카드에 그려진 캐릭터 행동이나 단어를 보면서 자신의 기분을 파악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제가 아이에게 ‘오늘은 기분이 좋은 쪽이야(핑크색의 마음이야) 아님 안 좋은 쪽이야(파란색의 마음이야)?’라고 물어보면 아이가 카드를 유심히 보면서 '오늘은 핑크색의 마음이고 사랑받고 있는 거 같아요'라고 말해요. 학생이 단어의 뜻을 모를 땐 제가 설명해주기도 하고요. 상담을 하며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일, 그리고 이를 단어로 표현하는 일은 나이 상관없이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라고 느껴요.





Q. 상담교사만의 직업병 같은 게 있을까요?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상담자처럼 얘기할 때가 있어요. '내가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줘야 하나?', '상대가 충분히 공감받았다고 느낄까?'처럼요. 대화에 편하게 참여하고 싶어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일상에서도 공감을 기계적으로 하게 되지는 않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데 무조건 고개만 끄덕이는 건 소용없어요. 상대방의 존재와 욕구, 행동 자체는 수용해 주되, 자신이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은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와 같이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죠. 아무런 영혼 없이 ‘그랬구나’와 같은 태도는 상대방도 분명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지 않는구나'라는 걸 느끼게 할 거예요.



Q. 평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인가요?


네, 저는 예전부터 대화할 때 주로 들어주는 편이었어요. 요즘은 '잘'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잘 들어주기 위해선 그만큼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Q. 1년간 상담교사로 일하며 느낀 점은?


상담교사는 인내심이 정말 중요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상담을 하면서 아이에게 금방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조바심 나고 ‘내가 뭘 하긴 한 걸까’와 같은 의구심이 들거든요. 그러면 금방 소진되더라고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공부와 경험을 통해 보다 숙련된 상담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Q. 그렇다면 상담을 하며 ‘내가 도움이 되었구나!’ 싶었던 순간이 있나요?


아이와 상담을 종결하는데, 6학년까지 상담을 계속 받고 싶다고 했을 때? 저와의 상담 시간이 이 아이에게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에 정말 뿌듯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의 사소한 변화를 마주할 때? 예를 들어 주의집중이 어려워 매번 상담시간을 까먹던 아이가 ‘오늘 상담이죠!’하고 왔을 때, 상담초기에는 굉장히 수줍어하고 말도 하지 않던 친구가 대회에서 1등 했다며 사진 보여주면서 자랑할 때, 대인관계에 불안이 있어 교실을 들어가는 것조차 어려워하던 친구가 이젠 괜찮아졌다고 말할 때 '내가 도움이 되어줬구나'싶은 생각이 들죠.


상담이 끝나고 아이가 수줍게 피카츄 띠부씰을 건네며 ‘마음 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라는 말을 했을 때도 엄청 감동받았어요. 반응이 많지 않았던 친구라 상담을 제대로 했나 계속 걱정했는데, 그 한마디에 마음 녹아내린 거 있죠. (웃음)



Q. '마음 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는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감사 표현인 것 같네요.


그쵸. 띠부씰을 준 것도 대가 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게 뭘 바라고 준 게 아니잖아요. 너무 소중해서 잘 간직하고 있답니다.





Q. 상담교사도 상담받고 싶을 때가 있나요?


당연하죠. 실제로 상담교사도 상담을 많이 받아요. 마음의 짐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 하지만, 상담을 직접 받아봐야 제 상담을 돌아볼 수 있거든요. 경험을 해봐야 더 잘할 수 있고 상담받는 학생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Q. 상담교사의 고충, 스트레스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궁금해요.


소진. 방과 후 상담을 연달아할 땐 지치기도 하고, 혼자 상담을 하기 때문에 제가 과연 제대로 상담을 한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해요. 아이에게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조바심 나고, 상담이 잘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낄 때(아이와 상호작용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좌절감 가득하고 무기력해지죠.


저 스스로가 회복해야 계속해서 상담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상담이 끝나면 10분 정도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퇴근 후에는 좋아하는 일들을 하고, 시간이 날 때는 슈퍼비전이나 공부를 하며 극복하고 있고요.





