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호주 정부가 조코비치에게 새로운 길을 선물했다
페더러와 나달은 테니스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스타였다. 그러나 영광스러웠던 그들의 기록은 세르비아라는 변방에서 온 노박 조코비치에 의해 지워졌다. 올해 호주 오픈에서 나달은 조코비치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드러냈지만, 테니스 기록에서 나달은 조코비치에 근접하지 못한다. 최다연승, 최고승률, 최고상금, 통산상금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랭킹 1위 기간에서 조코비치에 필적한 선수는 역사적으로 없다.
조코비치는 노박 슬램(그랜드 슬램 대회를 네 번 연속 우승)을 달성했고, 지난해에는 한 해에 모든 메이저 대회를 우승할 기회도 맞았다. 마지막 게임에서 좌절되었지만, 모든 것이 극적이었다. 테니스 선수 나이 34세에 만들어진 스토리가 놀랍다.
조코비치는 호주 오픈에서 통산 9번을 우승했다. 그가 호주 오픈에 강한 이유는 미스터리다. 전 세계 테니스 팬이 페더러와 나달로 양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코비치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늘 적대적인 환경에서 경기를 했다. 윔블던에서 페더러와 조코비치가 만나면, 관중의 95%는 페더러 편이었다. 관중이 ‘로저! 로저!’를 외치면, 그 소리가 조코비치에게는 ‘노박! 노박!’으로 들렸다고 한다. 조코비치는 모든 불리함을 강력한 멘털로 극복했지만, 그에게 왜 스트레스가 없었겠는가? 호주에는 세르비아 사람들이 많이 살기에, 호주 오픈이 조코비치에게 상대적으로 편했을 것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통제 정책을 펼친 나라가 호주다. 호주는 코로나가 심할 때는 자국민의 입국도 막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강력한 통제로 감염률과 사망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었으나, 국민의 스트레스는 차곡차곡 쌓였을 것이다.
조코비치가 비자를 받고 호주에 왔을 때, 국경에서 문제가 되었고, 비자는 취소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국 언론은 조코비치의 거짓말과 백신에 대한 조코비치의 태도에 비판적이었다. 조코비치는 법원에 호소했고, 법원은 비자 취소가 부당하다고 조코비치의 손을 들어주었다. 조코비치의 어머니는 ‘이것을 조코비치 경력에서 가장 큰 승리다’라고 말했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저 집은 어머니의 말이 항상 문제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말의 의미를 캐치하지 못했다.
호주 당국은 금요일에 직권으로 조코비치의 비자를 다시 취소했다. 금요일에 비자 취소를 결정한 것은 법원이 토요일과 일요일에 일하지 않기 때문에 조코비치의 방어권을 사실상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치사한 조치는 영국 언론을 호주 당국 편에서 조코비치 편으로 급선회하게 만들었다.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했고, 개인의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잔꾀를 부렸기 때문이다.
호주 당국의 생각과 달리 법원은 주말에 심리를 진행했다. 1차 다툼의 핵심은 조코비치의 거짓말, 서류작성의 오류, 호주 당국의 절차적 정당성에 관한 것이었다. 2차 법적 다툼의 쟁점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호주 당국은 ‘조코비치가 호주에 있는 것이 호주인의 공중 보건과 호주의 사회적 안정에 해가 되기 때문에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비자 취소가 필요했다’라고 주장했다. 주권을 행사했다는 말이다. 호주의 여론은 압도적으로 조코비치의 비자 취소를 지지했다. 그리고 호주는 호주오픈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선거 국면에 들어선다.
호주 당국은 조코비치의 안티 백서 발언이 호주의 안티 백서 운동을 강화시키고, 나아가 공공 이익에 큰 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전 세계의 롤모델이 되었던 호주의 방역 모델이 조롱을 당하게 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뭐라고? 전 세계 방역의 롤모델? A-방역? 그런 게 있었어? 영국은 A-방역은 모델로 생각도 하지 않으며, 우리나라도 호주 모델을 심각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조코비치 변호사는 조코비치가 백신에 대한 거부 의사를 나타낸 것은 백신이 나오기도 전의 일이며, 조코비치가 다른 사람에게 백신을 맞지 말라고 하거나 안티 백서를 지지한 발언을 한 적이 없으며, 그는 두 차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고, 항체가 있기에 백신을 맞을 이유가 없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조코비치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조코비치는 호주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국내 정치와 국제 외교를 생각했을 것이다.
