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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Jan 18. 2023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London Life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지난해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책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를 썼다. 그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책을 준비하면서 페이스북 메신저로 저명인사에게 인터뷰를 많이 요청했다. 친구가 아닌 사람이 보낸 메시지는 스팸함에 들어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요청이 도달하지 못했다.


잊을 만하면 하나씩 응답이 온다. 뒤늦게 스팸함을 뒤져본 사람들이 연락한다. ‘이제 봐서 미안하다. 여전히 인터뷰를 원하면, 할 수 있다.’ 욕심이 생기지만, 쉬고 싶은 생각이 크다. 이런 생각은 바베이도스에 다녀와서 더 강해졌다. 그곳은 따듯하고 평온한 곳이어서 많은 것을 잊게 만들었다.


미국에 망명 중인 러시아 작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민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일 년이 되어 간다. 관련하여 원고 부탁도 들어왔다. 고민이 깊어졌다.


와중에 러시아는 드니프로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미사일은 아파트를 강타하여 40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아파트 단면이 날아가 부엌이 그대로 드러났다. 부엌 가구의 예쁜 노란색에 시선이 끌렸다. 모델하우스에 전시된 모형처럼 보였다. 식탁 테이블에는 사과가 놓여 있었다. 싱크대에는 설거지할 접시가 있었다. 작은 식탁 테이블에는 의자가 두 개, 식탁 밑에는 간이의자가 두 개 있었다. 복싱 코치로 일하고 있는 미하일로 코레노프스키는 폭격으로 사망했고, 와이프와 어린 두 딸은 산책을 나간 바람에 살아남았다.



인스타그램에 노란색 키친에서 생일잔치를 벌이는 동영상이 하나 있다. 미도비(벌꿀) 케이크를 놓고 여자 아이가 촛불을 끄는 영상이다. 한눈에 봐도 이 집이 그 집이다. 노란색 가구가 인상적으로 선명하다. 전쟁은 여전히 비극이다. 인터뷰도 하고, 원고 부탁에도 응하자!



쓸모없는 땅에서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 역사 속에서 전쟁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벌어졌다. 신명기 11장 9절에는 ‘또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고 쓰여 있다. 신명기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건너가 차지할 땅이라고 쓰고 있다. 구약 시대에 땅은 건너가 차지해야 할 대상이었다.


우리는 구약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코코넛 밀크가 지천이었던 카리브해의 바베이도스에 유대인은 사탕수수를 가져와 경작했다. 젖이 충분했던 바베이도스에 꿀을 가져와 아브라함 후손에게 약속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스스로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건너가 차지하지 않고 스스로 만든다. 우리는 우리만의 젖과 꿀을 찾았고, 대한민국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었다.


구약의 방식으로 땅을 차지하는 일은 과거에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다. 여전히 골칫거리로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지난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략했다. 러시아는 자신의 땅에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면서 남의 땅을 침략하는 짓을 멈추지 않는다. 지난 세기에 그들이 차지했던 옥토는 대게 폐허로 변했다. 그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미사일을 쏴서 집을 파괴하고, 정성 들여 꾸민 부엌을 부수고, 젖과 꿀로 만든 생일 케이크를 날려 버린다.


그가 부순 것은 부엌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행복한 가정 자체다. 푸틴이 모르고 있는 것은 러시아 가정도 같이 부서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 자그마한 벌꿀 케이크 하나만으로도 행복이 넘쳤던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 그런 일은 우크라이나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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