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아름다운 나라의 다차원적 갈등, 쉽지 않은 실타래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오히려 쉬운 문제다. 서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까 걱정한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할 수 없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러시아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한 나라, 한 형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혈로 통합할 수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우크라이나가 결사적으로 항전한다면, 러시아인들 누구도 그런 피를 바라지 않는다. 동족상잔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인은 우크라이나인과 벨라루스인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며, 같은 문화 속에 살고, 같은 종교를 믿는다.
중앙아시아는 러시아에게 훨씬 복잡한 문제다. 그 문제의 다차원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늘 이곳에서 사단이 났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이 실패한 것도 그런 연유이다. 소련은 1991년에 붕괴했지만, 그 붕괴는 이미 오래전에 카자흐스탄에서 시작되었다.
고르바쵸프는 1986년 12월 어느 추운 날에 카자흐스탄 공산당 일서기인 쿠나예프를 경질하고, 카자흐스탄 땅을 밟아 본 적이 없는 콜빈을 임명했다. 이에 수백 명의 대학생이 광장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전체주의 소련에서 반정부 시위는 상상할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자, 시위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KGB는 데모의 주동자를 광장 기둥에 묶은 후에 물을 뿌려 영하 30도에서 얼어 죽게 했다. 소련 공산주의의 잔학성에 민심은 폭발했다. 이는 독재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이었고,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종교적 성격도 가졌지만, 가장 강력했던 것은 러시아에 대항하는 카자흐 민족주의 운동이었다. 이후 소련 전역에서 70년간 억눌려 왔던 소수 민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고르바초프는 이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2022년 새해 벽두에 카자흐스탄 정부가 LPG에 대한 가격 제한을 풀었다. 가격이 두배로 올랐고, 이에 항의하는 평화적 시위가 카자흐스탄 서부 지역에서 발생했다. 시위는 놀랍도록 빠르게 전국적으로 퍼졌고, 최대 도시인 알마티에서 과격성이 절정에 달했다. 알마티 시청과 검찰청이 불탔고, 진압대와 시위대의 충돌로 지금까지 경찰 18명이 사망하고 500명이 넘게 부상을 입었다. 시위대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입원 상태의 중상자만 수백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에 토카예프 대통령이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과 아르메니아가 가입된 공동안보조약기구(CSTO)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요청했다. 형식상 공동안보조약에 군대를 요청한 것이지만, 사실상 러시아에 요청한 것이다. 이 뉴스는 카자흐스탄에 12년 이상 거주하며 전문가를 자청했던 한 런던너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러시아 군대가 왜 카자흐스탄에 필요할까?
카자흐스탄은 허접한 나라가 아니다. 1991년 독립 이후 지금까지 구소련 국가 중에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되었던 나라였다.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한국으로부터 군함을 도입할 정도로 해군력까지 가지고 있는 중앙아시아 최대 국가다. 유가가 150불을 돌파할 때는 카자흐스탄 일인당 GDP가 우리나라 수준에 근접하기도 했다.
카자흐 대통령이 러시아 군대를 원했다면, 그 가능성은 두 가지다. 첫째는 러시아가 먼저 원했을 가능성이다. 둘째는 카자흐 군대가 이미 대통령 말을 듣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다.
첫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면,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푸틴은 고르바초프와 달리 민족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다. 푸틴은 러시아 국경 지역의 안정을 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문제만으로 고민은 넘친다. 카자흐스탄을 러시아에 병합할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카자흐스탄 내부 문제에 러시아 군대를 파병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 혹시라도 러시아 군대와 카자흐 시위대 간의 유혈사태가 벌어진다면, 실타래는 완전 미궁으로 빠진다.
두번째 가능성으로 군대가 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는 단계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다. 시위 진압부대 일부가 시위대에 투항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시위대의 배후로 지목되는 인물이 KNB(KGB의 후신) 1차장인 사맛 아비쉬이기 때문이다. 사맛 아비쉬는 전임 대통령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의 조카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을 따르는 세력이 여전히 많은 가운데, 그의 가족이 연루되었기 때문에 카자흐스탄 군대의 충성심에 의문이 있을 수 있다.
평화적인 시위가 갑작스럽게 전국적인 폭력시위로 번진 배경에는 와하비스트(Wahhabist, 러시아어로는 바하비스트ваххабисты)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광주 민주화 항쟁 때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어 조심스럽지만, 외신이나 한국에서 언급되지 않고 있어 소개해 본다. 와하비즘은 수니파 이슬람에서 나타난 이슬람 극단주의를 말한다. 구소련 지역에서 바하비즘(Ваххабисм)은 이슬람 극단주의를 대표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사맛 아비쉬가 후원하는 바하비스트가 얼마나 극단적인지, 얼마나 카자흐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번 시위는 2008년 유가 급락 이후부터 지속된 장기 경제난에 신음하는 서민의 몸부림으로 출발했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시위가 촉발되면, 시위는 반드시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강경 진압이 시작되고 진압부대와 러시아군에 대한 민심이 이탈하면, 언제든지 이슬람 극단주의와 카자흐 민족주의가 시위의 핵으로 부상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진압에 신중해야 하는데, 권위주의 정부가 잘하지 못하는 것이 시위대와의 타협이다.
이 시위가 종교적 색채를 띄게 된다면, 사맛 아비쉬의 삼촌이며 전임 대통령이고 여전한 실권자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와 그의 충실한 후계자인 토카예프, 그리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금보다 훨씬 깊은 늪에 빠진다. 러시아 군이 개입하여 카자흐 민족주의가 발흥하면, 카자흐 민족주의와 와하비즘의 결합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가 없다. 그 점이 푸틴이 러시아 군대의 파병을 원하지 않았던 이유일 것이다.
소수에만 편중된 부와 서민의 경제난, 권위주의 정부와 민주적 요구, 와하비즘의 발흥, 그리고 카자흐 민족주의라는 다차원적인 실타래를 토카예프 대통령이 풀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의 야당이나 종교 지도자 누구도 이 문제를 토카예프 현 대통령보다 잘 풀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데에 있다. 카자흐스탄의 유력 야당 지도자는 런던에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외국에 있는 야당 세력과 시위대의 연락을 막을 목적으로 인터넷과 통신을 전면 차단했다. 덕분에 꽤나 디지털화되어 있는 카자흐스탄 경제는 거의 올스톱 상태다. 인터넷과 통신의 중단은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더 불안하게 만든다.
중국이 비트코인 마이닝을 금지한 이후 많은 중국 마이너들이 카자흐스탄으로 넘어왔다. 비트코인 마이닝 해쉬레이트 중에 카자흐스탄 비중은 18%로 미국에 이어 2위다. 인터넷 차단으로 비트코인 해쉬레이트가 큰 영향을 받았다. 세계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디지털 네트워크는 복잡해도 잘 연결되어 있고, 원하는 곳을 쉽게 찾아가 문제를 풀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현실의 실타래는 한번 복잡하게 얽히면 풀기가 참 어렵다. 더군다나 실타래가 한 겹이 아니라 여러 겹일 때는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