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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Feb 08. 2021

벽난로 앞에서 존 스튜어트 밀을 읽다

런던 라이프

벽난로 앞에서 존 스튜어트 밀을 읽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오고 있다. 눈이 오니 쌀쌀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벽난로를 켠다. 벽난로를 켜니 책을 읽고 싶어졌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집어 든다.

“영국인은 의회나 행정부가 개인의 사적 행동에 관여하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이는 개인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고귀한 뜻 때문이라기보다는 정부가 개인의 이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통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략) 자유 영역으로 남아 있던 개인의 사생활에 정부가 간섭하려 드는 모든 시도에 대해서 영국인은 크게 거부하는 편이다. 간섭이 불법적이든 합법적이든 관계없이 간섭 자체를 싫어한다. 이러한 감정은 전체적으로 보면 옳고 타당한 것이지만, 개별 사안에 따라 올바른 결과를 이끌어낼 가능성만큼이나 그릇된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다.”

아주 어려운 책도 아니지만 쉬운 책도 아니어서 책을 끝까지 읽기 위해서는 벽난로를 계속 켜 놓아야 하고, 눈도 제법 와 주어야 할 것 같다. 우리 집 벽난로는 지난 2년간 우두커니 있기만 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부터 켜 보기 시작했다. 벽난로는 생각보다 집안 전체에 빠르게 온기를 제공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벽난로로 불러 모으기도 하고, 발걸음을 책장으로 옮기게 만든다. 생각 같아서는 벽난로 앞에서 책을 읽다가, 담배를 한 대 피고, 꽁초를 벽난로에 툭하고 던져 버리고 싶다.

 


벽난로는 유래가 따로 없을 정도로 인류가 불을 발견하면서부터 함께했다. 어릴 적 시골의 아궁이도 벽난로의 일종이다. 시골의 부엌을 거실이라고 생각하면 자체로 완벽한 벽난로다. 요리도 하고 거실도 따듯하게 하면서, 온돌을 통해 여러 방을 동시에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 벽난로는 서구의 집 구조상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많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벽난로가 발전하는 데는 100 달러 지폐의 주인공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크게 기여했다. 오늘날의 벽난로 대부분은 철제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데 프랭클린 스토브가 벽에 들어간 형태가 많다.


1600년대 초에서 1800년대 초까지 세계적으로 기온이 매우 낮았다. 이를 ‘작은 빙하기’라고 한다. 그러므로 벽난로의 중요성은 더욱 높았다. 작은 빙하기 시대의 끝 무렵을 살았던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는 벽난로가 단골로 등장한다. 디킨스의 소설로 인해 눈과 벽난로가 크리스마스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벽난로에서 나오는 것은 온기와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산타 할아버지도 벽난로에서 나오고, 유령도 벽난로에서 나오며, 관리를 잘해주지 않으면 쥐도 벽난로에서 나온다.
 


벽난로가 중요한 것처럼, 벽난로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굴뚝도 중요하다. 청소도 중요하고, 그래서 굴뚝 청소부와 관련한 이야기도 많다. 전통적으로 영국의 굴뚝은 9인치 정도다. 23센티미터가 채 안 되는 공간이다. 이 좁은 공간을 청소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필요했다.

19세기 산업현장에서 아이들 노동이 사회 문제가 되었는데 가장 큰 사회문제 중의 하나가 굴뚝 청소를 하다가 끼어서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죽거나 떨어져 다치는 것이었다. 굴뚝 청소부를 보호하는 법적인 조치가 강화되다가  ‘Chimney Sweeper Act 1875’가 통과되면서 굴뚝 청소에 아이들이 동원되는 것이 최종적으로 금지되었다. 개인의 삶에 정부가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는 영국인의 태도로 인해 입법이 늦어진 감이 있다.

벽난로는 인테리어 디자인의 주요한 요소이기도하다. 벽난로는 효율적인 열전달을 위해서 거실 중앙에 배치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벽난로 인테리어가 집안의 인테리어 분위기를 좌지우지한다. 우리 집 벽난로는 미니멀한 형태고, 그래서 우리 집 인테리어가 미니멀리즘에서 멀리 도망할 수가 없다. 벽난로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인데, 다른 인테리어는 맥시멀리즘(Maximalism)일 수가 없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도 책을 읽는 데는 방해가 된다. 아이가 조르기 때문이다. 눈 밭에 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한 후에 벽난로 앞에서 장갑과 모자를 말려야겠다. 그리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마저 읽을 것인데, 완독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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