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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Sep 14. 2021

리버풀 해안가에서 주변을 돌아보다

London Life 2.0

리버풀 해안가에서 주변을 돌아보다

    

    

리버풀 해변가에 있는 로얄 버크데일(Royal Birkdale Golf Club)에 왔다. 17번 홀과 18번 홀의 그린에 서서 한참 동안 주변을 돌아 봤다. 만족스럽게도 17번 홀에서 파, 18번 홀에서 버디를 기록했다.


미국과 유럽의 골프 선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라이더컵(Ryder Cup) 참가라고 한다. 한국계 골퍼 중에 가장 성공한 케빈 나(Cavin Na)의 평생 소원도 라이더컵에서 미국 대표로 경기하는 것이다. 다음 주에 미국에서 열리는 라이더컵에 Na는 아쉽게도 선발되지 못했다.


라이더컵은 영국과 미국의 국가대항전으로 1927년에 시작되었다. 골프 시장이나 인구로 봤을 때, 영국이 미국을 이기기 어렵다. 격년제로 개최되는 라이더컵에서 1967년까지 미국이 17번 경기해서 14번을 이겼고 영국이 3번을 이겼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점수 차가 크게 났다.



때는 1969년이었고, 장소는 로얄 버크데일이었다. 라이더컵 마지막 조에서 잭 니클라우스와 토니 잭클린이 대결하고 있었다. 그들이 17홀 그린에 갔을 때, 양팀의 점수는 동점이었고, 둘 간의 매치에서는 잭 니클라우스가 한 홀 차이로 앞서고 있었다.


토니 잭클린은 17번 홀에서 20야드 이글 퍼팅을 넣어 극적으로 동점으로 만들었다. 로얄 버크데일은 관중의 열기로 달아 올랐고, 마지막 18번 홀에 모든 것이 걸려 있었다. 급한 마음에 앞서 걸어가는 토니 잭클린을 잭 니클라우스가  불러 세웠다.


니클라우스: “토니! 너 긴장되지?”

잭클린: “긴장? 말도 못하지, 완전 제정신 아니야!”

니클라우스: “이 말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지 모르겠는데, 나도 마찬가지야!”


그 말은 실제로 토니 잭클린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둘은 좋은 샷을 날렸고, 15야드 남짓 비슷한 거리의 버디 퍼팅을 남겨 놓았다. 토니 잭클린의 퍼팅은 홀에 한발짝 못미쳐 멈췄다. 프로나 아마추어 모두에게 힘든 퍼팅이 한발짝 퍼팅이다. 잭클린은 니클라우스가 버디 퍼팅을 시도할 때, 공이 같은 거리를 남겨 놓기를 바랬다. 서로 컨세션(concession, 다음 스트로크에서 들어간다고 인정해 주는 것, 아마추어 용어로 OK)을 주고 무승부로 경기를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중압감 아래서 마지막 퍼팅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잭 니클라우스의 버디 퍼팅이 홀컵을 훌쩍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OK를 줄 수 없는 세발짝 거리였다.


경기 후에 니클라우스는 ‘세상에 이렇게 부담되는 파 퍼팅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미국 전체가 자신의 어깨 위에 있었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바람에 팔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퍼팅에 성공했고, 미국 선수단을 열광하게 만든 후에 니클라우스는 조용히 토니 잭클린의 볼 마크를 집어 들었다. 잭클린의 마음을 읽고 OK를 준 것이었다. 이로써 미국과 영국 팀은 라이더컵 최초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OK를 준 이유를 묻자. “토니 잭클린은 영국의 영웅이다. 영웅이 수 많은 골프 팬 앞에서 실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잭 니클라우스가 토니 잭클린에게 준 OK를 세기의 OK라고 부른다. The Consession이라 표현된다. 이 사건 이후로 잭 니클라우스는 신사 중의 신사, 스포츠맨 중의 스포츠맨으로 불리게 되었다.



2015년 솔하임 컵에서는 정반대의 OK 사태가 있었다. 한국계 미국인인 앨리슨 리의 퍼팅이 홀컵을 조금 지나가 멈췄다. 솔하임 컵에 처음 출전한 앨리슨은 당연히 OK로 생각하고 볼을 집었는데, 노르웨이의 수잔 피터슨이 자신은 OK를 준 적이 없다고 말해 그 홀을 승리로 가져갔다.


이는 21세기 골프에 가장 큰 논란 거리가 되었다. OK란 무엇인가? 수잔 피터슨의 행동은 46년전 잭 니클라우스의 OK와 대비되었다. 전세계 골프 팬을 격분시킨 행동으로 그녀는 ‘천하의 상스러운 골퍼’로 낙인 찍혔다. 같은 조에 있었던 영국의 찰리 헐과 유럽팀 부단장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던 애니카 소렌스탐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돌아갔다.


골프를 하다보면, OK가 후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동반자 중에 한명이 OK를 선언했는데, 다른 동반자가 ‘거리가 멀어 OK가 아니라’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플레이어는 OK 받기가 미안하다며, 사양하고 퍼팅을 마치는 경우도 있다. 일종의 OK 거부다.


OK는 상대방의 선언으로 홀 아웃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번 선언된 것은 취소될 수도 없고, 거부될 수도 없다. OK는 진정한 신사와 숙녀가 상대편에게 주는 최선의 배려다.


우리는 타인에게 하는 한마디 말로 ‘세기의 젠틀맨  수도, ‘천하의 상놈  수도 있다. 리버풀 해안가에서 주변을 돌아 보며 뒤늦게 깨달았는데, 그렇다면 로얄 버크데일을 20대에 다녀 갔어야 했다. 10대라면  좋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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