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대통령님! 거기에 토마스 모어가 있었어요.
대통령님 웨스터민스터 홀에 가셨어야죠? 그곳의 의미를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던가요? 그 많은 영국 전문가들은 무슨 말을 해주던가요?
여왕이 누워있는 그 웨스터민스터 홀이 뭐냐면요. 그게 장례식이 진행되는 교회인 웨스터민스터 애비가 아니고요. 그게 국회의사당입니다. 그게 그냥 국회의사당 웨스터민스터 홀이 아니고요. 그게 민주주의의 상징, 법률적 지배의 상징 웨스터민스터입니다.
여왕이 누워있는 바로 밑바닥에 동으로 된 표식이 몇 개 보이죠? 그중에 한 곳에 쓰여 있는 것이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가 사형 언도를 받은 장소라는 표식입니다.
1500년대 초반 최고의 법률가였던 토마스 모어는 헨리 7세와 헨리 8세의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유럽에서 루터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종교개혁을 논리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로 인해 가톨릭 세력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습니다.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검찰개혁을 온몸으로 저지한 대통령님의 결기를(?) 연상시킵니다. 이 시대의 법률가인 대통령님도 당대의 토마스 모어에 비유되는 법률가 아니십니까?
헨리 8세가 이혼과 재혼 그리고 후세 지정과 관련하여 가톨릭 세력과 갈등을 빚자 토마스 모어는 왕의 편을 들지 않고 침묵합니다. 이에 실망한 왕이 그를 감옥에 가두고 반역죄라고 말합니다. 그는 ‘반역은 행동과 말로 이뤄지는 것이지 침묵으로 이뤄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전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이 검찰에 대해 탄압을(?) 가할 때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대통령님이 보이셨던 침묵도 그걸 연상시키지 않았습니까?
헨리 8세와 토마스 모어는 엄청난 법정 다툼을 벌입니다. 토마스 모어는 자신의 종교적 자유는 영국 정신이 시작된 마그나 카르타에서부터 보장된 자유임을 주장하며, 헨리 8세 측을 법정에서 압도합니다. 결국 헨리 8세는 위증자를 데려와서 위증을 시키고 재판을 이깁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토마스 모어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집니다.
토마스 모어는 이 자리에서 재판은 이렇게 끝나고 당신들은 나를 정죄했지만 나중에 하늘에서 다시 만나 영원한 구원을 함께하자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그대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누워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가셨어야죠. 그래야 법의 지배가 무엇인지? 재판이란 무엇인지? 위증이란 무엇인지? 검찰 개혁이 무엇인지? 왕이란 무엇인지? 구원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지요.
웨스터민스터 애비에서 여왕 장례식이 완료되면 바로 옆 건물이니까, 그 홀에 토마스 모어라는 당대의 지식인, 당대의 법률가가 소신을 지켰던 그 자리에 가서 서 보세요. 그리고 아주 가까우니까 거기서 템즈강을 따라 조금만 가시면 한국전 참전용사비가 있으니 거길 꼭 가보세요. 만일 교통 통제로 조금이라도 걸어가는 것이 어려우면 차 타고 가실 수 있는 곳은 스코틀랜드에 한국전 참전 용사비가 있으니 멀더라도 다녀오세요.
이게 어떻게 대통령님의 잘못이겠습니까? 어떻게 법률가 대통령 윤석열에게 토마스 모어 이야기를 안 해주는 담당자가 있습니까? 지금 우리나라에 유엔 총회보다 더 중요한 것이 토마스 모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우리나라 집권세력에게 없는 역사의식이 생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