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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Feb 03. 2021

로빈후드?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경제 일반

로빈후드?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전통 경제에서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파는 것을 사기’라고 한다. 사기꾼은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팔거나, 판 걸 또 판다. 인간관계도 남의 것을 판다. ‘내가 누구를 아는데 말이야!’ 사기꾼은 몇 다리 걸쳐 아는 사람을 자기가 직접 안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는 공매도는 빌려서 팔고 나중에 사서 갚는 것이다. 빌리는 것이 먼저니까, 엄밀하게는 없는 것을 파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현대 금융이 복잡해지면서 빌려서 판다는 개념도 모호해졌다. 실제로 빌리는 행위 없이 공매도 효과를 내는 행위는 많다. 파생상품 덕에 가능한데, 파생상품을 만드는 젊은이들 중에 가끔은 사기라고 오인할 행각을 벌이는 이도 있다.  

가령 CFD(contract for difference)라는 마켓이 있다. 일종의 선물 거래다. 게임스탑(Gamestop)을 사고 싶은 사람은 CFD 마켓에서 BUY 버튼을 누르면 되고, 팔고 싶은 사람은 SELL 버튼을 누르면 된다. 정확히 말하면, 매수와 매도가 아니고, long과 short이다. 게임스탑 주가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올라간다에 베팅한다. 이게 long 포지션이다. 왜 이걸 long이라고 하냐면, 게임스탑이라는 주식 가격을 막대기로 가정했을 때 막대기가 길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식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려간다에 베팅한다. 이걸 short 포지션이라고 한다. 막대기가 짧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명이 있어서 한 명은 올라간다에 베팅하고 다른 사람은 내려간다에 베팅하는 거래가 있다면, 이는 게임스탑의 주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단순하고 깔끔한 파생거래다. 깔끔한 도박이다. 그런데 시장에서 내려간다에 베팅하는 사람과 올라간다에 베팅하는 사람이 같은 수가 나오기 힘들다. 때문에 거래 상대방에 없는 고객을 상대해 주는 시장 조성자가 있어야 한다. 마켓 메이커라고 하는 존재가 없으면, 많은 고객을 놓치게 된다.

시장에 온 사람이 모두 long 포지션만 취하려고 하면 누군가는 short 포지션을 취해줘야 한다. 마켓 메이커가 그 일을 한다. 자신은 특별히 내려간다는 생각이나 바람이 없는 상태에서 거래 상대방이 되어 준다. 이렇게 CFD에서 마켓 메이커 포지션이 증가하면, CFD 마켓은 주식 시장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원하지 않게 CFD에서 short 포지션을 취했기 때문에 막대기가 길어지면 큰 일 난다. 그래서 실제 시장에서 주식을 사서 위험을 헷지한다.

내가 거래하는 IG라는 회사는 영국 CFD 마켓의 강자다. 최근에 게임스톱과 AMC의 신규 포지션 진입을 막았다. 높은 변동성으로부터 고객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보다는 마켓 메이커가 주식 시장에서 포지션을 헷지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신규 진입을 막은 것이 공매도 세력을 돕기 위해 개인 투자자의 long 포지션을 막기 위함은 아니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아닐 것이다.

미국의 어느 주식 중개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악의를 가지고 헷지펀드를 도와주기 위해 특정 종목에서 매수 버튼을 없애 버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 회사 이름은 로빈후드(Robin Hood)다. 로빈후드?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로빈후드가 정말 그랬다면, 이름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다.


로빈후드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두 명의 젊은이가 기존 금융업계의 판도를 바꾸겠다며 만든 주식 중개회사다. 실제로 판도를 바꾸었고, 많은 증권회사가 로빈후드의 영향을 받아 수수료를 없애거나 낮췄다. 그래도 로빈후드의 유명세와 성장세는 거듭되어 스탠퍼드를 갓 졸업한 두 명의 젊은이는 모두 조 단위 부자가 되었다.



로빈후드(Robin Hood)는 영국 옛이야기의 단골 캐릭터다. 13세기에 처음 등장한 로빈후드는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에 등장했다. 그런 면에서 아더왕과 같은 레벨의 집단 캐릭터(stock character)다. 아더왕과 마찬가지로 로빈후드가 실존했는지에 대한 연구와 논쟁이 많다. 영국의 로빈후드는 우리나라의 홍길동이다.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어 나름의 정의를 실현하려 했다. 증권회사가 로빈후드라는 이름을 달았을 때, 그 뜻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공감대가 형성되었기에 로빈후드는 금융계에 변화를 가져왔고 크게 성공했다.

