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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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세상의 변화를 거품이라 말하다(NFT)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이라는 대작을 썼을 때의 일이다. 홀가분했지만, 서둘러 검증을 받고 싶었다. 1862년 3월 21일에 찰스 디킨스에게 원고와 함께 다음과 같은 자필 편지를 보냈다. “내가 소설을 하나 썼는데. 한번 봐봐. 너무 장황하기도 하고, 동생처럼 유머감각이 없어서 걱정이야. 동생 생각이 듣고 싶어. 바쁜 줄 알지만, 빨리 답 좀 줘.( J'ai écrit un roman. Veuillez l'examiner. Je pense que le roman est trop long. Et je ne pouvais même pas écrire drôle comme toi. préoccupé. Je veux entendre les pensées de mon frère. Répondez rapidement, même si vous êtes occupé.)’
이 편지는 1862년 4월 1일에 로열 메일(Royal Mail)의 배달부에 의해 런던에 있는 디킨스의 집으로 배달되었다. 편지의 소장자인 찰스 디킨스의 6대손 해리 디킨스는 런던 크리스티 경매를 통하여, 편지를 판매하기로 결심했다. 프랑스와 영국 문학 애호가들이 경매에 열광했고, 편지는 결국 200만 파운드(30억 원)에 낙찰되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세상의 변화도 거품의 도래도 아니다.
2006년 3월 21일(공교롭게 같은 날이다) 오후 8시 50분에 잭 도르시는 ‘just setting up my twttr’이라는 첫번째 트위터를 세상에 날렸다. 오늘날 2억 명의 트위터 이용자가 하루에만 5억 개의 메시지를 날린다. 잭 도르시는 자신의 첫번째 메시지를 팔기로 마음먹었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프랑스와 영국 문학 애호가만큼 열광적으로 첫번째 포스팅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가격이 공교롭게 빅토르 위고의 편지 경매가인 30억 원에 육박하고 있다.
그렇다면 첫번째 트위터 메시지를 사는 사람은 무엇을 사는 것일까? 빅토르 위고의 편지는 만질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트위터 메세지는 유형인가, 무형인가? 누구가 모바일이나 컴퓨터를 통해서 첫번째 트위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신호인 첫번째 메세지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어디에 존재하나? 트위터 본사 웹서버에 존재하나? 아마존 웹서비스 상에 존재하나? 트위터 메시지를 산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은 ‘그 사람이 첫번째 트위터 메시지의 소유주다’라는 블록체인 상의 기록이다. 그에게는 디지털 동전이 하나 주어지는데, 그것을 우리는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라고 한다.
그러면 그 트위터의 소유주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지게 되는가? 그것은 해당 NFT의 설계에 따라 달라진다. 해당 트위터 메시지 하단에 소유자를 별도로 표시할 수도 있고, 해당 메시지를 소유자만 볼 수 있게 만들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해당 트위터를 열람하려고 할 경우에 소유자의 동의를 거치도록 설계할 수도 있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는 해당 메시지의 소유권만 NFT에 기록할 뿐, 아무런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해당 화면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가지는 것도 아니기에, 해당 메시지를 화면캡처해서 다른 사람들이 사용해도, 이용료 같은 것을 받을 수도 없다. 그리고 이미 너무 많은 화면캡처가 세상에 존재한다.
이렇게 되면 찝찝한 마음이 금할 길이 없어진다.
빅토르 위고가 찰스 디킨스에게 보낸 편지가 가치를 가진다면, 잭 도르시의 첫번째 메세지가 가치를 가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빅토르 위고의 편지가 팔릴 수 있다면, 잭 도르시의 메시지가 팔려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 매수자가 산 것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그의 자유지만, 그가 그 인터넷 상의 메시지를 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2021년 2월 16일 크리스트 경매에서는 마이크 윙클맨의 작품 ‘매일매일: 첫번째 5천 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이 784억 원에 낙찰되었다. 낙찰자가 가지는 것은 319,168,313 bytes의 디지털 신호다. 디지털 신호는 쉽게 복제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배타적 소유권의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블록체인 암호화 기술을 활용하여, 3억 바이트가 넘는 디지털 신호에 작품의 생성 연도와 작품의 소유권자를 기록하는 NFT를 발행한다. 쉽게 복사될 수 있는 3억 바이트의 디지털 신호는 블록체인 기반의 NFT를 통해 하나만 있는 고유한 디지털 신호가 된다. 기술은 다양하게 구현될 수가 있어서 단순한 PDF 파일이 될 수도 있고, JPG 파일이 될 수도 있다. 매수자만 그 파일을 다운로드하거나 열 수 있게 만들 수도 있고, 그 파일을 누구나 자유롭게 복사하여 사용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있다. 매수자 마음이다. 매도자는 그 작품의 지적재산권을 같이 팔 수도 있고, 고유한 파일 하나만을 팔 수도 있다. 인터넷 상에 이미 공개된 이미지는 누구나 사용이 가능하며, 매수자가 향후에 고 퀄리티의 원본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사용한다면, 그것을 화면캡처하는 방식으로 누구든 이미지를 재활용할 수 있다.
만일 매수자가 그 디지털 신호의 무한 복제를 허용한다면, 그 작품은 매수자에게 배타적으로 귀속되지 못한다. 그가 가지게 되는 것은 ‘이 작품이 그의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가상화폐 NFT뿐이다. 미술 작품 자체는 복제가 가능하지만, 토큰은 복제할 수 없다. 누구나 그의 작품을 고화질로 출력하여, 멋진 액자 속에 넣어서, 거실에 걸어 둘 수도 있다. 하지만, 그 NFT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좋은 액자를 사용했더라도 짝퉁을 거실에 걸어 놓은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 NFT를 보유한 사람은 작품을 거실에 걸어 놓지 않아도, 그가 작품의 소유주라는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 사실은 주인이 그 NFT를 시장에 팔고, 그 거래가 블록체인을 통해서 승인될 때만 변하게 된다.
실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작품이 784억 원에 팔렸다. 5천 개의 디지털 이미지 작품이 모아진 대작인 ‘매일매일’은 미술 문외한인 내게도 충분히 비범해 보인다. 마이크 윙클맨은 비슷한 작품을 만들어서 다시 팔 수도 있는데, 그 작품의 가격은 오로지 시장에서 결정될 뿐이다. 이런 소리가 입에서 나온다. ‘거품이다.’ ‘버블이다.’ ‘예술가의 장난이다.’ 세상이 미쳤다.’ ‘돈지랄이다.’
빅토르 위고의 자필 편지가 거품이 아니라면, 잭 도로시의 첫 메시지는 왜 거품인가? 빅토르 위고의 자필 편지는 위작일 수도 있고, 도난당할 수도 있으며, 커피를 쏟아 훼손될 수도 있다. 잭 도로시의 트위터는 위조일 수가 없고, 도난될 수가 없으며, 침수 피해를 당할 수도 없다. 과연 어느 자산이 지속 가능하고, 안전하며, 형태를 가지는가?
이것은 새로운 세상의 도래인가? 새로운 버블의 탄생인가? 세상의 변화를 거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그걸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참! 빅토르 위고의 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만들어 낸 하나의 예다. 실제로 그런 편지는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으며, 디킨스의 6대 손 이름도 해리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위에 인용된 프랑스어가 제대로 사용되었다는 보장이 없으며, 나도 오늘에서야 NFT에 대해 자세히 공부한 것이기 때문에 본 포스팅 내용이 맞다는 보장이 또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