윔블던 표를 구하기 위해서 윔블던 파크에서 야영을 하는 테니스 팬으로서 이번 사태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조코비치가 멜버른의 법정 코트에서 승리한 후에 테니스 코트에 섰다면, 모든 게임이 엄청난 이벤트였을 것이고, 조코비치는 상대 선수뿐 아니라 관중과도 사활을 건 승부를 벌였을 것이다. 이 장면 하나하나가 다시 볼 수 없는 역사적 관경으로 남았을 것이다. 엔디 머레이는 이번 사태로 테니스가 죽었다고 말했지만, 조코비치가 경기를 했다면, 테니스는 죽지 않고, 전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었을 것이다
조코비치와 호주 정부의 법적인 다툼은 세계의 관심을 일주일 내내 끌었다. 전 세계 테니스 팬은 물론이고, 안티 백서들, 반 안티 백서들, 세르비아 나라 전체,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세르비아인 모두가 조코비치를 주시했다.
결국은 1승 1패였지면, 호주 정부는 뜻을 이뤘고 최종적으로 이겼다고 생각할 것이다. 호주 정부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선거에서의 무운을 빈다. 그러나 이번 싸움의 진정한 승자는 조코비치다. 글로벌 스타가 안티 백서 운동을 벌여, 다수의 스포츠팬으로부터 비난을 감수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따라서 조코비치는 안티 백서라기보다는 백신을 신뢰하지 않는 스포츠 선수일 뿐이다. 그런 그가 안티 백서처럼 보인 이 사태에서 ‘어떻게 진정한 승자일 수가 있을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조코비치는 테니스에서 달성해야 할 목표가 별로 없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메이저 대회에서 1승을 추가하는 것이다. 더 욕심이 있다고 해도 올해로 35세다. 더 얼마나 이룰 수 있을까?
은퇴한 테니스 선수들은 무엇을 하며 지내는가? 보리스 베커, 피트 샘프라스, 안드레 아가시 등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10년 후에 페더러와 나달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테니스 중계에서 해설하고 있는 페더러를 상상할 수 있고, 유니세프 홍보 대사를 하거나 데이비스컵 감독을 맡은 나달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조코비치는 무엇을 하게 될까?
3년 전에 세르비아에 출장을 갔었다. 밖에서와는 달리 세르비아 안에서는 조코비치가 테슬라에게 조금 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공항 이름부터가 테슬라였고, 돈도 테슬라였다. 그래도 테슬라는 고인이고, 조코비치는 살아있다. 이번 호주 정부와 조코비치의 다툼을 통해서 세르비아는 더욱 조코비치의 나라가 되었다. 이제 ‘조코비치는 세르비아고, 세르비아는 조코비치다.’ 그래서 파키아오가 필리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훨씬 높은 확률로 조코비치는 세르비아의 대통령이 된다. 이것이 바로 조코비치 어머니가 법정 싸움 1라운드를 마치고, ‘이번 승리는 조코비치 인생에서 가장 큰 승리다’라고 말한 이유다.
술만 들어가면, ‘남자가 말이야!’를 외치는 슬라브 사회에서 남자가 백신을 맞지 않은 것은 어떠한 문제도 되지 않는다. 조코비치가 대통령이 되어 파리와 런던을 방문한다면, 누구도 세르비아 대통령을 듣보잡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동유럽 및 구 소련 지역의 영원한 지배자인 러시아와의 관계를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구소련 지역의 스포츠팬은 마랏 사핀 이후에 마땅히 응원할 테니스 선수가 없었고, 15년 넘게 한 마음으로 슬라브 형제인 조코비치를 응원해 왔다. 푸틴 대통령은 조코비치 만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다. 조코비치와 만나는 자리에서 남자다움으로 조코비치에 밀리지 않으려고 신경 쓸 것이다.
언제나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그랜드 슬램 대회의 21번째 우승컵과 대통령 당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면 조코비치는 두 번째를 선택할 것이다. 조코비치는 이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이란 것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테니스를 은퇴하며, 어떻게 명예롭게 정치의 길로 갈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다. 이번 법정 다툼에서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했던 것처럼, 좋은 컨설턴트를 고용해야 할 것이다. 조금 비싸지만, 조코비치의 재력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컨설턴트로 토니 블레어를 추천해 본다. 토니 블레어는 조코비치가 미국과 러시아의 사이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중재하도록 조언할 수도 있다.
영국인은 테니스 선수로 조코비치를 싫어했지만, 정치인 조코비치는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조코비치처럼 미디어를 다뤄본 경험이 많고, 국제적 경험이 풍부하며, 국제적으로 통하는 유머 감각을 가진 지도자는 세르비아 뿐 아니라 구 공산지역 전체를 통틀어 지금까지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