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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Dec 02. 2021

왕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무경험이 두렵다

London Life

왕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무경험이 두렵다

  

  

장면 하나,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


연애도 해 본 사람이 잘한다. 뭐든지 해본 사람이 잘하지, 안 해본 사람이 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 하물며 고기도 그런데 정치는 안 해본 사람이 잘할 수가 있을까? 안 해본 사람이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정치 혐오의 결과인데, 그 혐오의 결과는 끔찍할 확률이 높다.

  

  

장면 둘, 손학규의 맥락 없는 소리


손학규가 대통령제 폐지를 일성으로 대통령 후보에 출마했지만, 출마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잘 없다. 그는 왜 갑자기 대통령제 폐지를 들고 나왔는가? 페미니스트가 일단 마초가 되어 보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결혼 반대론자가 일단 결혼해 보겠다는 걸로 보인다.

  

  

장면 셋, 의원내각제를 하자는 것인가?


대통령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영국식 의원내각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역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그는 옥스퍼드 정치학 박사다. 영국의 총리는 대부분 옥스퍼드 출신이다. 그는 영국 정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겠지! 그는 왜 자신의 목소리가 언론의 주목을 받을 때, 의원내각제를 주장하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의원내각제라고?



장면 넷, 영국식 의원내각제에서 놀라운 것 하나, 쉐도우 캐비넷


영국식 의원내각제에서 가장 놀라운  중의 하나가 정권 교체 시점이다. 선거 결과가 나오면 바로 당일에 정권이 교체된다. 윈스턴 처칠은 포츠담 회담 중간에 선거 결과가 나와서 당일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회담 중에 회담장에서 클레멘트 애틀리와 바통을 터치했다. 총리만 당일 교체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정부부처 장관이 사실상 당일 교체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쉐도우 캐비넷shadow cabinet 존재하기 때문이다. 야당에는 언제라도 정권을 인수받을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예비내각이 있다. 집권당은 주요 정책을 논의할 , 야당의 예비내각과 정보를 공유한다. 매일 같이 상의하고, 매일 같이 싸운다.

  

  

장면 다섯, 놀라운 것 둘, 리셔플링reshuffling


영국의 장관은 특별히 전문분야가 따로 없을 정도로 이런저런 장관 자리를 돌아다닌다. 우리나라에서는 회전문 인사라고 비난받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부처의 장관을 해본 사람이 틀림없이 또 다른 부처의 장관도 잘한다. 총리가 되는 정치인은 총리 이전에 대여섯 개의 장관 자리를 경험한다. 장관 자리의 재배치를 리셔플링reshuffling이라고 한다. 카드 패를 섞듯이 내각의 자리를 섞어서 예비 리더가 두루두루 경험을 쌓도록 만든다. 이러한 리셔플링은 내각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쉐도우 내각에서도 일어난다. 그래서 주요 정치인들은 야당 시절부터 여러 부처의 일을 경험해보고 책임져본다. 마가렛 대처, 테레사 메이 등의 여성 정치인들도 총리가 되기 이전에 캐비닛 또는 쉐도우 캐비닛에서 대여섯 개의 부처를 관장해 보았다.

  

  

장면 여섯, 국정 경험


국가 행정을 책임진다는 것은 국회의원으로 국정을 감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하다못해 노태우 대통령도 두 번의 장관 경험이 있고,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평생 머릿속에 쉐도우 내각을 가지고 있었던 준비된 정치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록 변두리 부서인 해양수산부 장관을 했지만, 장관 시절의 경험은 그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장관을 해보지는 못했으나 서울시장을 하면서 충분한 행정경험을 쌓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행정 경험이 없었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비서실장은 해보았으나 부처를 총괄해 본 적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이 아니라 법무부 장관을 해봤다면 조국/윤석열 사태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언자가 아니라 특정 부처의 책임자 역할을 해보았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성공적으로 국정을 이끌었을 것이다.

   

  

장면 일곱, 경험 없이 대통령이 되다


한나라의 법무 행정을 총괄하는 것은 법률적 판단을 잘 내리는 대법원장보다는 열 배쯤 상위 레벨의 업무를 맡는 것이다. 그것은 검찰 총장으로 나쁜 놈들을 잘 잡아넣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일이다. 그래서 영국에서 법무장관은 우리나라에서 삼부요인으로 추앙(?) 받는 대법원장보다 열 배는 중요한 자리며, 검찰총장과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감히 야지를 놓거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행정 경험도 없고 권력 서열로 보이지도 않는 위치에 있는 검찰총장이 바로 대통령이나 총리가 될 수가 있는가? 그런 사례가 동서고금에 있는가?

  

  

장면 여덟, 왕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무경험이 두렵다


어떤 사람은 어느 후보가 손바닥에 쓴 왕자가 두렵다고 했다. 누구는 그의 권력욕이 두렵다고 했고, 누구는 무속이 신앙이 된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무경험이 두렵다. 그가 충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주변에 무속인이 있거나 그의 손바닥에 왕자가 있거나 그런 것은 전혀 비토veto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경험 있는 사람은 그러지도 않겠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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