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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r 23. 2021

총기와 공포는 통제될 수 있는가?

London Life

London Life 2.0

(11) 총기와 공포는 통제될 수 있는가?

  

    

2021년 3월 16일에 애틀랜타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아시아계 여성 6명을 포함하여, 8명이 사망했다.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는 테러가 모두 그렇지만, 총기 테러는 더욱 공포스럽다. 피해의 즉각성, 총기에 반응할 수 없는 무대응성,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총격의 광범위성으로 인해 많은 이에게 공포와 트라우마를 안긴다.


총기 난사 사건이 있을 때마다 총기 규제에 관한 움직임이 있지만,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총기 보유를 법적으로 용인한 최초의 문서는 아이러니하게도 1689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다. 토리당과 휘그당이 힘을 합쳐, 카톨릭의 회복을 꾀하던 제임스 2세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 권리장전이다. 개인의 인권보호 헌장이기도 한 권리장전에 ‘프로테스탄트는 상황에 따라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자기 방어를 위하여 무장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권리장전이 생길 무렵에 많은 영국의 프로테스탄트들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New York의 York는 권리장전을 탄생시킨 원인 제공자인 제임스 2세의 왕이 되기 전의 타이틀인 Duke of York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에는 카톨릭을 강요하는 왕은 없었지만, 인디언으로부터 빼앗아야 할 땅이 있었고, 곰이나 늑대와 같은 자연의 위협이 있었다. 무기가 필요했고, 무기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오늘날 사용되는 대부분의 총기는 미국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발전했다. 미국인은 스스로 개발한 총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자연을 정복했고, 영국으로부터 독립도 이뤄냈다.



미국 수정헌법 2조에는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할 개인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쓰여 있다고 한다. 경찰력이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의 시골에서 개인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 총기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총을 쏘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는 나의 친구는 총기 소지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자주 말한다. ‘총기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면, 선한 사람은 법에 따라 무장 해제가 된다. 악한 사람은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무장을 해제하지 않는다. 나쁜 사람이 착한 사람을 상대로 편안하게 폭력을 휘두를  있게 만드는 제도가 총기규제법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거의 설득될 뻔한 적도 있다. 그는 여전히 주말마다 총을 쏘러 다닌다.


총기 소지는 금지되어야 하는가? 만일에 대비하여 성능 좋은 총을 하나 숨겨 놓고 있어야 하는가? 미국에서 총기 소지는 금지될  있는가? 미국인이 총기를 소지할  있는 법적인 토대를 만들어  영국인 총기를 소지할  있는가?


영국에는 칼로 인한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나이프 프리 캠페인을 TV나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범죄 집단에 의한 총기 사용은 있겠지만, 일상에서 총기 사건은 드물다. 그래서 영국에는 오래전부터 총기 소유가 금지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는 않다.


공교롭게도 때는 이맘때였다. 1996년 3월 13일에 스코틀랜드 던블레인(Dunblane)의 초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고가 있었다. 권총 네 자루를 들고 학교에 침입한 토마스 해밀턴이 총을 난사하여 16명의 아이와 한 명의 교사가 죽었다. 체육관에서 수업을 받고 있던 일학년 아이들이 희생되었다.


멀리서 총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주디(Judy) 머레이가 차를 몰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 방향으로 차가 몰리자, 차를 버리고 학교로 달려갔다. 학교 앞에 모여든 학부모들은 사태 파악이   상태에서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침내  곳으로 안내되었고, 옆에 앉아 있는 젊은 여성이 사고는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일어난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디의 아이는 3학년과 5학년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조금 안도할  있었다. 이야기를 들려준 여성은 딸을 잃었고, 주디는 더욱 깊은 충격에 빠졌다.


주디는 3학년인 앤디와 5학년인 제이미를 데리고 집에 왔지만,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창문에서 떨어지도록 했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대신에 아이들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했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학교는 놀랍도록 침착하게 대응했다. 앤디와 제이미는 학교 지붕에서 누가 망치질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상황을 알게 된 학생들은 큰 상처를 받았다. 당시 8살이었던 앤디는 테러범과 잘 아는 사이였고, 승용차를 같이 탄 적도 있었다. 앤디 머레이가 윔블던을 두차례 우승하고, 올림픽을 두차례 우승하는 동안, 모든 영국인이 같이 기뻐했다. 감격의 순간마다 앤디 머레이는 자신이 던블레인 주민을 잠시라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데에 큰 보람을 느꼈다.



던블레인 총기 사건 이후로 영국에서 개인의 총기 소유는 금지되었다. 자유에 목숨을 거는 영국인들은 총기 금지를 쉽게 수용했다. 정부는 예상보다 적은 반발에 스스로 놀랐다.


같은 자유주의 전통의 나라도 코로나에 대응하는 방식이 제각각인 것처럼, 총기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미국에서 총기 규제는 시간의 문제이지 다가올 미래인가?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총기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총기 난사와 같은 안타까운 희생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전 세계 모든 총과 총알에 지울 수 없는 거래기록을 심는 것은 가능할까? 혹시 NFT는 해당사항이 없을까? 앤디 머레이는 재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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