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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an 14. 2021

동네란 무엇인가?

런던 라이프

동네란 무엇인가?
  
    
런던이 3차 락다운 중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올림픽 공원까지 7 마일 떨어진 곳을 자전거로 다녀온 것을 가지고, 노동당과 야당 성향의 신문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총리가 다시 한번 내로남불 태도를 보였다고. ‘Once again it is do as I say, not as I do, from the Prime Minister.’

야당의 목소리와 달리 많은 런던의 사이클리스트는 총리를 옹호하고 나섰다. 특히 마밀(Mamil)들은. ‘우리 총리가 여전히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머리 감을 시간은 없어도 자전거는 타는구나!’ ‘자전거 타는 것이 누구에게 해가 되는 것인가?’ ‘자전거 산업은 중년 확찐자의 48인치 뱃살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있는데, 자전거 산업보다 중년 아저씨의 뱃살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인가?’ ‘내 지갑 속의 돈은 자전거 관련 지출로 마크 카벤디쉬(Mark Cavendish, 영국의 스프린터형 도로 사이클리스트)의 사이클 속도보다 빨리 없어지는데, 총리 지갑도 그러냐?’ 위트와 해학이 넘치는 지원 사격이다.

마밀(Mamil)은 뽕브라 소재의 옷을 입은 중년의 남성(middle-aged man in lycra)을 뜻하는 신조어다. 뽕브라 소재의 옷이란 사이클리스트가 입는 바지를 가리키는데, 엉덩이 부분에 뽕브라 소재가 들어간다. 마밀을 한국어로 하면 ‘중년 자덕(자전거 덕후)’쯤 되겠다. 락다운 중에 조금 찝찝했을 수도 있는 마밀에게 총리의 자전거 소동은 힘이 되었다. 물론 대다수 마밀은 찝찝하지 않게 자전거를 타고 있었을 것이지만. 하여간 마밀은 나온 뱃살만큼 후덕하여 남을 비난하는 데는 그리 능숙하지 못하다.



‘누가 자전거 타는 것을 나무라냐? 규정 위반을 비난한 것이지.’ 규정은 무엇인가? 영국의 락다운 가이던스(guidance)에 의하면 집에 머물되, 반드시 필요한 개인적 사정에 따라 밖에 나갈 수 있다. 운동을 위해서도 나갈 수 있다. 다만 운동을 위해 나가는 경우에는 동네(local)에 머물도록 되어 있다.

런던의 여성 경찰청장인 크레시다 딕(Cressida Dick)은 보리스 존슨의 사이클링은 규정 위반이 아니라고 말했다. ‘자전거를 타든, 달리기를 하든, 자신의 집 앞에서 출발해서, 집 앞으로 다시 돌아오는 운동을 했다면, 그 거리가 얼마든지 그것은 동네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북아일랜드는 동네 운동의 범위를 집에서 10 마일을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스코틀랜드는 5 마일을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가이던스를 정했고,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집에서 출발해서 집으로 도착하면 그것은 동네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달려서든, 걸어서든, 자전거로든 집에서 출발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만 있으면 로컬에 머문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500 야드가 로컬이고, 누군가에게는 20 마일이 로컬이다. 영국인의 융통성은 템즈강처럼 넓다.

어떤 사람이 아주 가까운 공원에 차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산책을 한다면, 동네를 벗어난 셈이 된다. 실제로 영국의 한 마을에서 5 마일 떨어진 곳으로 차를 타고 가서 산책을 한 사람이 경찰에게 걸려서 200 파운드의 벌금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스코틀랜드나 북아일랜드 기준으로 위반이 아닌데, 잉글랜드와 웨일스 기준으로 위반이다. 그러나 논란이 생기자, 해당 경찰서는 재빨리 사과하고 벌금을 취소했다. 하여간 영국은 U턴 하나는 정말 잘하는 나라다. 좋게 말하면 융통성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혼란이다.



그리고 영국 정부는 락다운에서 되도록 집에 머무르라는 것은 법이 아니고 가이던스라고 말했다. 성문 종합영어에서 배우던 것 must, should, might를 오늘 제대로 배웠다. 구글 번역기가 번역을 못해내는 것을 성문 종합영어 실력으로 번역을 하면 이렇다.

‘The law is what you must do; the guidance might be mixture of what you must do and what you should do.’(법은 당신이 꼭 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침이라는 것은 당신이 꼭 해야 하는 것과 당신이 하면 좋은 것을 섞어 놓은 것 쯤 된다.)

결론은 총리는 가이던스를 위반하지도 않았으며, 가이던스라는 것은 절대적인 뭔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애송이 사이클리스트로서, 신참 마밀로서, 뽕브라 소재가 들어간 바지를 산지 일주일이 채 안된 사람으로서 매우 영국적인 이번 사태를 재밌게 바라본다.

코로나 시대는 누구를 죽자고 비난하는 것으로 극복할 수 없고, 해학을 즐기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극복해 나갈 수 있다. 보궐선거가 코로나 와중에 진행되는데 우리 정치가 너무 죽자고 달려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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