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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Sep 25. 2022

골프와 테니스, 그리고 로빈슨 크루소에 관하여

London Life

골프와 테니스, 그리고 로빈슨 크루소에 관하여

   

  

해외에서 살면서 대답하기 가장 곤란한 질문이 있다. ‘왜 한국 여자는 골프에 강한가?’ 이런저런 대답을 하지만, 듣는 사람은 잘 납득하지 못한다. 대답하는 사람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런 어려운 질문에 가장 완벽한 대답은 ‘한국 남자도 골프가 쎄!’라는 말이지만, 그건 사실과 달랐다.


어제 프레지던트컵 골프대회 3일째 경기를 봤다. 12명이 참여하는 국제팀 대표에 한국 선수가 가장 많은  명이나 참여하고 있다. 김주형, 김시우, 임성재, 이경훈의 활약이 크다. 김주형의 플레이에 소름이 돋았다. 김주형 마지막 퍼팅이 들어갔을 , 도쿄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였던 쇼플리는 세상을 잃은 사람의 표정을 지었다. 캔틀리와 쇼플리 조는 지금껏  번도  적이 없다고 는데 그런 기록이 김주형과 김시우 조에 의해 깨졌다.


얼마 전에 김주형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각각의 플레이에서 세계 최고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드라이버는 아담 스콧이 가장 잘하는  같아요. 아이언은 제가 제일 잘하지 않나 생각돼요. (웃음) 숏게임은 마쓰야마 히데끼가 최고 같아요. 퍼팅은 제가 자신이 있으니 저라고 말할게요.’  인터뷰를 듣고, 미쳤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그의 플레이를 보니 의 아이언 샷과 파팅은 세계 최고가 맞았다. 마지막 퍼팅을 넣고 김주형은  그렇게 미친 듯이 좋아했을까?



골프는 기본적으로 개인 스포츠다. 아마추어가 골프를 치는 이유는 사교와 운동이라는 목적이 있지만, 최초의 골프는 그것보다는 인간과 자연의 만남을 목적으로 했다. 골프에서 가장 멋진 장면은 이른 새벽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상황에서 털모자를  골퍼가 드라이버를 치고 타이틀리스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안갯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때 반드시 방울 달린 털모자를 써야 하며 가방에는 타이틀리스트라는 로고가 있어야 한다.


골프는 공을 치는 운동 중에 보기 드물게 혼자   있는 운동이다. 기본적으로 혼자 하도록 설계된 운동이다. 스코틀랜드의 유명 골프장은 골프를 치려고 하는 골퍼가 워낙 많아서 4명이  조를 이루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4  조는 오히려 골프 역사와 거리가 멀다. 전통의 골프장 중에는 가장 바쁜 시간인 토요일 오전에는 1이나 2플레이만을 허용하는 곳이 적지 않다.   다른 날은 1인이든 4인이든, 강아지와 함께하든 유모차와 함께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구기종목에서 골프에 비견될만한 개인 스포츠에는 테니스가 있다. 골프와 테니스 모두 영국의 자연에서 시작되었다. 두 종목은 잔디를 짧게 깎고 잔디를 다져서 경기장을 만든다. 무엇보다도 유사한 특징은 경기의 개인성이다. 테니스는 상대가 있어야 공을 칠 수가 있지만, 경기 중에 누구의 조언도 받을 수 없다는 면에서 코트에 홀로 남겨지는 운동이다. 골프는 캐디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면에서 테니스보다는 덜 외로울 수 있지만, 캐디의 조언을 받는 경우는 몇 명의 프로선수에게 한정된다. 기본은 캐디 조언 없이 홀로하는 운동이다.


이런 골프와 테니스가 영국에서 시작되었는데, 골프와 테니스가 만들어진 중간에 근대 역사에 중요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바로 다니엘 데포가 로빈슨 크루소를  것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개인이 탄생했다. 작품  로빈슨은 요크 사람이지만, 로빈슨 크루소의 모티브가  것은 스코틀랜드인의 표류다. 스코틀랜드의 비바람 속에서 골프를   사람이라면 캐디가 있던 없던 동반자가 1명이든 3명이든 자신이 로빈슨 크루소라는 느낌을 받는다. 골프를 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로빈슨 크루소다. 테니스 경기에 반영된 정신도 로빈슨 크루소다. 자연은 상대 선수로 의인화되고, 코트에서 나는 혼자 로빈슨 크루소가 된다.


어릴 적부터 테니스 선수로 자라고 골프 선수로 자란 선수들은 모두 로빈슨 크로소 같은 정신을 보유하게 된다. 그런 선수들이  해보고 싶은  중의 하나가 팀플레이다. 축구선수처럼, 농구선수처럼 좋은 샷을 날리고 같이 얼싸안고 좋아하는 그런 모습이다. 골프에서 그것을 극적인 형태로 만들어  것이 미국과 영국의 대결로 시작된 라이더컵이다. 라이더컵은 프레지던트컵을 낳았다. 테니스에서 그것을 극적인 형태로 만들어  것이 데이비스컵이고, 데이비스컵은 레이버컵으로 이어졌다.


골프에서 프레지던트컵이 진행되고 있는 순간에 공교롭게 테니스에서는 레이버컵이 진행 중이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가 레이버컵에서 은퇴식을 거행하는 바람에 화제가 되었다. 그의 로빈슨 크루소 여정이 나파엘 나달과 조를 이룬 복식경기였으며, 벤치에서 응원하고 있는 사람이 노박 조코비치라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페더러와 나달은 마지막 경기에서 복식의 달인 잭 샥과 US Open에서 기량을 만개하며 우승에 근접했던 프란시스 티아포를 상대했다. 티아포는 강력한 샷을 나달과 페더러의 몸 정면을 향해 쏘았고, 연로한 두 거장은 샷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다음날 페더러와 나달을 대신하여 나선 선수는 노박 조코비치였다. 코로나 백신을 맞지 않아 미국에 갈 수가 없어서 두 달간 공식 경기에 참여한 적이 없는 조코비치는 주변의 우려를 불식하며 6-1, 6-3으로 티아포를 간단하게 제압했다. 페더러는 벤치에서 조코비치를 코치했고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으니 조코비치는 물을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코트의 로빈슨 크로소가 원했던 장면이 바로 이런 장면이다.


그린 위의 로빈슨 크로소가 원하는 장면이 바로 캔틀리의 라이를 쇼플리가 봐주는 것이며, 김시우의 퍼팅라인을 김주형이 봐주는 것이다. 그래서 골프 선수는 라이더컵의 출전과 프레지던트컵의 출전을 평생의 소원으로 생각하며, 그곳에서의 활약을 가장 잊지 못할 순간으로 꼽는다.


우리는 골프에서 그리고 테니스에서 로빈슨 크로소의 축제를 만끽해야 한다. 그것을 만끽하고 나면, ‘왜 한국 여자는 골프에 강한가?’라는 난감한 질문에 ‘한국 여자는 훌륭한 로빈슨 크로소라 그래!’라는 난해한 대답 대신에 ‘아니야! 남자도 강해!’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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