그런 로빈후드가 공매도 헷지펀드를 돕기 위해 매수를 금지시켰을까? 얻는 것에 비하여 잃는 것이 너무 크다. 투자자를 보호할 목적이었다고 이해해주고 싶지만, 깊은 내막을 아직은 모른다. 그렇다면 매도 버튼은 왜 남겨 두었는가? 로빈후드는 CFD가 아니고 실제 주식 거래를 중개하는 회사다. 매도 버튼을 없애면,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포지션을 청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CFD 마켓에서도 신규 포지션만 안되지, 기존 포지션 정리는 buy와 sell 모두 버튼을 누를 수 있다.

게임스탑 공매도 세력에 대항하는 개인 투자자의 집단 움직임은 성공 여부를 떠나 큰 의미가 있다. 금융시장에 로빈후드가 나타날 때보다 더 의미심장한 흐름이며, 이게 진짜 로빈후드일지도 모른다. 서학 개미, 동학 개미들의 흐름을 잘 짚으면, 새로운 금융기관이 탄생할 수 있다. 기존 금융기관은 그런 일 절대 못한다. 로빈후드나 홍길동이 아무리 멋있다고 해도 머리가 굳어 버린 배 나온 아저씨는 그 배역을 소화할 수 없다. 로빈후드 설립자처럼 젊고 똘똘하며 진취적이어야 이런 움직임을 기업화할 수 있다.

공매도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필요악인가? 에 대한 판단은 생각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다. 가격은 거래를 성사시켜 주기도 하지만, 거래를 통해 가격이 발견되기도 한다. 물건의 가격은 물건을 가진 사람과 가지려고 하는 사람 간의 거래 조건이기도 하고 거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가격을 발견함에 있어 물건을 가진 사람과 가지려고 하는 사람 둘만이 참여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TREK이라는 자전거가 있다고 할 때 그걸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걸 사려고 하는 사람 둘만이 그 가격을 결정해야 할 이유는 아무 데도 없다. 어떠한 이유로 TREK의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오른다고 가정할 때, 삼천리 자전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배가 아플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도 TREK 자전거 가격 결정에 참여하고 싶을 수가 있다.

똑같이 쉬마노(Shimano) 20단 기어를 사용하는 데, 삼천리는 백만 원인데 TREK은 이백만 원인 것이 못 마땅한 자전거 덕후(MAMIL)가 TREK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면서 매도하고 싶을 수 있다. 배 아파서 하는 행동의 도덕적 잘잘못을 떠나서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시장은 활력을 가지게 되고 가격 발견 기능은 좋아진다. 그러므로 공매도가 존재하는 것은 가격 발견 기능을 위해 대체로 좋다.

그런데 공매도는 왜 지탄을 받아야 하는가? 시장에는 가격 발견 기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게 뭐가 있을까? 공동체 정신? 금융기관의 강자 논리를 타파하려는 로빈후드 정신, 질투심을 응징하려는 정의감? 경제의 단순성? 쉬운 경제에 대한 지향? 둔한 머리로 생각나는 것은 많지 않고 잘 모르겠다. 모르면서 영웅화할 필요도 없지만, 그걸 폄하할 이유도 없다. 더 알아보고 해도 늦지 않겠다.

이런 흐름이 꽤나 오래 지속될 수 있고, 앞으로 자주 등장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비슷하기도 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명확히 나쁘지만, 금융시장의 개인 간 연대 흐름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한다. 이럴 때 눈을 부릅뜨고 있으면 횡재수가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틱톡, 카카오톡으로 지구촌 구성원은 쉽게 뜻을 모을 수 있다. 명분만 있다면 로빈후드나 홍길동의 편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많다. 쉽게 모을 수 있는 것은 뜻만이 아니고, 돈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은 몇십 분 만에 가상화폐로 쉽게 펀딩에 참여할 수 있다. 카카오톡을 통해 정보의 흐름만 빨라진 것이 아니라 가상화폐를 통해 돈의 흐름도 쉬워진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공매도를 금지하자는 것에는 경제 원리를 단순화하자는 뜻도 있고, 전통 경제의 일부를 복원하자는 뜻도 있다. 그런 면에서 비트코인이 출범한 뜻과 같은 면도 있다. 엘론 머스크가 최근에 공매도를 비난하다가 갑자기 비트코인을 찬양한 것도 그저 뜬금없는 행동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현대 경제를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고 보완하자는 것이어서 기존 경제와 충분히 공존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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