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찰나를 그린다.”
고정된 순간이 아니라 흐르는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고 마치 순간 포착을 하듯이 그림을 그려왔다. 0.1초의 찰나에 포착된 모습이나 표정을 그리고자 했다. 방법적으로는 유화의 느린 건조와 유동적 특성을 활용해 스케치 선과 면이 서로 섞어가며 그렸다.
그런데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항상 드는 의문이 있었다. ‘흘러가는 시간’이 표현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의 그림은 정말로 대상을 포착해 버렸다. 흐르는 느낌보다는 사진으로 찰나를 찍은 것만 같았다. 방법적으로는 이미 익숙해져 점점 완성도 있는 작품을 할 수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나의 의도와는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한 점을 완성할 때마다 찝찝함은 커져만 갔다.
꽤 지난 일이지만, 지난여름에 아이폰의 Live photo를 보다가 문득 ‘이게 바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거야’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Live photo는 사진을 촬영하는 순간의 1.5초 전후까지 기록해 주는 기능이다. Live photo에는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시간의 흐름과 찰나의 포착 모두가 담겨 있었다. 그 당시에는 공모를 쓰는데 집중하느라 ‘언젠간 Live photo와 같은 그림을 그려야지’하고 생각을 잠시 미뤄두었다.
개인적인 일 때문에 쉬었던 11월 동안 접어두었던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결론은 생각만 하지 말고 실험을 해보자. Live photo 같은 작품을 시도해보자. 그렇게 해서 12월인 지금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있다. 5월 말에 있을 개인전을 생각하면 지금 새로운 실험을 해보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다. 초반 몇 점의 작품들은 분명히 망할 것이고, 새로운 방법이 손에 익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도해보려고 한다. 빠듯한 시간이지만 시간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기존 작업스타일로 찝찝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보다 지금 여러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 나의 작업에는 더 도움이 될 테니까. 성격이 급한 탓에 빠른 결과가 나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