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우리 Jan 09. 2021

비트코인과 일곱 난쟁이

런던 라이프

비트코인과 일곱 난쟁이
  
  
2007년에 미국에서 서브 프라임 모지기 사태가 발생했고, 2008년 9월 15일에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했다. 월스트리트의 어려운 금융은 파생 금융상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하고 45일 후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리포트가 일본인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제목은 아주 겸손했다. ‘비트코인: 개인들 간의 전자적 현금 전달 시스템 중의 하나 (Bitcoin: a peer to peer electronic cash system)’
  
   
1.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 2008년 10월

비트코인 백서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사람이 썼다. 나도 코인 백서를 쓴 적이 있는데, 그때처럼 행복한 순간이 없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 백서를 쓰면서 행복했을까?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이 있었을까?

경제가 디지털화되면서 현금의 익명성이 사라졌고, 금융이 파생상품화하면서 매우 복잡해졌다. 파생상품을 설계하고 판매하는 사람조차도 그 위험을 다 알지 못하고 있음을 리만 브라더스 사태가 보여주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원했던 것은 개인 간에 안전하고 정확하게 현금을 전달하는 시스템이었다. 복잡한 무언가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중간에 금융기관을 매개하지 않기 때문에 안정성이 중요했다. 전자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중 지불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즉 전자적 신호를 보내고 나면, 지불한 사람에게는 없어지고 받는 사람에게만 남아야 했다. 캐시처럼 말이다. 그 문제를 블록체인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하여,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탄생했다. 2009년 5월 24일에 금융기관을 끼지 않고, 개인 간에 디지털 화폐를 주고받는 최초의 거래가 성사되었다. 비트코인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2. 라즐로 한예츠(Laszlo Hanyecz), 2010년 5월

2010년 5월 22일 플로리다에 있는 라즐로 한예츠는 온라인에 ‘누가 내게 피자를 두 판 시켜준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비트코인 10 000개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을 영국 사람이 받아들였고, 그 영국인은 25달러를 지불하여 파파존스 피자 두 판을 라즐로에게 보내주었다. 영국인이 받은 비트코인 만 개의 가치는 41달러였기 때문에 16달러어치의 차익거래를 실행한 셈이다. 라즐로 한예츠는 비트코인 만개로 피자 두 판을 시켜 먹은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한없는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비트코인이 상업적으로 사용된 최초의 사례다. 지금은 카자흐스탄의 보따리 상이 중국 광저우에 무역 대금을 비트코인으로 보내며, 런던에 거주하는 탈북자가 비트코인으로 중국에 송금하는 시대가 되었다.
  
  
3. 백수의 한국 남자, 2011년 3월
  
우리나라 젊은이 중에도 비트코인의 미래를 애초에 알아본 친구가 있었다. 2011년 3월 17일 14시 11분 어느 사이트에 올라왔다는 글에 의하면, 자신의 남자 친구가 당시 500 원하는 비트코인을 10만 개 매수하느라, 전 재산인 5천만 원을 썼다. 그리고 10년 안에 비트코인은 10만 배가 올라서 개당 5천만 원이 될 것이고, 자신의 재산은 5조가 될 것이라 여자 친구에게 말했다.

그 글의 진위 여부는 잘 모르겠는데, 진실이라면 소름이 돋을 것 같다. 2021년 1월 8일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47백만 원이다. 올해 안에 5천만 원을 가는 것은 99% 확실해졌다. 그 친구가 아직도 10만 개를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여자 친구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기를 바란다.
   
  
4. 제임스 하웰스(James Howells), 2013년 5월

비트코인이 등장하자마자 자신의 노트북으로 비트코인 채굴을 한 제임스 하웰스는 비트코인 7500개를 모았다. 영국 웨일스에 살고 있는 프로그래머였다. 당시만해도 개인 노트북으로도 비트코인 채굴이 제법 잘 된 모양이다. 그리고 2013년에 노트북이 고장 났고 채굴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노트북을 분해하여 일부 부품을 ebay를 통해 팔았고, 비트코인 7500개가 저장되어 있는 하드 디스크는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실수로 쓰레기로 버렸다. 지금 가치로 3535억 원이다.

