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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Sep 17. 2021

골프 클럽이 시작된 곳, 뮤어필드에 가다

London Life

골프 클럽이 시작된 , 뮤어필드에 가다

   

  

골프는 거리, 지형, 비 그리고 바람과의 싸움이다. 골퍼에게는 자연을 극복한다는 의미가 있다. 골프 코스는 지극히 자연스런 공간이기에 배타적 독점과 어울리지 않는다. 세계 100대 골프장 중에 6곳을 이번에 다니고 있는데, 링크스 골프의 특징으로 가장 놀라운 것은 개방성이다.


100대 골프장이라고 해도 골프는 누구나 칠 수 있고, 코스에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젊은이,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 개와 함께 산책하는 노부부가 자유롭게 코스를 드나드는 곳이다.


15세기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링크스 골프장은 개방성을 핵심으로 삼았다. 울타리를 치고, 수억원의 회원권을 구입한 회원만 사용할 수 있는 골프 코스는 골프의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다.


독점할 수 없고 공유한다는 골프의 특성 때문에 잉글랜드 귀족들은 골프를 그닥 즐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정원에 있는 잔디코트에서 소수만이 참여하는 테니스, 크리켓과 폴로를 선호했다.



그러나 골프 클럽은 또 골프 코스와는 다르다. 클럽하우스는 골프 클럽 멤버들의 전용 공간이다. 그래서 그들만의 폐쇄성이 있다. 로얄 트룬(Royal Troon) 클럽하우스 라커룸에 갔을 때의 일이다. 시설  좋은 락커룸에서 연로한 회원들이 샤워 후에 양복을 갈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자못 장엄하여 말 걸기가 망설여졌다. 마침 한 분이 ‘부우웅’하고 방귀를 뀌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안하다며 웃었다. 때는 이 때였다.


‘저기요. 방문객을 위한 라커는 어디에 있죠? 다 둘러봐도 회원 이름이 적힌 락커 밖에 없어서요.’ 방귀 뀐 노인은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 ‘방문객을 위한 라커란 없는데, 그래서 좀 미안하기도 하고, 근데 그걸 네가 모른다고 해서 나한테 미안할 것은 없고, 그니까 그게 뭐 그런 것이다. 공용 옷걸이나 의자 위에 물건을 두면 된다.’ 그러니까, 클럽에는 방문객을 위한 공간은 없다.


코스의 개방성, 클럽하우스의 폐쇄성이 골프가 시작된 곳의 작동원리다.


골프가 처음 시작된 곳은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로 알려져 있지만, 클럽하우스를 갖춘 골프 클럽으로 공식 기록상의 최초는 에딘버러 동쪽에 위치한 뮤어필드(Muirfield)다. 에딘버러 지역에서 방귀 좀 뀌는 분들이 자신들만을 위해 만든 곳이다.



오늘 이곳에서 플레이를 했다. 출발부터 비범했던 뮤어필드는 모든 것이 엄격하고 폐쇄적인 축에 속했지만, 골프가 가지는 기본적인 개방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비회원도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얼마든지 골프를 칠 수가 있다.


7시 30분에 골프장에 도착했다. 체크인 카운트에서 스코어 카드와 야디지를 준다. 조그마한 프로샵에서 기념품을 둘러 보고 나면, 락커룸으로 안내된다. 클럽하우스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되고, 방문객을 위한 락커는 역시 없다. 방문객은 대게 자켓과 구두를 들고 온다. 락커룸 바닥에 구두는 놓고, 자켓과 넥타이와 와이셔츠는 공용 옷걸이에 걸어둔다.


차나 커피를 본인이 타 마실 수는 있지만 먹을 것은 점심 때까지 없다.


캐디를 쓰지 않아도 되고 써도 되는데, 영국내 다른 클럽과는 다르게 대부분 캐디를 쓴다. 골프 코스 자체는 환상적이라는 말 밖에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요즘 세계 100대 골프장을 목표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골프장처럼 기묘한 특성은 없다. 그냥 자연미에 탄성이 나올 뿐이다. 잭 니클라우스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골프 코스로 뮤어필드를 들었으니,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다.


라운딩이 끝나고 락커룸에서 샤워를 하고는 셔츠와 타이와 자켓과 구두를 갖춘다. 다이닝룸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 필요한 복장이다. 점심을 먹지 않는다면 자켓과 타이는 필요하지 않고, 골프웨어로 충분하다. 골프룰과 에티켓을 세팅한 곳이 뮤어필드다. 뮤어필드에 없는 클럽하우스에 자켓을 입고 입장해야 하는 룰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정장을 입고 안내되는 다이닝룸은 대단할 것이 없고 해리포터에 나오는 옥스퍼드 대학교 학생 식당 같다. 특이한 점은 자기가 앉고 싶은데에 앉는 것이 아니라 오는 순서대로 자리에 앉아야 한다. 군대 훈련병 시절에 배식판 가지고 오는대로 앉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리에는 은으로 된 포크 세개, 나이프 세개, 스푼 하나가 세팅되어 있다.


음식은 샐러드, 스타터, 메인, 디저트 색션에서 직접 원하는 것을 가져다 먹는데, 가격은 40파운드 정도다. 맛은 보장컨데 최고중의 최고다.


다이닝룸 상단의 벽에는 1744년부터 지금까지 캡틴(captain)의 얼굴 그림 또는 사진이 있는데, 옛날 인물 중에 그림이나 사진이 없는 경우는 빈 액자에 이름만 쓰여 있다. 다른 공간에는 1744년부터 지금까지 리코더(recorder)의 그림 또는 사진이 있다. 리코더란 스코어 및 회원 베팅을 관리하는 회원을 칭한다.


뮤어필드에는 675명의 회원이 있다. 회원권은 사는 것이 아니고 일년에 370만원 정도의 연회비만 내면 된다. 회원은 기존 회원 5명의 추천을 받은 사람 중에 기존 회원의 결원이 생기면 운영위원들이 투표로 결정해 신규 회원을 받는다. 먼저 신청한 사람이 기다렸다가 먼저 회원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명예를 가진 사람이 회원이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요즘은 코로나로 제법 결원이 생긴 모양이다. 락커룸 게시판에는 회원 부고가 제접 올라와 있다.


여성회원은 2019년까지 없었다. 스포츠 양성 평등에 따라 여성회원을 받으라는 정부권고가 있었으나 2016년 회원총회에서 압도적으로 부결되었다. 2017년 영국골프협회에서 ‘전통이 참 중요하죠? 남성회원 전통을 지키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세요. 대신에 앞으로 뮤어필드 회원은 영국골프협회가 주관하는 대회에 참여도 못하실 것이고, The Open을 포함한 영국골프협회가 주관하는 어떤 대회도 뮤어필드에서는 안할거예요’라는 경고를 받고는 항복을 선언했다. 여성회원을 2019년부터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 필드에서는 단 한명의 레이디 골퍼도 보지 못했다.


오늘의  모든 과정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으나 카메라 촬영이 클럽하우스에서는 안된다.  안될까? 그것은 물어 보지 못했다. 방귀 뀌는 회원이 있었다면 물어봤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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