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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Sep 24. 2021

마술피리: 모차르트와 겨루다

London Life

마술피리: 모차르트와 겨루다

  

  

클래식 음악팬이 아닌 사람에게도 모차르트라는 이름은 특별하다. 제목만 보고 ‘모차르트가 살아 있다면’이라는 책을 사본 적이 있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 나지만, 제목만은 지금도 간혹 떠오른다.


어제는 모차르트의 작품 ‘마술 피리(The Magic Flute)’를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관람했다. 목요일 저녁 코벤트 가든은 인파로 가득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좌석은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출연하는 한국인 단원 덕분에 꽤나 좋은 좌석을 구할 수 있었지만, 코로나로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좌석은 꽤나 좁고 옆 좌석과도 밀착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랜만에 입은 재킷과 구두는 나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갑갑함 속에서 난 세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은 시작과 함께 사라졌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무대는 색감이 예술이다. 도대체 어떤 미술가가 이런 무대를 만드는가? 존 맥파레인(John Macfarlane)의 작품이다. 유튜브에 많은 마술피리 무대가 나오지만, 그 어떤 무대도 로열 오페라 하우스 무대의 수준에 근접하지 못한다.



오케스트라의 지휘는 하트무트 헨첸(Hartmut Haenchen)이 맡았다. 바이올린과 소프라노의 조화, 그리고 서사적인 플루트의 연주, 그야말로 마술이다.


어제의 무대에는 파파제나 역에 우리나라의 소프라노 이혜지가, 여주인공에 해당하는 파미나 역에 조지아의 소프라노 살로메 지시아가, 밤의 여왕 역에 폴란드의 소프라노 알렉산드라 올직이 나왔다. 마술 피리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밤의 여왕이 파미나에게 칼을 쥐어 주며 부르는 노래다.


이 노래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들어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분은 첫번째 댓글의 링크를 클릭하면 된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유튜브에 올린 Diana Damrau의 3분짜리 무대 영상이다. 성격이 급하신 분은 40초부터 보면 된다. 소프라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기교가 바이올린과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않는가?


이 기교가 얼마나 어려운지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밤의 여왕 배역에게는 출연료 이외에 위험수당을 별도로 준다고 한다. 이 노래를 부르다가 성대 부상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밤의 여왕이 부르는 노래는 조수미의 무대를 포함하여 유튜브에서 여러 버전으로 찾아볼 수 있다.



어제 배우도 마찬가지지만 디아나 담라우의 무대를 보면, 이것은 소프라노가 마치 동시대 다른 소프라노와 겨루는 것이 아니라 모차르트와 겨루는 느낌을 준다. ‘제가 어때요? 제가 부족하지는 않나요? 제가 당신의 기대를 충족했나요?’ 디아나 담라우의 무대에서는 ‘어때요? 제가 이겼죠?’ 이런 카리스마도 느껴진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동시대와만 겨루는 것이 아니라 모차르트와 겨루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공연을 보고 우리 둘째는 그만두겠다는 바이올린을 다시 해보겠단다.


지난주에 막을 내린 리즈(Leeds) 피아노 콩쿠르에서는 카자흐스탄의 젊은 연주자가 우승했다. 그는 결승 무대에서 라흐마니노프가 변주한 파가니니 랩소디를 리버풀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기립 박수를 받았다. BBC를 통해 생중계된 그의 연주도 결승 무대를 밟은 다섯 명과 겨루는 연주가 아니고, 라흐마니노프 또는 파가니니와 대결하는 것 같았다.


음악을 ‘겨룬다’는 시각으로 보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라이더컵이 시작하는 날이라서 자꾸 스포츠 시각으로 음악을 보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현재 진행 중인 알렉산드라 올직, 유튜브에 있는 디아나 담라우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화려한 무대를 등에 업고 정말 멋지게 모차르트와 겨루고 있다.


모차르트가 살아 있다면, 오늘날 오페라 무대에 서는 소프라노의 기량을 어떻게 평가할까? 이럴  알았으면  어렵게 작곡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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