이 하드 디스크는 카디프 동쪽에 있는 뉴포트(Newport)라는 도시의 쓰레기장에 매립되어 있다. 일 년에 5만 톤의 쓰레기가 이곳에 모아진다고 하니, 7500개 비트코인 위에는 현재 35만 톤의 쓰레기가 있다. 2017년 제임스 하웰스는 뉴포트 시에 쓰레기를 뒤질 수 있는 허가를 요청했으나 안전과 환경상의 이유로 거절되었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쓰레기 매립장을 뒤질 수 있는 허가가 나올 가능성은 높아지게 되어 있다. 세기의 쓰레기장 대탐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5. 윙클보스 형제(Tyler Winklevoss, Cameroon Winklevoss), 2013년 10월
  
페이스북의 아이디어는 타일러 윙클보스와 카메룬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에 의해 탄생했다. 윙클보스 형제는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페이스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실현해 줄 프로그래머가 필요했다. 그래서 만난 사람이 마크 주크버거다. 이후 주크버거는 윙클보스 형제의 아이디어를 이용해 페이스북을 만들었다. 윙클보스 형제는 주크버거와 오랜 소송전을 벌였고, 그 와중에 하버드를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교에 와서 MBA를 취득했다.

소송에서 화해 권고를 받아들여 65백만 불을 받고 그 돈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2012년에 투자 회사를 차리고, 2013년에 비트코인에 투자했고, 2014년에 비트코인 거래소인 제미니(Gemini)를 설립했다. 타일러와 카메룬은 각각 조 단위 부자가 되었다. 물론 주크버거에 미치지 못하지만,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6. 디디 타이후투(Didi Taihuttu), 2015년 4월
  
디디 타이후투라는 네덜란드인은 2010년부터 비트코인을 알게 되었는데, 2015년에 전 재산을 팔고 비트코인을 샀다. 그리고 자동차와 자전거로 세상을 여행하며, 가상화폐로 결제할 수 있는 것을 소비하며 산다. 나는 2017년 11월에 비트코인을 알게 되었고, 그때 디디 타이후투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2018년 비트코인이 폭락했을 때, 나보다는 디디 타이후투가 더 걱정되었다.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과 폭등을 반복하면서, 불행과 행복이 반복되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는 그는 다행히도 여전히 비트코인 뿐인 삶을 살고 있다.

오늘 언급되는 일곱 명의 난쟁이 중에 가장 부럽지 않은 인물인데, 끝까지 그의 행복을 기원한다. 이제는 비트코인을 조금 팔아서 집도 사고 그러기를 바라 본다. 비트코인 1억 원 가면 그렇게 한다고 하는데, 뭐든지 생각보다 조금 일찍 실행하는 것이 좋다.
  
  
7. 엘론 머스크(Elon Musk), 2021년 1월
  
스페이스X를 2001년에 시작하고, 테슬라를 2003년에 시작한 엘론 머스크가 비트코인을 개발한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스페이스X를 시작하기 전 프로젝트가 페이팔이었고, 그 때 비트코인을 생각해 냈다는 설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프란시스 베이컨이라는 이야기만큼 허황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랬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있기도 한 것 같다. 사토시 나카모토인 엘론 머스크는 비트코인 백만 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비트코인의 발전을 위해 전량을 delete 버튼을 눌러 소각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스페이스X에서 일한 적이 있는 사람이 이렇게 주장했다.


경제학, 수학, 물리학, 컴퓨터 공학, 프로그래밍에 정통한 엘론 머스크가 비트코인 창시자에 가장 가까운 측면이 있지만, 엘론 머스크는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오늘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833조 원이며, 곧 천조 원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그 가치가 얼마까지 증가할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비트코인을 잡코인 다단계 판매를 하는 분에게 처음 설명 들었는데, 들었을 때는 도저히 알아 먹을 수가 없었다. 구글을 통해 검색해 보았는데, 이토록 쉽고 간명한 것을 그렇게 어렵게 설명해 준 분에게 역설적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트코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읽을 때 느꼈던 흥분은 생애 가장 큰 흥분의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비트코인 역사에 이름을 남길 일을 하지 못했지만, 항상 비트코인을 응원해 왔다. 비트코인의 미래가 항상 밝을 것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지만, 비트코인이 일곱 난쟁이의 도움을 받은 백설공주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백설공주와 같은 해피엔딩은 안 될 수도 있지만, 인류 경제에 독 사과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은 있다.



작가의 이전글 미스 잉글랜드 출신 백신 분석가 카리나 티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