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Life
블룸, 가구는 경첩이 결정한다
# 한국 사람은 자동차 문을 세게 닫았다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좋은 차를 제공했다. 운전기사는 이렇게 불평했다. ‘한국 사람은 차 문을 세게 닫는다.’ 한국 택시는 소나타였고, 문을 세게 닫아야 했다. S클래스 같은 고급차는 문이 살짝 물리기만 하면 슬그머니 끌어당겼다. 문을 세게 닫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지금은 소나타도 슬그머니 잡아당기겠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쾅하고 닫아야 감칠맛이 났다. 그게 한국인의 습관이 되었다.
# 가구에서 중요한 것은 경첩
좋은 가구도 자동차와 같다. 부엌 가구와 옷장도 닫는 것이 중요하다. 문이나 서랍을 닫을 때 쾅하고 닫히면 꽝난다. 잘 안 닫히거나 뻑뻑해도 꽝이다. 자동차 S클래스 도어처럼 착 감겨야 한다. 가구의 품격은 경첩이 결정한다.
# 경첩의 대명사 블룸
고급 경첩의 대명사는 Blum이다. 오스트리아 회사 블룸은 일 년에 경첩을 2.6조 원이나 판다. 고급 가구를 생산하는 회사라면 어디나 불룸을 선호한다.
# 블룸, 러시아에 수출을 거부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고 서구 회사가 러시아 거래를 중단했다. 블룸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가구회사의 걱정이 바로 시작되었다. 블룸 이외의 경첩을 사용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블룸이 없는 러시아 가구는 짝퉁 이탈리아 가구에 다름 아니다. 차로 따지면 구소련에서 생산된 지굴리다.
# 카자흐스탄에 와서 돈을 흔들다
제재가 시작되자 한 러시아 가구 회사가 카자흐스탄에 왔다. 이백만 불을 현찰로 흔들면서 블룸을 달라고 했다. 카자흐스탄 딜러는 팔고 싶었으나 오스트리아 본사는 의심이 되어 물량을 주지 않았다. 러시아 회사는 카자흐스탄에 현지 법인을 세우고 블룸을 달라고 했다. 카자흐스탄 회사에 러시아 주주가 있는 것을 알아챈 블룸은 판매를 거부했다. 러시아 회사는 카자흐스탄 가구 회사에 경첩을 대신 사줄 것을 부탁했다. 카자흐스탄 가구회사의 구매 물량이 늘어나면 블룸은 조사에 나서고 러시아 회사 간접 물량이라고 의심되면 판매를 거부한다. 이제는 카자흐스탄 가구 회사도 평상시보다 눈에 띄게 많은 물량은 살 수가 없다.
# 그래도 늘어난 블룸의 판매량
러시아 회사는 표가 나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블룸을 사야 했다. 블룸 입장에서는 기존의 거래처가 전년대비 10% 더 구매하는 것까지 조사할 수는 없다. 러시아는 그렇게 눈에 안 띄게 블룸을 사 모으고 있다. 십시일반 수요만으로 카자흐스탄에서 블룸은 전년 대비 3.5배 이상 팔리고 있다.
# 러시아는 3배나 비싼 비용으로 블룸을 조달한다
카자흐스탄에서 사 모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랍에서, 터키에서, 조지아에서 조금씩 경첩을 사모은다. 몇 다리를 거쳐야 하고, 규모의 경제가 나오지 않고, 물류비용이 증가한다. 러시아 가구회사는 블룸을 전쟁 전보다 3배나 비싸게 사야 한다.
# 이게 블룸만의 문제이겠는가?
경첩은 문제도 아니다. 전쟁 중에 서랍이 쾅하고 닫히면 어떻고, 뻑뻑하게 닫히면 또 어떻겠는가? 그보다 더한 문제가 수두룩하다. 문을 쾅하고 닫아야 하는 중고 소나타를 타야 할 마당에 싱크대 문이 부드럽게 닫히지 않는 것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