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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an 22. 2021

왕이 지방자치를 망친다

런던 라이프

왕이 지방자치를 망친다
 
 
넷플릭스 드라마인 The Crown 중의 백미는 시즌4의 제4편 Favourites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바라보는 여왕의 시선, 자식을 바라보는 총리의 시선이 묘사되는데, 자식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과 겹치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대처리즘의 본질도 여기에서 나온다. 대처의 딸이 ‘아들을 왜 편애하냐?’고 성화를 부리자, 대처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다. 그러나 집요한 공세에 마지못해 인정한다. ‘왜?’라는 반발에, ‘왜냐면 그는 너보다 더 강하니까!’라고 답한다. 더 강하니까 더 좋아한다. 나는 어떠한가?

때는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Falkland) 전쟁이 시작될 무렵이다. 급한 보고를 받은 대처가 외무부 장관을 부른다. 그는 벨기에 브뤼셀에 출장갔다. 국방부 장관을 부르니 뉴질랜드 출장 중이다. 참모총장을 부르니 미국에 있다. 화가 난 대처는 내일 이 시간까지 모두 총리실로 집합시킨다.

다음날 내각 회의를 개최한다. 무력을 행사하지 말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교적 해결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이에 대처는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우리에게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느냐?’고 언성을 높이며, 내각 회의를 종료한다. 외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과 참모총장에게 30분 후에 한층 위에 있는 자신의 거처로 모이도록 지시한다.

자신의 집으로 올라간 대처가 30분 동안 한 일은 앞치마를 두르고 애플파이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한 게 전부였다. 그 와중에 딸은 ‘엄마는 왜 아들만 좋아하냐?’고 따지고 나섰다.



총리가 장관이 먹을 것을 직접 준비했다. 이 장면에서 매우 좁은 총리 공관이 나온다. 방 두 개짜리 거주 공간이다. 부엌도 다이닝 룸도 비좁다. 마가렛 대처가 살던 다우닝가 10번지는 40년 전 윈스턴 처칠이 살던 곳과 똑같으며, 40년 후인 지금과도 같다. 인테리어를 바꾸거나 했겠지만, 건물의 구조와 넓이는 그대로다. 총리가 젊어서 같이 사는 아이가 많은 경우에 다우닝가 10번지를 재무부 장관에게 주고, 11번지를 쓴다. 그게 공간을 넓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총리가 좁은 공간에서 답답할까봐 여왕은 코로나 락다운 기간에 버킹검 궁전의 정원을 산책할 수 있도록 하해와 같은 성은을 베풀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지난 여름에 부인과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시골 집과 텐트에서 여름 휴가를 보냈다.

영국의 총리는 왜 험블할까? 권력이 있는데 왜 험블할까? 험블(humble)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겸손한, 초라한, 소박한이 될까? 영국의 총리가 겸손 또는 소박한 것인가? 아니면 권력 자체가 겸손 또는 초라한 것인가? 왕이 있으니 총리가 험블할 수밖에 없는가? 대통령이 있다면 총리는 험블하게 되는가? 어떠한 연유에서 권력이 없는 왕은 화려하고, 권력이 있는 총리는 험블한가?

이재명 지사는 시장 시절에 도지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할 일이 별로 없는 도지사는 왜 많은 추문을 일으키거나 대통령이 되려고 도지사 직을 때려치우는가? 할 일이 많은 시장은 왜 또 그러한가?

도지사와 시장이 되면 축구장 같은 집무실을 쓰고, 넓고 넓은 공관에 입주하여 살게 된다. 그리고 크고 좋은 차를 탄다. 많은 이들의 시중을 받으며, 많은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 공적으로 먹는 밥뿐 아니라 사적으로 먹는 밥도 대체로 공적인 카드로 결제한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일을 구분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도민들은 이해한다. 역시 하해와 같은 마음이다.

국회의원을 하다가 도지사나 시장이 되면 순간적으로 왕이 된 기분이 된다. 국회의원은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라기보다는 비판을 무기로 청탁을 하는 자리기 때문에 왕이라고 느낄 여지가 별로 없지만, 도지사와 시장은 다르다. 그렇게 안희정은 잠시 잠깐 충청남도의 왕이었다. 지방의 왕이었던 이인제, 손학규, 김두관 등은 분수에 맞지 않게 나라의 왕을 꿈꿨다. 지방자치 단체장보다 높고 대통령보다 낮은 권력에는 수 많은 계단이 있는데, 도지사와 시장은 왜 그렇게 쉽게 나라의 왕인 대통령을 꿈꾸는가?


만일 도지사나 시장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던 20평대 아파트에서 그냥 살며, 직접 운전을 하고 다닌다면, 왕이 되었다는 인식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왜 도지사와 시장이 왕이 되도록 허용하며, 그들의 추문을 시시때때로 들어야 하며, 번거롭게 잦은 보궐선거를 해야 하는가? 휴일도 아닌 그런 보궐선거가 뭐가 좋다고!

보궐선거를 통해서 성추문을 일으키지 않을 후보자를 찍으면 되는가? 여성을 찍는다면 추문은 덜해질 것인가? 앞으로 100명이 넘는 여성 도지사나 시장을 경험해 보면 유의미한 테이터가 쌓이겠지만, 추문은 계속될 것이라는 데에 나의 한 표를 던진다.

우리는 여성을 뽑거나, 성적인 에너지가 없어 보이는 남성을 선출함으로써 이 문제를 풀 수는 없을 것이다. 관상을 통해 자신의 배우자에게만 성적인 흥미를 느끼는 후보자를 뽑을 수 있다는 선거 환상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현실적인 방안은 없는가?

1단계 조치로 도지사와 시장 공관을 없애고, 도시자와 시장의 집무실을 지금의 1/2로 줄여 보자.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관용차와 법인 카드를 뺐는 2단계 조치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안되면 3단계에서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 한다. 예전이라면 대통령 사진이 붙어 있었을 집무실 한가운데에 ‘너는 왕이 아니다’라는 붓글씨 액자를 달아 놓도록 한다.

3단계 조치가 너무 직접적이어서 촌스럽다면, 영국식으로 돌려 말하는 문구도 괜찮을 것 같다. ‘왕에겐 권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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