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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5 SUN : 단순 반복 노동의 평온함

캔버스 짜기와 그라운드 작업

by 윤소

작가들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캔버스를 직접 짜서 쓴다. 캔버스를 짠다는 것은 캔버스 프레임에 천을 씌우는 것이다. 짜인 캔버스를 주문해서 사용할 수도 있는데 굳이 캔버스를 셀프로 짜서 사용하는 이유는 직접 짠 캔버스에 더 애착이 가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0번째 단계를 직접 함으로써 아주 처음부터 내 손을 거친다는 사실은 작품 자체에 대한 애정을 더 쏟게 만든다.

캔버스를 짜는 과정은 꽤나 성가시고 힘이 든다. 캔버스 짜기의 시작은 바닥을 깨끗이 쓰는 것부터다. 나는 주로 바닥에 캔버스를 눕혀서 천을 재단하기 때문에 바닥의 먼지들을 치워야 한다. 천을 재단하고 난 뒤에는 캔버스 플라이어(왁구바리)를 사용해 최대한 팽팽하게 천을 당기고 당겨진 천을 타카로 박는 작업의 반복이다. 하루에 캔버스를 여러 개 몰아 짜는 날에는 전완근 쪽과 손목의 힘을 다 소진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팽팽하게 당겨진 캔버스를 두드릴 때 나는 북과 같은 소리는 소진한 힘을 다시 일깨우진 못해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를 샘솟게 한다.

잘 짜인 캔버스들은 다음 과정을 거치는데, 바로 그라운드 작업이다. 그라운드 작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림의 느낌, 분위기, 붓질의 느낌 등 그림의 전반적인 것이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그라운드 작업엔 젯소를 많이 활용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젯소와 오일그라운드 모두 사용해보았는데, 위에 올라갈 그림에 따라서 조절해서 사용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빠른 작업 로테이션을 위해서 대부분은 젯소를 사용한다.

그라운드 작업을 할 때는 큰 붓으로 최대한 균일하게 칠하는 것이 관건이다. 표현하고 싶은 그림이 매끈할수록 그라운드 작업부터 매끈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젯소를 칠하고, 말리고, 사포로 표면을 다듬는 과정을 필요한 만큼 반복한다. 나는 세 번 정도 이 과정을 반복한다. 젯소를 바르는 행위는 나에게 수련과 명상 같은 것이어서 젯소를 바르는 동안은 마음이 평온하다. 균일하게 젯소를 바르는 일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에 최적이다. 생각 없애기엔 이만한 것이 없다.

캔버스 짜기와 그라운드 작업은 반복 노동이자 단순 노동이다. 반복 노동과 단순 노동은 누군가에겐 정말 귀찮은 작업일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 캔버스 짜기 앞뒤로는 계속 생각들을 쏟아내는 작업을 하기에 이 단순 노동 동안에는 잠시 머리를 식힐 수 있다. 그래서 다음 그림을 고민하다 도무지 손이 안 나갈 때는 캔버스를 짜곤 한다. 물론 허리나 전완근, 손목이 뻐근하고 아프기도 하지만 자세로 인한 통증보다는 머리가 쉴 수 있다는 점이 지금의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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