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여자 축구에 관하여
1. ‘미국의 외교관이자 역사학자였던 조지 케넌이 여자는 너무 정직해서(honest), 국제정치 이슈에 대해 발언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지만, 그것에 동의할 수 없다’라고 미국의 어느 여성 국제정치학자가 말했다. 나는 이렇게 물었다. ‘너무 정직하면, 오히려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이러했다. ‘너무 honest 해서가 아니고 너무 earnest(진지해서).’
2. 케넌이 말한 뒷부분은 틀린 것 같다. 서구의 많은 여성 리더, 여성 국무장관과 외무장관이 국제관계를 잘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독일의 리더가 아니고 러시아의 리더가 여성이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케넌이 말한 앞부분은 맞는 것 같다. 너무 진지하다는 것도 맞고, 잘못 들은 너무 정직하다는 것도 맞는 것 같다. 어제 여자 축구 경기를 보면서도 마찬가지 생각이 들었다.
3. 여자 축구를 잘 보지는 않는데, 막내가 자기 친구들이 다 본다면서 같이 보자고 했다. 유로 2022 준결승전 잉글랜드와 스웨덴의 경기였다. 주요 길목에서 잉글랜드의 발목을 번번이 잡았던 나라가 스웨덴이다.
4. 3만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고, BBC 여성 캐스터와 해설자의 코멘트 수준이 상당히 높아서 축구 경기에 푹 빠져들 수 있었다.
5. 선수들의 피지컬, 활동량, 개인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11명의 웨인 루니 같았고, 스웨덴 선수들은 11명의 이브라히모비치 같았다. 더욱 인상적인 것인 선수들의 태도였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쓸데없이 넘어져 있는 선수 없었고, 할리우드 액션이 없었고, 자기 맞고 나갔는데도 자기 공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없었다. 너무 정직했다. 아니 너무 진지한 경기였다.
6. 경기는 대등했지만, 스코어는 일방적으로 흘렀다. 막내가 너무나 좋아하게도 경기는 3:0이 되었지만, 침대 축구 없었고 쓸데없는 시간 끌기 없었다. 4:0이 되었고 10분도 채 남지 않았지만, 잉글랜드는 5:0을 만들기 위해 뛰었고, 스웨덴은 4:1을 만들기 위해 뛰었다. 축구의 품격이 살아 넘치는 경기였다.
7. 나머지 준결승은 독일과 프랑스다. 이 경기에도 어떠한 품격이 살아 넘치는지 봐야겠다. 결승전이 잉글랜드:독일이 되어도, 잉글랜드:프랑스가 되어도 모두 재미있을 것 같다. 왠지 독일은 11명의 클린스만 같을 것 같고, 프랑스는 11명의 지단일 것 같다. 축구를 대하는 자세가 역시 진지할 것 같다.
8. 나도 한 명의 여자 축구 선수를 안다. 국가대표급은 아니고 맨체스터 시티 20세 이하 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다. 맨체스터 시티 여자팀의 벤치까지도 작년에 앉아 보았다. 그녀는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 보조까지 받으며 이번 9월부터 미국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축구를 하면서도 A레벨을 수학, 경제학, 운동을 했다. 예상되는 점수는 A, A*, A*라고 하니 운동과 함께 공부도 정말 열심히 잘했다. 영국의 A레벨 과정은 아주 심도 있는 과정이다. 큰 아이의 경우에 수학, 심화수학, 생물, 화학을 A레벨에서 공부했는데, 존스 홉킨스에서는 A레벨에서 공부한 모든 과목을 그대로 학점으로 인정해 주었다. 무려 16학점을 인정 받고 대학 첫 학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9. 잠시 아들 자랑으로 넘어갔는데, 다시 돌아와 말하면, 내가 아는 그녀는 축구를 무척 진지하게 하는데, 공부도 그러한 모양이다. 그녀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의 여자 축구 리그에서도 잘 활약하기를 기대한다.
10. 탑 레벨의 여자 축구 선수의 연봉이 50만 파운드 정도라고 한다. 많다면 많은 금액이지만, 잉글랜드와 스웨덴의 축구를 보면서 남녀 축구 선수의 연봉 차이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11. 조지 케넌이 어제 축구를 봤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듯하다. ‘여자들은 축구를 너무 품격 있게(decent) 해서, 축구를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