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100년이 된 BBC가 삼프로TV에게 배워야 할 점
우리나라 대선에 관심이 없는 와이프가 드디어 대선 관련 유튜브를 봤다. 삼프로TV다. 나는 이재명 윤석열 편만 보았는데, 와이프는 안철수 심상정 편까지 보았다. 김건희도 잘 모르던 사람이 이제 웬만한 대선 이슈는 꿰고 있다. 그리고 지지후보를 정했으니 투표를 꼭 하자고 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한국의 주요 언론은 자신들이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있었다. 지금은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주요 언론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 틈을 각종 유튜브 방송과 SNS가 차지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나는 조선일보 사이트를 자주 방문했는데, 이제는 언론사 웹사이트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DAUM이 띄워주는 뉴스를 간혹 클릭하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점점 줄어든다. 유튜브 채널이 소개하는 뉴스나, 페친들이 링크하는 기사를 중심으로 본다.
제한된 포맷 속에 방송을 송출하는 공중파는 방송1.0이다. 그에 반해 형식과 내용에서 자유롭고 구독자와 긴밀히 소통하는 유튜브는 방송2.0을 넘어, 방송3.0을 향해 가고 있다. 지금은 방송2.5쯤 된다. 진화하지 않는 1.0이 나날이 진화하는 2.5를 이길 수는 없다.
공중파가 후보 간의 조율이 안되어 TV토론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삼프로TV는 자신들만의 포맷으로 기민하게 ‘삼대털(삼프로가 대선후보를 털다)’을 만들어 냈다. 이재명 후보 편만 6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대단하다는 말과 함께 박수를 쳐주지 않을 수 없다.
1920년에 영국에서 처음 라디오 방송이 공중 전파를 탔을 때, 청취자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이 크게 자극되는 점에 놀랐다. 지금의 유튜버들처럼 너도나도 공중파를 이용한 방송 송출을 원했다.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전파를 방송을 원하는 모두에게 배정할 수가 없었다. 전파 사용신청을 한 회사가 100개가 넘었기 때문이다.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영국 정부는 100개의 회사가 컨소시엄을 이뤄 공동으로 전파를 송출하도록 권장했다. 그렇게 British Broadcasting Company가 1922년에 탄생했다.
BBC는 세계 최초의 방송국이며, 세계 최대의 방송국이다. BBC는 일 년에 8조 원의 예산을 쓴다. 2조 원은 방송 콘텐츠를 전 세계에 팔아서, 6조 원은 가정당 25만 원의 시청료를 받아서 조달한다. 시청료는 준조세에 가까워서 BBC를 보든 보지 않든 TV만 있으면 시청료를 내야 한다.
이에 대한 불만은 대단히 높다. KSI나 PewDiePie 유튜브 채널은 빠짐없이 보는 아이들은 BBC를 시청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그렇다고 치자. 왜 미래 세대까지 보지도 않는 BBC에게 적지 않은 돈을 시청료로 내야 하는가? BBC가 그렇게 잘났다고 하면, 국민 세금에 의존하지 말고, 시장에 나가 광고로 살아남으라는 여론이 높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여론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BBC에 몸집을 줄일 것을 압박한다. 그러나 세계 최고이며 최대인 BBC는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여론과 총리에 전면으로 맞서고 있다. 자신들이 마음만 먹으면 정권을 바꾸지는 못해도 총리 정도는 바꿀 수 있다고 오만하게 생각하고 있다.
BBC는 항상 마가렛 대처에 적대적이었지만, 토니 블레어에는 우호적이었다. 좌파에 우호적이라는 비난을 늘 우파로부터 듣는다. 언제나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쪽이었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리버럴한 LGBT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BBC는 보리스 존슨 내각과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 급기야 BBC 진행자가 대담 중에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그만 입 다물어(Stop Talking)’라는 말까지 했다. 그 후 정부가 BBC에 가하는 압박의 강도가 높아졌다. 미디어를 담당하는 장관인 나딘 도리스(Nadine Dorries)는 BBC는 향후 10년 안에 사라질지도 모른다고도 말했다. 더 이상 같이 갈 수 없다고 판단한 BBC는 지난해 12월부터는 보리스 존슨 퇴진 캠페인에 가까운 방송을 매시간 쏟아 내고 있다. BBC의 정치적 편견을 접할 때면, 시대의 변화에 둔감한 엘리트 언론의 오만함을 본다.
대선후보를 검증하는 공중파 패널토론이나 관훈토론에 비해 삼프로TV가 좋았던 것은 삼프로가 보여주는 태도 때문이다. ‘삼대털’ 진행자 세명에게는 자신들이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후보에게 던지는 질문이 대선 판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인식이 없었다. 대선 후보의 도덕성을 국민을 대신해 평가해보겠다는 오만한 태도가 없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선후보의 생각을 자세히 들어보겠다는 생각뿐이었고, 그것은 잘 전달되었다. 그 점이 삼프로TV가 이번 대선 국면에서 역할을 하게 된 결정적 지점이다.
세상의 어떤 언론도 자신들이 세상을 좌지우지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영향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것은 BBC도 예외가 아닐 것이며, 세상을 좌지우지하겠다고 나서는 유튜버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대선후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만한 태도로 더할 수 있는 표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