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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테의 꽃 Jun 13. 2024

진료실 앞에서

말러, 대지의 노래

얼마 전 직장에서 실시하는 결핵 검진으로 흉부 X-Ray 검사를 받았는데 지름 1cm 정도의 폐결절이 의심된다며 정밀 검사를 요한다는 소견을 받았다. 대학교 때 폐결핵 진단을 받고 늑막염 수술을 받느라 한 달간 병실 신세를 지면서 꽤나 고생했던 이력이 있어서 아마도 폐결핵을 앓은 흔적이리라 예상은 했지만 흉부 CT 검사를 받고 2주 뒤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병원에 가는데 왠지 모를 두려움이 앞섰다. 초진 때 의사 선생님이 X-Ray 촬영 사진을 보면서 '이렇게 경계가 뚜렷한 경우는 대부분 악성은 아닌 경우가 많아요. 그냥 얼굴에 난 점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되요'라고 하셨기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내 순서가 되어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는 5분여간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너무 안타깝지만 검사 결과에 대한 저의 소견은 폐암이 의심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폐암으로 변형되는 건 매우 드문 데 거의 0.01%의 확률이라 운이 좀 안 좋으신 것 같네요“

"그래도 다행히 초기에 발견했으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마세요. 잘 치료 받으시면 좋아지실 겁니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 소견은 없었고 과거에 폐결핵을 앓았던 흔적과 상처가 좀 남아있긴 하지만 더 안 좋은 케이스도 많은데 이 정도면 매우 양호하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친절하고 세심한 상담에 감동하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고 진료실을 빠져나오는데 또 다른 감사가 마음속에 차올랐다. 살면서 좋지 않은 일과 좋은 일이 50:50의 비율이라 가정할 때 그 절반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들이 얼마나 큰 행운이고 감사인지..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de(우리말로 잘코사니, 쌤통)는 독일어로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기분 좋음'이란 뜻이라고 한다. 나와 아무 연고도 없는 남의 불행 덕분에 나의 행복이 더욱 부각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살면서 이따금 병원을 드나들 때면 잊고 있던 삶에 대한 감사를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별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에 대해서도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된다.

늘 듣던 말의 새로움: "날마다 오늘이 첫날이고 마지막 날이야"
-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한겨레출판, 2018, p95

고전 음악 중에서도 말러(G. Mahler 1860~1911)는 진입 장벽이 높은 작곡가로 분류돼 있다. 누군가는 말러를 베토벤과 견주어 찬양하기도 하지만 반대쪽에서는 '아무리 들어도 말러는 모르겠다'며 고개를 젓는다. 말러의 음악에는 유독 삶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는 데 그 이유는 평범하지 않았던 유년기와 가정사에 있는 듯싶다. 어린 시절 말러는 불행했다(죽을 때까지 그랬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정신병을 앓았으며, 15명의 말러 형제 중 8명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가족 중에는 권총 자살을 한 형제도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조짐을 보이던 조울증과 강박신경증은 죽을 때까지 그를 따라다녔다. 또한 어머니에 대한 고착(固着)도 대단했다. 절름발이였던 어머니를 흉내 내는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약간 저는 증상으로 이어졌다. 1910년, 말러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찾아가 심리 면담을 받았다. 4시간 동안 산책을 하며 프로이트는 말러의 잠재기억을 끌어내 그의 우울증이 어린 시절 형제들의 죽음과 아버지에게서 받은 학대에서 기원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프로이트는 또 말러의 알마에 대한 집착은 알마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려고 한 탓이라 진단했다. 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가사는 시인 뤼케르트가 열병으로 두 아이를 잃고 난 뒤의 비통함을 적은 시이다. 말러가 뤼케르트의 시에 곡을 붙인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5편 중 3편을 먼저 완성한 1901년은 말러가 열아홉 살 연하의 알마와 결혼을 앞둔 시기였다. 이듬해 알마와 결혼한 말러는 첫딸 마리아를 얻고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1904년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마저 완성한다. 운명의 장난처럼, 4년 후인 1907년 마리아는 열병으로 죽고 만다. 말러는 자신이 작곡한 연가곡이 딸의 죽음을 불러온 것 같은 자책감에 시달렸고, 이후 더욱 죽음이라는 주제에 강박적으로 매달렸다.


말러는 죽음에 대해 갖고 있었던 강박관념과 두려움 때문에 ‘대지의 노래’를 교향곡으로 인정하고도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 대개 교향곡 작곡가들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9번이라는 숫자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말러의 장례식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던 작곡가 쇤베르크는 말러의 생에 대한 미련과 자연의 엄중함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9번이라는 것은 하나의 한계로 보인다. 그 너머로 가려고 하는 이는 반드시 그 숫자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 마치 우리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 필요가 없는 무엇이 10번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것처럼 보인다. 9번을 쓴 사람은 내세에 이미 너무 가까이 서 있는 셈이다.” 다행히 ‘대지의 노래’를 다 만들고 나서도 말러는 죽지 않았다. 다시 이어진 교향곡 9번 4악장은 일종의 ‘레퀴엠, 死악장’ 같다. 매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곡을 만드는 말러의 심정이 느껴진다. 인생이 늘 좋은 일들만 채워진 시나리오는 아닐지라도 특별히 나쁠 것 없는 평범한 하루와 건강히 움직일 수 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임을 되새긴다. → 말러 관련 출처 : 인산의학(http://www.insanmedicine.com)

https://youtu.be/ow8Hq8U2ZcQ?list=PLZwspDfFJ5bnhk6CM3U3ZZ8q0xshoiGUj

말러, 대지의 노래 I. Das Trinklied vom Jammer der Erde · Otto Klemperer · Fritz Wunderl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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