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우리 Sep 20. 2022

좋은 기회를 놓친 조문 외교, 다음에 잘하면 된다.

London Life

좋은 기회를 놓친 조문 외교, 다음에 잘하면 된다.

 


대통령이 런던에 오셨다가 뉴욕에 가셨다. 대통령 조문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말이 있고, 나도 거기에 숟가락을 얹어 이러쿵저러쿵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관심이 런던에 쏠리는 일이 흔한 일이 아니므로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심정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경솔하게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니까, 영국]의 저자이며,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의 저자로서 마지막으로 간단한 코멘트를 하고 이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아야겠다. 오늘만 지나면 사람들이 피로해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 탁현민 연출 중의 최고는 광복절에 광복군 출신 할머니가 석별의 정 리듬에 맞춰 애국가를 부른 것이다. 그 석별의 정은 다름 아닌 스코틀랜드의 민요다. 아주 뛰어난 기획이었고 감동을 주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여왕 조문에서 감동적인 메시지도, 사진도, 쇼도 보여주지 못했다. 꼭 뭔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데 그것을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일 수도 있다. 한국전 참전 용사에게 엘리베이터에서 고개 숙여 인사한 장면은 좋았다. 행사 연출력은 부족했으나 대통령의 진심은 읽혔다.


영국 군사력이 세계 최고 수준과는 거리가 있겠으나 군인 한 명 한 명의 전투력에 대해서 영국군은 대단한 자부심이 있고,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한다. 가장 잘 교육받은 군인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군인도 영국에서 교육시키고 있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서는 수많은 징집병이 준비 없이 출전해야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죄의식이 영국 정부에게 있다. 처칠에게 그런 죄의식이 컸다.


영국군이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에 나가서 1천 명 이상의 인명 손실을 입은 것은 한국전쟁이 유일하다. 그때는 이미 최고로 훈련받은 영국군 정예 인력이 전투에 참여했고, 많은 인명 손실을 입었다. 영국군은 미국의 간청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전쟁은 영국군에게 그 어느 전쟁 못지않게 중요하고, 한국은 영국에게 생각보다 특별하다. 한국전 참전비가 시내 한복판에 좋은 위치에 있는 이유이며 스코틀랜드 저 시골 구석에도 한국전 참전비가 있는 이유다.



대통령이 참전 용사에게 훈장을 주고 선물을 주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잘하셨다.


여기서 탁현민적 쇼라는 요소를 가미해 보면 이렇다. 쇼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쇼는 사람을 위로하는 행위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 영국군이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분을 한 명 같이 모시고 왔어야 한다. 대통령이 웨스터민스터 홀 조문을 패싱한 그 자리에 같이 섰어야 한다. 대통령과 영부인 사이에 그분, 아마 지금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되어 있을 그분이 같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분과 함께 세 명이서 여왕을 2분간 대면하고 고개를 숙이고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 정상의 조문은 영국과 전 세계에 대서특필되었을 것이며, 영국 여왕이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미지가 전 세계에 퍼졌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왕이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고 말했으나, 그 정점에 한국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은 간과한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의전 관계자는 말할 것이다. 의전도 모르는 사람이 이상한 소리 한다고. 의전 원칙이 대통령과 동반자 한 명뿐이라고. 바이든 대통령은 세 명이 조문했다. 그러면 말할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예외가 인정된다고, 우크라이나 영부인은 네 명이 조문했다. 추정컨데, 대사와 대사 부인이 같이했던 것 같고, 나머지 젊은 남성은 누군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네 명이었다. 그러면 말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므로 특별 대접을 받는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모르는 것이 있다. 한국전쟁은 영국이라는 나라에 매우 특별한 사건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여왕이 파병한 군인 덕에 살았던 어느 한국 사람이 한국 대통령 내외와 영국 여왕에게 감사의 작별인사를 한다고 했을 때, 안된다고 말할 사람은 영국 왕실과 영국 의회에는 없다. 장벽은 아이디어가 없는 것이지, 상대국의 의전 프로토콜이 아니다.


물론 이것은 다 지나보고하는 말이다. 웨스터민스터 홀의 조문 형태가 그런 것이었는지 70년 전에 있었던 조문 기록을 뒤져서 살펴보지 않았던 것 같다. 70년 전의 조문 기록과 조문 영상이 다 있는데, 의전 담당자들은 그것을 얼마나 찾아봤을까? 바이든 대통령이나 우크라이나 영부인의 조문 형태가 어떤 것인지 사전에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여간에 어쨌거나 정말 기품 있게 조문할 기회를 한번 놓친 것은 사실이다. 쇼도 역사를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무슨 쇼가 되겠는가? 다 진심이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조문은 바이든이 가톨릭 식으로 그린 성호였다. 그 장소가 바로 영국 국교회가 가톨릭으로부터 갈라졌던 곳이며, 그 갈라짐은 아일랜드 슬픈 역사의 시작이었다. 그곳에서 아일랜드인이 미국 대통령으로 와서 여왕에게 찬사를 보내며 가톨릭 성호를 그었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한 장면이다.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조문은 우크라이나 영부인의 조문이다. 올레나 젤렌스카는 조문단 전체에서 가장 슬픈 표정을 지었고, 그것은 털끝만큼도 쇼로 보이지 않았다. 다 진심이지.



작가의 이전글 윤석열 대통령과 토마스 모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