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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Sep 18. 2022

영국인은 왜 길게 줄을 서는가?

London Life

영국인은 왜 그리 오래 줄을 서는가?



줄을 뜻하는 영어 queue 여왕이라는 뜻의 queen 연상시킨다. 여왕을 조문하려는 줄이 역대급으로 길어진 가운데 줄을 The Queue 표현한다. 줄을 위한 줄이 등장할 정도다. 여왕의 운구가 런던으로 오기 전에 조문 줄이 7시간 정도 되었다. 3시간이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7시간은 길었다. 줄이 줄면 가봐야지라고 생각했다.


누가 줄을 서는가? 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기사들, 왕당파들, 그들의 후손들과 새롭게 왕을 추앙하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그들에게는 왕은 부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들만 줄을 섰다면 줄은 금방 7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었을 것이고 내게도 기회가 왔을 것이다. 그러나 줄은 7시간에서 10시간으로 늘었다. 또 누가 줄을 서는가? 여왕의 70년 헌신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윈스턴 처칠이 죽었을 때도 조문을 위해 긴 줄이 섰다. 나라를 위해 평생을 바친 것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영웅의 죽음을 접했을 때, 사람들은 순교적인 자세를 보인다. 70년간 왕으로 나라를 위해 봉사한 사람을 위해 7시간이 아니라 17시간 줄을 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줄이 길어서 힘들면 힘들수록 줄을 서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된다.


줄은 더욱 길어졌다. 데이비드 베컴도 13시간 줄을 서서 왕을 조문했다. 길거리에서 13시간을 서서 그도 순례자가 되었다. 모든 행인의 질문에 하나하나 친절한 대답을 해주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넛을 선물했고, 왕과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앞뒤 사람들과 나누며 긴 시간을 버텼다.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그의 의상은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국회의원은 4명을 동반하여 줄을 서지 않고 들어 갈 수 있으며, 국회 직원은 한 명을 줄을 서지 않고 데려갈 수 있기 때문에 데이비드 베컴은 얼마든지 줄을 서지 않고 조문을 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순교자의 길을 선택한 그는 확실히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셀럽이다.



웨스트민스터에서 시작된 줄이 템즈강 남단을 따라 타워브리지까지 이어졌다. 누가 또 줄을 섰을까? 여왕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엘리자베스를 좋아했던 사람들이다. 그가 보인 겸손과 인간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왕정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을 보내는 슬픔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고인과 개인적 친분이 있느냐 있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고인에 대한 가눌 수 없는 슬픔은 떠난 사람을 위해 남은 사람이 뭐든 해야 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조문을 위해 줄을 서는 것만큼 합당한 일은 없다.


이쯤 하면 줄이 줄어드는 것을 기다릴 수는 없다. 타워 브리지의 경치도 좋고 하니 그곳에 가서 사진도 찍고 줄 구경도 할까 해서 줄의 길이를 체크해 본다. 줄은 웨스터민스터에서 타워브리지 거리만큼 타워브리지에서 동쪽으로 더 길어졌다. 타워브리지는 줄의 중간이 되었다. 줄을 서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일단 그 줄을 서기 위한 다른 줄을 찾아봐야 한다. 또 누가 줄을 섰길래 이런 일이 벌어질까? 개인의 역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손자 손녀와 아들딸에게 그 순간에 내가 거기에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줄을 서면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리는 사람들도 줄을 섰다. 자신이 이 시대를 살았다는 것을 나타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The Queue를 선택했다. 런던에서만 오고 영국에서만 온 것이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캐나다에서 가나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도에서 미국에서 왔다. 런던 상공은 비행기 행렬로 수 놓였고, 런던 호텔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줄에는 조문을 위해 온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줄을 서는 이유, 줄을 서는 심리를 조사하기 위해서 많은 영국 대학의 사회학자, 심리학자와 뇌과학자들이 와서 줄에 대한 연구 자료를 모으고 있다. 대부분은 줄을 선 사람에 대한 심층 면접으로 이어진다.


줄을 서면 줄을 관리하기 위해서 손목 밴드를 나눠주는데, 그 손목 밴드에는 LISQ(Lying-in-state Queen or Queue) 글자가 쓰여 있다. 그 손목 밴드를 인터넷에서 팔면 20파운드 정도를 벌 수 있다. 350파운드까지 팔자 호가가 나와 있을 정도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상업이 꽃을 피운다. 유튜버와 장사꾼이 활기를 치며, 런던 시내를 골목골목 잇는 줄로 인해 골목 상권 또한 뜻밖의 대목을 맞았다.


줄이 가치가 있기 위해서는  줄을 가치 있게 만드는 매니지먼트가 있어야 한다. 줄이 서면 어디선가 줄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새치기가 있거나 자기 자리를 타인에게 파는 행위가 없어야 줄의 가치가 유지된다.  줄로 늘어선 것도 아니고 여러 명이 무질서하게 늘어서는 줄에서 새치기가 일어날 같다. 줄을 관리하는 사람들과 손목 밴드가 새치기 방지 역할을   같아도 다른 이유가 있다. 줄이 일시적인 공동체가 되기 때문에 새치기는 방지된다.  앞뒤로 목소리가 들릴  있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친밀한 관계가 유지된다.  사교는 진정한 의미의 소셜 믹싱(사회적 섞임)이다. 남녀노소, 좌우고하를 막론하는 형성되는 소셜 게더링이다. 그들은 24시간 순례를 같이하는 동반자다.


줄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알기 때문에 영국 사람들은 줄 서는 것을 장려한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윔블던 테니스는 티켓의 절반을 줄을 선 사람에게 판다. 캠핑을 하는 줄이 사회적 낭비 같아도 그 줄에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만남이 이뤄진다. 의견 교환이 이뤄지고 평상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우연이 주는 선물이다. 윔블던에서 좋은 좌석은 미리 판매하고 안 좋은 좌석을 줄을 서는 사람에게 배정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가장 좋은 좌석 표는 줄을 선 사람에게 배정된다. 가격은 같기 때문에 고생한 사람에게 그만한 보상을 준다.


여왕은 길었던 재위 기간만큼이나 긴 줄로 새로운 역사를 또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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