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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Feb 05. 2021

가위 하나로 세상을 바꾼 비달 사순

런던 라이프

가위 하나로 세상을 바꾼 비달 사순(Vidal Sassoon)
  
   
논란의 인물인 김어준에게는 공도 많고, 과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문재인과 조국을 정치인으로서 발견한 것이다. 문재인의 발견은 성공적이었지만, 조국의 발견은 논란거리다. 조국은 ‘정치를 하고 있는 나의 미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라고 책에 썼는데, 자신의 정치적 미래에 대해 이런 멋진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우리 정치에 꼭 필요한 사람일 것이라고 김어준은 감복했다.

조국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박사학위를 했으며, 와이프는 영국의 요크와 에버딘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영문학자다. 모르긴 몰라도 조국은 영미 문학과 문화에 조예가 깊을 것이다. 영어에서 ‘I could not imagine myself doing something for living’과 같은 표현은 아주 흔하다.

불필요하게 서론이 길었다. ‘남의 머리를 빗겨주고 롤을 말면서 사는 나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그는 1928년 런던의 해머스미스(Hammersmith)에서 유대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어릴 적에 집을 떠나 어머니와 함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엄마는 일을 해야 했기에 그와 동생은 유대인 고아원에 맡겨져 7년을 보냈다. 어머니는 아들이 미용사가 되기를 바랐다. 미용은 전쟁 중에도 먹고 살 수 있는 기슬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달리기 일등이었던 그는 첼시 축구 클럽에서 뛰는 축구 선수가 되길 희망했다. ‘사람들 파마나 해주면서 사는 내 인생을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 사람은 바로 비달 사순(Vidal Sassoon)이다.



어머니는 비달을 동네에 있는 아돌프 코헨(Adolf Cohen) 미용실에 데리고 갔다. 코헨은 도제 교육을 받으려면 2년 치 교육비를 내라고 말했고, 돈이 없던 어머니는 크게 실망했다. 미용실을 나오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비달은 어머니가 쓰러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순간 미용실에서 코헨이 나오더니 ‘저 아이의 매너가 너무 좋군요. 돈은 걱정 말고 월요일부터 아이를 미용실에 보내세요’라고 말했다. 비달 사순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유대인 고아원이 아이 매너 교육을 제대로 시킨 모양이다.

비달 사순이 등장하기 전 영국의 미장원에서는 틀어 올리고, 꼬고, 볶고 하는 스타일오 여성의 머리를 다뤘다. 비달 사순은 그런 복잡한 머리를 가위 하나로 모두 쳐냈다. 그의 머리는 흐트러져도 쉽게 다시 돌아 오는 머리였고, 흔들어도 이쁘고, 찰랑거려도 이뻤다. 비키니나 미니스커트와는 환상적으로 어울렸다. 선과 각도를 중요시한 세련미 넘치는 단발 머리를 탄생시켰다. 헤어 스타일 업계의 혁명이었다.



그의 스타일은 런던을 들썩이게 만들었고, 미국에도 대 유행을 일으켰다. 비틀스로 대표되는 영국 문화가 미국에 침투한 것을 ‘영국의 침략(British Invasion)’이라고 하는데, 음악에 비틀스가 있었다면, 미용업계에 비달 사순이 있었다.

비달 사순의 헤어 스타일을 전문용어로 뭐라고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 나름대로 붙여 본다면, ‘헤어 모더니즘’ 또는 ‘헤어 미니멀리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조용필의 단발머리도 비달 사순이 있었기에 가능한 노래다.

나에게도 전담 헤어 디자이너가 있다. 내가 살롱에 방문하기도 하고, 요즘 같은 때는 전화하면 집으로도 와 준다. 내 전화 한 통에 키이라 나이틀리나 데이비드 베컴의 머리를 손질하다 말고, 내게 달려오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유명인사 고객은 그에게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실력만큼은 최고다.

처음에 그가 내 머리를 스타일링할 때, 그의 손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디서 배웠냐고 물으니 비달 사순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옛날 텔레비전 샴푸 광고에서 들어 봤던 말이다. 그때는 비달 사순이 사람인 줄도 몰랐다. 그가 내 머리를 깎아 줄 때는 항상 즐겁다. 그로부터 듣는 이야기가 재미나다.

오늘 자전거를 타고 런던 중심가에 갔다가 우연히 비달 사순 살롱을 만났다. 런던 증권거래소 맞은편에는 St. Paul 대성당이 있다. 왼편에 스타벅스가 있고, 오른편으로 첫 골목을 돌면 비달 사순 살롱이 있다. 내 헤어 디자이너도 여기에서 일했다.

가끔 한국이나 중국에서 예약을 하고 오는 고객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대부분 가장 비싼 헤어 디자이너를 예약하고 온다. 가장 저렴한 헤어 컷은 90파운드며, 인터내셔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International Creative Director)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최고 디자이너의 헤어 컷은 320파운드다. 우리 돈으로 50만 원 정도다.



이런 디자이너의 스타일링을 받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고객도 꽤 된다. 아무래도 문화나 머릿결의 차이가 있으니까 그런 모양이다. 청담동 최고 디자이너의 헤어컷이 비달 사순 최고 디자이너의 스타일보다 한국인에게는 더 잘 어울릴 수 있다. 런던까지 와서 50만 원을 주고 머리를 했는데, 맘에 들지 않는다며 심하게 불평하는 손님이 있다. 갈등이 심해지면, 가끔씩 내 전담 헤어 디자이너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출동하기도 했단다. 한 번은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길래, ‘그럼 환불해 주겠다’고 했더니,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줄 아냐? 날 뭘로 알고 그러냐?’고 대판 싸움이 나기도 했단다. 그런 손님에 대한 대응은 칼 같다고 한다. 비달 사순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 매너 때문이었지 않은가?

나는 어릴적부터 몇번이나 머리를 깎았을까? 맘에 안 드는 경우가 많았지만, 항상 웃으며 ‘맘에 듭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게 무조건 잘한 것 같지는 않다. 나도 한 번쯤은 50만 원짜리 커트에 대고 진상을 부려 보면 어떨까 궁금해졌다.

비 오는 날, 런던 증권거래소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것은 락다운 중에도 잘 돌아가는 증권거래소가 신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비달 사순 살롱을 만났고, 사진을 찍고, 헤어 디자이너에게 카톡을 날렸다.

예전에 나는  인적이 없지만 잘 돌아가는 증권거래소를 상상할 수 없었고, 그 앞에서 자전거와 함께 추적추적 비를 맞고 있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으며, 닫힌 헤어 살롱 창밖에서 진상짓을 생각하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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