Q. 상담을 해오며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요?


학교에서 첫 위기사안으로 만난 아이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긍정적인 자원이 많아 잘 버텨내던 친구였는데, 가정에서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참 안타깝고 속상했죠. 마음을 많이 쏟던 아이라 지금 잘 지내고 있을지 종종 생각나곤 해요.



Q. 학생의 교우관계, 학교적응, 성적 등은 가정환경의 영향이 큰 거 같네요.


맞아요. 특히 초등학생 같은 경우엔 부모님 영향을 많이 받는 나이니까요. 그래서 상담받는 학생들의 학부모 상담도 필수라고 생각해요.



Q. 규아님은 힘들 때 누구를 찾게 되나요?


주로 가족들에게 힘든 마음을 털어놔요.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어 그날 하루의 일상이나 힘들었던 점들을 자연스레 공유하게 돼요. 힘든 마음을 잘 내색하지는 않는 편이라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요.



Q.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이유가 있나요?


힘든 일이나 고민이 생기면 스스로에게 질문 던지며 해결하는 게 습관이 됐어요. 아무래도 저 자신에 대한 객관화나 자기 이해가 잘 되어 있어 그런 거 같아요. 그래도 너무 힘들거나 누구에게 털어놓고 싶은 일이 생길 땐 전부 이야기한답니다.

 




Q. 규아님에게 쉼이란?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 보내기,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 보기. 아무 걱정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쉬는 것, 온전히 쉰다는 행위에만 집중하는 게 진정한 휴식 같아요. 


여기서 포인트는 '아무 걱정 없이'에요. 저는 퇴근을 해도 일에 대한 걱정이 많아 잘 쉬지 못하는 편이었는데요. 요즘은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민만 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며 걱정을 끊어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머릿속이 복잡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거든요. 



Q. 규아님이 좋아하는 건 무엇인가요?


퇴근? 저는 저처럼 귀여운 것들을 좋아해요. 강아지, 고양이, 세상 뽀짝한 귀여운 것들? 귀여운 걸 보면 미소가 지어져요.



Q. 규아님이 싫어하는 건 무엇인가요?


상처를 많이 받는 편이라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듯한 말과 태도를 싫어해요. 그런 사람과 굳이 저의 시간과 열정을 써가며 대화하고 싶진 않아요.

 




Q. 규아 님은 어떤 꿈을 꾸며 살고 있나요?


인생한방 로또당첨!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껴 전문성을 갖추고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멋진 전문상담교사가 되는 게 꿈이에요. 그리고 남은 인생 저에 대해 더 알아가며 행복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Q. '행복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표현이 새로운데요.


제 인생 최종 목표는 교사가 되는 거였어요. 그 목표를 이루면 평생 행복할 줄 알았죠. 그런데 막상 교사가 되고 나니까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거예요. 위치는 달라졌지만 '나'는 그대로 '나'일 뿐이었죠. 그동안 내가 내 삶을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고 놓친 게 많았구나 싶었죠. 그래서 일상의 사소한 것들로부터 행복을 느끼며 살자고 다짐했어요. 



Q. 학생들에게 어떤 상담 교사로 기억되고 싶나요?


따뜻함이 느껴지는 상담 교사. 좌절감이 들고 힘들 때 '나를 응원해 주던 사람이 있었지'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는 교사로 기억되고 싶네요.

 


Q. 규아 님이 가장 애정하는 물건은 무엇인가요?


1) 아이폰


저의 삶과 신규교사의 추억들을 전부 담고 있는 물건이에요.


2) USB


처음 일할 때부터 지금까지 활용하고 있는 모든 자료들이 저장되어 있어요. 새로운 학년도를 준비하며 USB에 담겨있는 파일을 다시 보고 있는데, 1년 동안 열심히 일한 거 같아 뿌듯하더라고요.


3) 포켓몬 빵


상담했던 아이에게 포켓몬 빵을 받았었어요. 포켓몬 빵을 구하기 매우 어려웠던 시기에 제가 최애 선생님이라며 포켓몬 빵을 줬었죠. 마음이 너무 기특했어요.





Q. 앞으로 살고 싶은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스스로를 사랑하고 순간의 행복함을 느끼며 사는 삶!



Q.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영민이랑 친하게 지내지 마세요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하게 털어놓은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웃음을,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글이 될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네요. 각자의 위치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시겠지만, 잠깐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시고 일상의 행복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credit

edit @yymymyymym

photo @mimal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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