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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Feb 19. 2021

금, 브라운 바닥, 그리고 Gold 2.0

London Life 2.0

London Life 2.0

(1) 금, 브라운 바닥, 그리고 Gold 2.0
  
  
전 세계 자산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은 금이다. 1경 2400조 원에 달한다. 2위는 애플 주식으로 2377조 원이다. 그 뒤를 아람코,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이 따르고 있다. 6위는 은(Silver)으로 전 세계에 존재하는 은의 가치는 1632조 원이다. 뒤에 구글이 있다. 8위는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의 총가치는 1068조 원이다.

기업체를 제외하면, 금이 1등, 은이 2등, 비트코인이 3등이다.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 수여되는데, 다음 올림픽부터는 동메달 대신에 비트코인 메달이 수여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비트코인은 과연 Gold 2.0인가? 디지털 금인가? 재미난 질문이다. 금과 비트코인이 가장 유사한 포인트는 ‘한 나라의 중앙은행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화폐성을 띠는 어떤 것’이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자세히 들어가면, 더 많은 공통점이 있고, 공통점만큼 많은 차이점도 있다. 비트코인이 금의 새로운 버전인가를 따지기 전에 먼저 금이란 무엇인가를 간단하게 짚어 봐야 한다.

금이 인류와 함께 한 역사가 6000년이 넘는다. 기원전 500년부터는 금화같은 형태로 쓰이기 시작했다. 금은 오늘날 법정화폐의 시대에도 부분적으로 화폐로서 기능하고 있지만, 화폐보다는 자산으로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1.24경 원에 달하는 금 중에 50%는 귀금속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30%는 개인과 기관의 투자 수단으로 쓰이고 있고, 12%는 각국의 외환보유고로 쓰이고 있으며, 8%는 산업적 용도로 쓰이고 있다. 각국 정부와 전 세계의 많은 투자자가 금을 안전 자산으로 여기고 있다.

비트코인이 금이 될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로 꼽는 것이 변동성이다. 높은 변동성은 비트코인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금도 높은 변동성을 가졌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 런던에는 금의 변동성과 관련한 재미난 일화가 있다.

1970년대 초에 금은 온스당 100 달러였다가 1980년에 800 달러를 넘었다. 이후 급등락을 반복했지만, 지속적인 하향 트렌드를 20년 이상 보였다. 닷컴 열풍이 한창이던 2000년대 초반까지 금은 변동성도 높았고, 안전하지도 못했으며, 전망이 좋지도 않았다. 높은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수많은 나라의 채권보다는 안전한 것으로 여겨졌다. 불투명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분산투자 차원에서 보유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금 트렌드에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 뜻밖에도 영국에서 발생했다. 1999년 토니 블레어가 총리를 하던 때에 고든 브라운이라는 재무부 장관이 있었다. 그는 20년간 죽 쑤고 있는 금을 영국 중앙은행이 보유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당시 금은 변동성이 높아 안전자산으로 여길 수가 없었으며, 추세적인 하향 트렌드를 돌파할 모멘텀이 없었다. 미국 국고채처럼 수익을 창출하는 것도 아니었다. 때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눈 앞에 두고 있었고, 미국에서 시작된 닷컴(. com) 기업의 상승세가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주식 시장과 음의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던 금에 대한 전망은 비관적이었다.

고든 브라운은 금 보유고의 절반을 시장에 팔았다. 평균 매각 가격은 온스당 275 달러였다. 브라운의 결정은 금 가격의 역사적 바닥을 만들어 냈다. 이를 ‘브라운 바닥(Brown Bottom)’이라고 한다. 고든 브라운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당시 금 가격은 온스당 1000 달러였지만, 그 정도까지는 그럴 수도 있었다. 이후 금 가격은 다시 오르기 시작하여 온스당 2000 달러까지 올라갔다. 노동당은 고든 브라운 이후 한번도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다. ‘브라운 바닥’ 때문에 선거에서 계속 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시장을 모르는 노동당의 이미지가 고착되었다.

저런 바보 같은 결정이 있는가 싶다. 지나 보면 그렇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결정이었다.’ 결과론으로 정치적 결정을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며, 상대적으로 공정한 풍토가 영국에 있는 것도 같다. ‘중앙은행이 금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영국에 많다. 금을 팔고 미국 국고채를 사면서 미국 정부를 기쁘게 하기도 했다. 외교적인 큰 성과였다. 닷컴 버블의 붕괴를 예상하지 못한 것을 두고 브라운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외환 보유고에 대한 액티브한 운영에 대해서도 여러 시사점을 남겼다. 영국은 현재 310톤의 금을 보유하고 있어,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보다 적은 금 보유 국가다.



역사에 남을 금에 대한 판단 미스를 범한 영국의 금융 당국은 지난 1월에 비트코인 가격에 대한 경고에 들어갔다. ‘비트코인은 내재가치가 없고 외재가치만 있을 뿐이다.’ 외재가치만 가지는 것이 비트코인 팬에게는 큰 문제는 아니다. 외재가치가 사라질 리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은(Silver)의 위치를 위협할 정도로 높게 부여된 비트코인에 대한 신뢰가 어떤 한 나라의 중앙은행장이나 금융감독 기관의 경고에 의해 사라질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낙관적이지는 않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신호이기 때문에 기술적 진보에 의해 블록체인이라는 신호 체계가 무력화될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훌륭한 보안성을 보이고 있으나 그 보안성이 무너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영국 정부의 판단과는 금은 안전자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금의 역사를 돌아보면, 금이 비트코인보다 기술적으로 더 안전했다고 보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갑자기 어마어마한 매장량의 금광이 발견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연금술이 발달하여 납이 금으로 변하면 어떻게 되는가? 실제로 기술이 발달하면서 소량의 납이 금으로 변하는 연금술은 경제성이 없는 단계에서는 성공하고 있다. 연금술이 발전하면 Gold 1.0이 무너지듯이, 블록체인이 무너지면 Gold 2.0도 무너진다.

그러나 금은 연금술의 발전에 대응할 수 없지만, 비트코인은 불록체인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대응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인류를 믿는다면, 금보다는 비트코인이 기술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좀 편향적인가?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이 글은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권유가 아니며, 혹시 그렇게 읽혔다고 하면 오해가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비트코인을 사야 하냐고 묻는다면, 내 생각보다는 영국 중앙은행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결정이다’라고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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