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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ug 16. 2021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그레이트 게임

London Life

위대하지 않았던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

  

  

영국은 도시락을 싸고 다니면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했다. 러시아와 터키가 격돌한 크림전쟁에서 영국은 터키 편에 섰다. 러시아 남하를 싫어하는 것은 프랑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프랑스도 영국과 편을 먹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천년 넘게 지속된 적대관계를 크림전쟁에서 청산한 셈이다. 다 러시아 덕분이다.


영국은 러시아가 인도를 향해 남하할 것이라고 경계했다. 러시아가 인도 쪽으로 내려온다면 프랑스도 영국 편을 들어주지 않고 러시아 편에 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는 영국의 힘이 미국과 인도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남하에 대한 강박 때문에 영국은 인도 북부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에 진출하여 버퍼(buffer)를 만들려고 했다.


버퍼 지역에서 러시아와 영국이 1838년에서 1895년까지 싸운 것을 영국 사람들은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라고 부른다. 위대한 명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Great한 것이 아니다. 상대 말을 죽이기도 하고, 승리를 위해서 우리 편도 사지로 내몰아야 하는 체스와 같았기 때문에, 체스판이 대단히 컸다는 의미에서 Great였다.


아프가니스탄을 실효적으로 지배하지 못했기에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은 버퍼였기 때문에 어찌 보면 성공을 못한 것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아프가니스탄 남쪽을 러시아와 소련의 영향력으로부터 지켜냈다. 1895년 이후로는 영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신경 쓰지 않은 것은 러시아가 더 이상 해외 확장정책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러시아는 일본과 전쟁을 했는데, 그 전쟁에서도 영국은 보이지 않게 일본을 지원했다.



1979년에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친소 정부를 세웠다. 전쟁을 시작했을 때 소련은 아프간 전쟁이 긴 수렁일 줄은 몰랐다. 20세기 소련은 영국과 체스를 두던 19세기 제정 러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은 10년이 넘게 지속되었고, 양쪽 합해서 10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고, 소련은 망하기 직전인 1989년에 철수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고, 거의 모든 나라가 소련에 등을 돌림으로써 외교적인 고립에 빠졌다. 소련 영화에 나오는 멘탈이 이상한 사람은 대게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다.


대영제국과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수렁에서 어렵게 나왔다. 그때만 해도 또 다른 강대국이 아프가니스탄이란 수렁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9.11 테러가 발생했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게 오사마 빈 라덴을 넘겨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이를 거절했다. 아프가니스탄도 미국 말을 들었어야 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미국은 소련보다 두배나 길게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수렁 속에 있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잡겠다는 목적을 달성했지만, 탈레반을 소탕하겠다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탈레반은 오사마 빈 라덴 시절의 탈레반에 비해 각성한 것도 많을 것이고, 미국을 적당히 건드려야 한다는 교훈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교훈을 위해 미국이 들인 비용은 지나치게 컸다.


미군 2448명, 영국군 457명의 전사자는 소련군의 희생에 비하면 작은 숫자다. 전투에 최첨단 장비가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군대와 경찰력을 만들고 지원하는 것을 포함하여 100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프가니스탄 정규군과 경찰력은 미군 철수라는 한 마디에 총을 놓고 도망가기에 바빴으니 100조 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군은 왜 철수하는가?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 정부가 들어서면 이슬람을 탄압하는 중국에게 강력한 견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것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좋은 명분일 수는 있지만, 현실성 떨어지는 망상이다. 철군의 이유는 아프가니스탄이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서쪽으로 이란, 남으로 파키스탄, 동으로 중국, 북으로 구소련 국가에 둘러 쌓여 있다. 군사적으로 확장될 여지가 전혀 없다. 그중 어떤 나라도 여차하면 아프가니스탄을 혼내 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탈레반의 종교적인 영향력도 제한적이다. 주변국이 나름대로 이미 종교 문화적으로 자존심 있는 선진국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체스를 둔다면, 주변국들이 알아서 두면 될 것이다. 그것은 여전히 명분이 없기에 Great와는 거리가 멀 것이며, 그저 커다란 체스판이기 때문에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줄 수는 있을 것이다.


탈레반도 생각이 있다면, 자신들이 땅이 체스판이 되는 일 따위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그동안 미국만 헛짓거리를 한 것이 아니다. 탈레반은 더욱더 헛짓거리를 한 것이다. 미국은 돈이 들어서 그렇지 체스 한판 거국적으로 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미군이 있었을 때가 어쩌면 탈레반에게도 좋았을 것이다. 눈이 녹으면 천지가 쓰레기 투성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 때문이다.


그간 모든 것이 영국 탓, 소련 탓, 미국 탓이었다. 이제 제대로 된 이슬람 국가를 만들어 보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좋은 국제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주변국 어디든지 심심하면 또 체스를 두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서 최빈국에서 선진국 되는 노하우를 전수받든지, 아니면 한국이 한동안 잘했던 실용외교를 배워가든지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교육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니, 유명하다는 석류라도 잔뜩 싣고 와서 배워가는 것이 좋겠다. ‘미군 철수시키는 법’을 가르쳐 줄 테니 그걸로 바터(barter) 치자고 하면, 너네는 영원히 구제불능인 것이니, 그것 또한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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