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팝 가곡《푸르른 날》_서정주 시 / 김효근 작곡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생각지 못하게 업무가 몰리는 때가 있다. 익숙하거나 한 번이라도 해 본 경험이 있는 업무라면 흐름을 잘 알아서 계획대로 진행하는 편이지만, 익숙지 않은 일이라거나 처음 맡는 업무의 경우에는 실수나 착오를 범하기가 쉽다. 물론 좀 더 철저히 대비하지 못한 이유가 제일 크겠지만, 어느 부서에서도 맡지 않겠다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일이 나에게 넘어 오는 일도 있었고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인해 갑자기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기는 경우 등등 사정은 다양하다. 지난 학기말에도 갑자기 결원이 된 강사를 채용하느라 일이 몰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강사 한 명을 채용하는데 그렇게나 많은 공고와 사정회가 필요한지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코로나 이후 4년만에 곧바로 런던으로 날아갈 계획을 세워놓은지라 반드시 그 이전까지 일을 끝내야만 했다. 시간이 빠듯해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하루종일 컴퓨터만 쳐다보며 일을 하다가 주말에 본가에 갈 때도 노트북을 싸들고 가서 종일 일만 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무슨 대단한 워커 홀릭이라도 된 것 같지만, 현재 근무하는 학교가 예술계 특목고라서 발생하는 특수한 상황인데다 교사의 업무는 수업을 비롯해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이 많아 위와 같은 돌발상황은 극히 드문 일이긴 하다. 어쨌거나 지난 학기말 겹겹이 쌓이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애를 좀 먹었는데 가끔 일이 힘들 때마다 써먹는 나만의 멘탈관리법이 있어 적어볼까 한다.
첫 번째는 '카고 Cargo'를 인식하는 거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카고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 카고는 '삶의 목적 또는 우리가 태어난 이유'를 말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명 Mission이나 소명 Calling과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Cargo는 영어로는 '화물'이라는 뜻이지만, 스페인어로는 '역할', '직무'와 같은 뜻을 갖는다. 내가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좀 더 책임있는 자세로 일을 대하게 된다.
두 번째는 7:3의 법칙을 이해하는 거다. 자기계발 강사로 유명한 김미경은 모 방송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강의’하는 일인데, 가장 싫어하는 일은 역설적으로 ‘강의 준비’하는 것"라고 밝힌 적이 있다. 누구에게나 꿈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하면서 즐거운 일' 70%와 '해야 하지만 고달픈 일' 30%로 구성돼 있다는 뜻이다. 김미경은 "싫어하는 강의 준비 과정을 거쳐야 내가 좋아하는 강의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이루고 싶은 바가 있다면 꼭 싫어하는 것을 뚫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돈을 버는 일이나 직장에 다니는 일이나 다 좋기만 한 일은 없다. 필연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이왕에 더 정성을 쏟아보자. 이후에 주어지는 보람과 보상은 그만큼 더 달콤할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성실함'에 대한 열망이다. 나는 몹시 게으른 사람이지만 직장인으로서 그 무엇보다 성실에 대한 가치를 인정한다. 작가 공지영은 저서《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서 자신의 딸에게 말한다. "어디든, 너를 부르는 곳으로 자유로이 떠나가기 위해서는 네가 출석해야 하고 대답해야 하는 그보다 많은 날들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야. 매일 내딛는 한 발짝이 진짜 삶이라는 것을"이라고.. '성실'과 '책임'에 대한 가장 낭만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다. 역시 소설가다. 코로나 이후 4년만에 생애 첫 발도장을 찍는 런던으로 자유로이 날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일상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잘 정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비행기 안에서 붕 떠오르는 나의 몸과 마음도 홀가분하고 가벼울 것 같았다. 집안 청소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 환경을 비롯해 일상을 잘 정돈해 놓고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다시 삶에 적응하는데 드는 시간이 그만큼 짧아진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국화 옆에서》, 《자화상》, 《동천》등 수많은 명시를 남긴 미당 서정주 시인은 유독 시를 노랫말로 쓰는 것을 마땅잖게 여겼다고 한다. 많은 가수들이 그의 시를 노래에 담고 싶어 했으나 서정주는 자신의 시가 노랫말에 쓰이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예외가 있었으니 1980년대를 아우르는 전설의 싱어송라이터 송창식이었다. 서정주는 송창식에게 자신의 시가 노래로 탄생되는 것을 허락했을 뿐 아니라 훗날 작곡해서 완성된 곡에도 매우 흡족해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서정주 시인의 시 《푸르른 날》에 송창식이 곡을 붙인 노래는 1983년 '제1회 KBS 작사 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2022년 K-아트팝의 선구자인 작곡가 김효근이 같은 시에 곡을 붙여 가곡 <푸르른 날>를 발표했다. 정작 친일 행위와 문학적 성과 사이에서 늘 논란이 되는 미당의 삶은 마냥 푸르렀다고 할 수 없지만, 이 시 한 편만 보더라도 우리 문학사에서 그를 영원히 묻어두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오래 전 한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창공에 넓게 깔린 저녁 노을을 넋놓고 한참이나 바라본 기억이 난다. 정말 아름다웠다. 삶의 모든 근심과 심각한 일들이 그와 같은 풍경 앞에선 작은 점 하나만도 못하게 느껴졌다. 때때로 직장 생활이 억울하고 힘들어도 자신의 일을 사명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이 노래를 선사하고 싶다. 그러한 하루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푸르른 날》날을 살아가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