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베이징 올림픽을 보는 시선, 시선 위에 겹치는 답답한 마음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서구 세계의 외면 속에 시작되었다. 스포츠라면 사족을 못쓰는 영국의 언론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타임스, 텔레그래프, 가디언, BBC를 비롯한 모든 언론 홈페이지 일면에는 올림픽 개막 소식이 없다. 스포츠 섹션을 클릭하고 들어가면 FA컵 32강 경기가 메인으로 걸려있다. 그만큼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가 없는 날이었다. 스포츠면 하단 어딘가를 잘 뒤져보면 개막식 기사를 찾을 수 있다.
쓸데없이 호화스럽고 인간미가 없다. 논쟁으로 가득한 올림픽이다. 위선적이며 작위적이다. 겁쟁이 IOC 위원장은 뭐하는 것인가? 전례 없이 굳건한 동맹을 선언한 푸틴도 졸고 있다. 대충 이런 뉘앙스다.
개막식을 모두 본 것이 아니기에 온전히 평가할 수는 없다. 하이라이트로 본 개막식에는 첨단의 볼거리가 있었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인간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3만 명이 카드섹션을 하거나 집단 체조를 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모여 손을 흔들고 노래하는 모습에서도 왠지 모르게 집단 체조 같은 느낌을 풍겼다. 물론 이건 선입견과 편견일 수도 있다. 장예모 감독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바보야! 문제는 테크널로지가 아니잖아?
외교적 보이콧이 생각보다는 영향력이 컸다. 푸틴과 시진핑의 만남은 올림픽을 더욱 인간미 없이 만들어 버렸다. 푸틴과 시진핑의 표정은 텅 빈 거리, 한산한 경기장, 엄격한 격리와 묘하게 어울렸다. 중국 정부는 운동선수가 길을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도 시민들에게 도와주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올림픽 선수와 진행요원만으로 구성된 버블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한다. 이것이 실제인지, 영국 언론의 과장인지는 알 수 없다. 만일 사실이라면, 개막식을 보며 ‘사람이 없고 인간미가 없다’라고 느낀 것이 편견이 아닐 수도 있다. 교통사고로 피를 철철 흘리는데, 코로나 버블이 깨진다고 개입하지 말라고?
카톡 단톡방에 300명가량이 있다. 이 방에서 논쟁이 크게 발생한 적이 있었다. 방장이 ‘가족 간에도 의견 차이가 있는 법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으니 존중해 주자’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랬더니 한 중국인이 ‘나에게는 가족보다 국가가 중요하다’라고 주장하여 많은 사람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트럼프의 미국 우월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단톡방에서 ‘가족보다 국가가 중요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트럼프랑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인이 가장 중요하고, 다음으로 가족이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 공동체가 중요하고, 국가는 가장 늦게 중요하다’는 것이 미국인의 생각이 아닐까 싶다. 영국인의 생각은 이렇다. ‘개인이 가장 중요하고, 가족이 다음으로 중요하며, 그 다음에 공동체가 중요하지만, 국가? 그게 뭐지?’
개인을 가장 중시하는 사회와 전체를 중시하는 사회는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 갈등이 파국으로 간 사례를 멀지 않은 과거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그것에 좀 기대를 해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올림픽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여기나 저기나 역사로부터 배운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