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공, 러시아 그리고 카자흐스탄

London Life

by 유우리

멸공, 러시아 그리고 카자흐스탄

멸공이 화제다. ‘공산주의를 멸하자’는 구호를 둘러싼 왈가왈부가 SNS를 뒤덮고 있는 가운데, 이미 멸공된 나라는 안팎으로 뒤숭숭하다.


공산주의는 경제 시스템이지만, ‘공산주의를 멸하자’라고 했을 때의 공산주의는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함께 지칭한다. 우리 사회의 절대다수가 공산주의에 반대하며,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한다. 나도 그렇지만, 갑자기 멸치를 사는 모습을 SNS에 인증하거나 여전히 멸공이 중요하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자유민주주의는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것이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실질은 마그나 카르타(1215년)가 서명된 이후에 800년이 넘게 별의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만들어졌다. 불가침의 자유를 누리는 개인이 그들의 집합체인 국가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형식상으로는 왕이 나라의 주인이다. 성문 헌법이 없고, 권력자인 총리의 임기가 법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영국식 자유민주주의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형식을 헌법에 엄격하게 정의했다. 800년의 세월을 감당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에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자유민주주의에 도달하려고 했다.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는 미국에 의해 형식적으로 재정의된 것이다. 형식적 자유민주주의 요소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권력자의 임기 제한이다. 임기의 제한과 민주주의는 서로 상충하는 면이 있다. 국민의 절대 신임을 얻는 지도자가 임기에 의해 물러나고, 이상한 사람이 낮은 지지율로도 운 좋게 대통령으로 뽑히는 것이 민주주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러시아로 눈을 돌려 보자. 황제가 있던 시절 임기가 없었다. 혁명이 일어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인 소련이 등장했다. 소련은 민중이 주인인 나라라고 타이틀을 걸었지만, 실질적으로 얼마나 민중민주였는지는 알 수 없었고, 지도자의 임기도 따로 없었다. 레닌과 스탈린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도자는 종신 지도자였다. 소련이 망하고 러시아가 출범했지만, 제한된 임기를 지켰던 지도자는 옐친뿐이다. 옐친이 임기를 지킨 것도 수입한 민주주의 제도 때문이 아니라 러시아 고유의 보드카 덕분이었다.



푸틴도 집권 초기에는 임기제가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메드베데프 총리와 대통령 자리를 주고 주고받으며 권력을 유지했다. 영국식 민주주의가 미국으로 건너가 제도화되었다면, 미국식 민주주의가 러시아로 넘어가 탱자가 되었다. 푸틴과 메드베데프의 권력 교대는 인류 역사에서 전례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메드베데프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고, 권력욕에 사로 잡히지 않았다. 푸틴은 그러한 과도기를 거쳐 이제는 형식을 버리고, 종신 대통령의 길을 열었다. 비로소 러시아 지도자다운 면모를 나타낸 것이다. 이것은 칭찬도 빈정거림도 아닌 팩트 그대로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의 구소련 국가가 형식적 민주주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국민의 지지가 75%인 푸틴이나 나자르바예프가 대통령을 계속하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40%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이 짧은 집권기에 40% 미만의 지지로 대통령직을 이어가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만일 국민의 지지 75%라는 것이 의심 없이 확인될 수 있다면, 전자가 실질적 민주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75% 지지가 어떻게 확인되는가? 지지가 유지되기 위해서 경쟁자가 누명을 쓰고 사라지고, 언론이 심하게 탄압을 받고, 선거에 불법이 의심된다면, 국민의 지지는 어떠한 방법으로 확인될 수가 있는가? 인류 역사는 그게 확인될 수 없음을 증언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역사 상 단 한 번도 임기제 지도자가 없었다. 소련 이전에도 소련 시기에도 소련 이후에도 그렇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부터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렸다. 카자흐스탄은 소련에서 독립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정치적 안정을 누렸고, 경제적 풍요를 누렸기에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에게 공이 있다. 고령의 대통령은 3년 전인 2019년에 측근 중에 가장 권력욕이 없어 보이는 토카예프를 대통령으로 앉히고, 자신은 ‘엘바스(국가 지도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현업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의 가족과 측근은 여전히 권력의 핵심부에서 주요 결정을 맡았다. 측근이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은 것이 카자흐스탄 정치와 경제계 엘리트 대부분은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에 우호적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두 측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델을 푸틴 대통령은 이상적인 권력 교체 모델이라고 추켜 세웠고, 카자흐스탄의 안정을 바라는 외국인도 다수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카자흐스탄에 2022년 새해에 민생 경제에 불만을 품은 시위가 발생했다. 많은 시위대는 ‘늙은이 물러나라!’라고, 형식적으로 퇴진한 나자르바예프가 실질적으로 퇴진할 것을 요구했다. 시위라는 해방공간을 틈타 일부 시위대는 은행이나 슈퍼를 약탈했고, 이는 권력자가 강력 진압을 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다. 민심이 폭발하면 누구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누가 의도를 가지고 시위를 조직하고 유도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발발한 시위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으로 끌고 가려는 세력은 여럿 있을 수 있다. 그들이 불량배들일 수도 있고, 극단주의자일 수도 있고, 정치권력을 노린 세력일 수도 있다.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현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가족과 최측근을 권력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이러한 결정을 전임 대통령이 어쩔 수 없이 재가했는지, 반대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 군대를 불렀다는 점에서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결정을 전임 대통령이 흔쾌히 받아들인 것 같지는 않다. 만일 전임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였다면, 카자흐스탄에 러시아 군대가 필요했을 것 같지는 않다.



모든 분야의 엘리트는 가까우냐 조금 머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두 전임 대통령의 측근이다. 때문에 전임 대통령의 명시적 반대가 있다면, 현대통령의 권력 장악은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어느 국면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의 권력 교체 모델이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외국인으로서 우리는 카자흐스탄이 미국식 민주주의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냐에는 관심이 덜하다. 영국식 민주주의를 할 수도 있고, 러시아식 민주주의를 할 수도 있으며, 1970년대 한국식 민주주의를 할 수도 있다. 임기는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고, 그들의 삶에서 언론의 자유가 중요도에서 밀릴 수도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우호국가인 카자흐스탄의 정치적 안정이다.


그러나 이 안정에는 큰 해법이 없고 오로지 도박만이 존재한다. 토카예프 현대통령이 권력을 온전히 장악했다는 자신이 없다면, 러시아 군대는 철수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 군대는 불러오기는 쉽지만 나가게 하기는 어렵다’는 미국의 발언은 러시아를 비난하고자 함이나, 그 안에 상당한 진실이 담겨 있다. 그것은 러시아가 원래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러시아 군대가 나간 후의 권력 공백에 대한 자신이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군대가 철수하지 않는다면, 토카예프 대통령의 정통성은 침해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시위 구호가 ‘늙은이 물러나라’였다면 어렵기는 해도 해답이 있지만, 그 구호가 ‘러시아 군대 물러나라! 토카예프 물러나라’라고 번진다면 해답이 없어진다. 극단주의자가 시위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시위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는 현대통령에게 두고두고 큰 짐이 될 것이다. 현대통령은 빠르게 수습하고 빠르게 러시아 군을 철수시키는 도박을 감행해야 한다.


러시아와 미국에게는 우크라니아 사태와 카자흐스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 없다. 멸공은 오히려 쉽다. 멸공 후는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멸공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질서 있는 미래, 희망 있는 미래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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